[기고]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그리고 수의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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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그리고 수의계의 현실 – 익명 기고

청와대가 4일 정진엽 교수(분당 서울대병원 정형외과)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1998년 주양자 장관(고려대 의대 출신) 이후 17년 만의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발탁이다.

1955년 서울 출신의 정진엽 장관 내정자는 서울고-서울대 의대-서울대 의과대학원 석사·박사를 졸업했으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분당 서울대병원 원장을 지냈다. 또한 대한병원협회 이사, 대한소아정형외과학회 회장, 의료기기상생포럼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국무총리표창(2008), 대한민국글로벌경영인대상(2011), 대한민국보건사업대상(2011), 보건복지부장관 표창(2012) 등 수상경력도 있다.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가 나오자 의료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사협회는 정진엽 내정자의 활약으로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의 목소리가 보건의료계 정책에 잘 반영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대한병원협회는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고 느꼈기 때문에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진엽 내정자 스스로도 “의료인인 제가 지명 받은 것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복지와 함께 보건의료체계를 더욱 발전시키라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 걱정의 목소리도 많다.

약사회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장이 모두 의사 출신으로 채워졌다며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깜짝 놀랄 의외의 내정’이라며, 인사 청문회 준비에 돌입했다. 일부 의원들은 분당 서울대병원 원장 시절의 발언과 활동, 그리고 법인카드 사용 내역까지 파악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사들은 ‘원격의료에 관심이 높은 정 내정자를 통해 원격의료를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와대가 행정 경험이 없는 의사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한 것을 두고 메르스 사태로 불거진 ‘전문가 등용의 필요성’을 실제로 실천한 행동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관료들은 행정 분야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전문분야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임기가 끝나면 다른 고위공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일관성과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전문가 출신은 행정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행정능력과 전문성,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나는 과감히 전문성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전문가가 전문성을 가지고 그 분야를 이해해야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 운영이 가능하다. 즉, 전문성은 정책의 일관성과 연관되어 있다.

많은 정책들이 정치 상황에 따라 뒤바뀐다. 정치성향이 다른 기관장이 오면 일관성 없이 정책이 바뀌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봐오지 않았는가? 이 이유는 기관장이 전문성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출신의 장관과 장관 출신의 국회의원…셀 수 없이 많다. 장관이 정치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전문가 등용이 답인 것이다.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은 그런 면에서 전문가를 등용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엿보인다. 부디 정진엽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잘 통과하여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처럼 전문가를 등용하는 분위기 속에 수의계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해 9월 내부 인사를 통해 수의사 출신이 농림축산검역본부장에 취임했다. 이전 본부장도 수의사였지만, 내부 인사를 통해 수의사가 1급 기관장이 된 것은 역대 처음이었다. 하지만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올해 6월 ‘농식품부 구제역 백신 자체 감사’를 통해 중징계를 받고 직위 해제됐다.

검역본부는 중앙기관(농림부)의 기술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기술지원 기관이란 무엇인가? 그 어디보다 전문성이 발휘되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 그럼에도 방역분야 최고 전문가인 수의사 출신 기관장을 직위 해제하고 식물 쪽 담당자에게 업무 대행을 맡겨 놨다.

농림부의 지시를 받아 이에 대한 기술업무를 담당하는 곳을 농림부가 스스로 감사하여 징계까지 내리다니…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인정했지만 징계는 검역본부에 온통 뒤집어 씌웠다).

예전부터 많은 수의방역 전문가들이 ‘일관성 있고 전문적인 방역정책’을 위해 방역정책국 신설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방역정책국은 신설되지 않았다. 4급 과장이 CVO(국가최고수의전문가)를 맡고 있는 나라는 OIE 180여개 회원국 중 사실상 우리나라뿐이다. 이런 상황임에서 오히려 수의사 공무원 수장의 목이 날아갔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전문가를 등용하는 시대 분위기와 반대로 가는 결정이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의사 출신 장관이 탄생했는데, 구제역/AI 사태를 계기로는 수의사 공무원 수장이 중징계를 받았다. 이런 수의계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은 검역본부장을 징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농림부 요직에 수의사 등 전문가를 배치해야 하는 시점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에 의사가 내정된 것처럼 농림부 장관에도 수의사가 내정되는 것이 오히려 시대 흐름에 맞지, 지금의 행태는 시대 흐름과 역행하는 꼴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전문성과 일관성’이라는 시대 흐름에 맞게 방역정책 전문가인 수의사를 등용해야 하며, 각 분야에 위치한 수의사들도 해당 자리에서 수의사의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것이다.

[기고]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그리고 수의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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