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13―임동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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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3. 개, 인류의 가장 오랜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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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 90% 이상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개나 고양이 정도를 제외하면, 살아 있는 동물을 만날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조리된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는 과거보다 훨씬 흔하게 접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동물을 그저 먹을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동물의 역할은 너무나도 지대해서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멋진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은 단연코 개가 아닐까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는 인간이 가장 먼저 가축화시킨 동물이다. 소나 양, 말과 같은 초식동물이 아닌, 육식동물인 개를 인간이 가축으로 삼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냥 때문이었다. 지금은 사냥만을 전담하는 사냥개는 일부 품종에 불과하다. 개가 가축화되면서 개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주둥이다. 야생 늑대에 비해 사냥감을 직접 잡을 기회가 줄면서, 품종에 따라 주둥이가 짧아지고, 이빨 간격도 좁아졌다. 개는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다 보니, 인간의 말과 행동을 빨리 알아듣는 능력이 발달되었다. 가축화가 야생의 습성을 바꾸어 버렸다. 개는 가축화의 길을 걸음으로써 안전하게 번식을 할 수 있었다. 

최초의 개는 늑대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사람에게 근접하는 것을 막으며 사냥을 돕던 사냥개였다. 개는 인간에 비해 후각과 청각이 매우 발달된 동물이다. 게다가 사람이 원하는 대로 길들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개를 필요에 의해 다양한 성질과 체형으로 변형시켜왔다. 양과 염소를 키우는 목축민들에게 가장 괴로운 문제는 야생 맹수들의 습격이었다. 늑대나 호랑이 등이 나타나 양들을 위협할 때 이들의 출현을 알려주는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은 목양견을 키우기 시작했다. 개는 목축업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조력자다. 양떼를 몰아주고,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가축을 지켜주는 목양견은 지형과 지역, 기르는 가축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출현했다. 프랑스의 브리야드, 헝가리의 폴리, 벨기에의 셰퍼드 등이 대표적인 목양견종이다. 목양견은 침입자를 추적하고 몰아서 지켜 줄 뿐, 결코 가축을 물거나 죽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목양견은 자제력이 있고, 타 동물들의 움직임을 읽을 줄 아는 두뇌를 가진 걸로 생각된다.

경비견은 짖거나 으르렁거리는 행동으로 낯선 사람 혹은 불법 침입자의 존재를 주인에게 알린다. 또 주인의 지시에 따라 상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경비견은 훈련을 통해 길들여지는데, 대부분의 개들은 경비견의 자질을 갖고 있다. 경비견은 영역을 지키며 주인과 주인의 집을 보호하며, 주인의 명령에 순종적이어야 한다. 소형견인 차우차우, 퍼그도 가능하지만, 세인트버나드, 도베르만, 독일 셰퍼드와 같은 대형견들은 전투견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우수한 경비견들이다.

시베리안 허스키, 에스키모 도그, 치누크와 같은 품종들은 썰매개로 이용되고 있다. 추위에 강하고, 지구력이 남다른 이런 개들이 없었다면, 에스키모를 비롯한 북극권역에 사는 사람들은 편하게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1909년 미국의 피어리가 북극점 주변을 탐험하고,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남극점을 도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썰매개 덕분이었다.

전투견이나, 공항이나 항만의 마약탐지견, 실종자 탐색견, 맹도견 등과 같은 특수 목적으로 키우는 개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훈련사들에 의해 양성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시각이나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돕는 안내견이 훈련에 의해 키워지고 있다. 안내견 덕분에 시각과 청각에 장애를 가진 이들이 보다 편리하게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안내견은 주로 리트리버나 독일 셰퍼드가 선발된다. 

개가 인간에게 널리 사랑받는 가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듣는 영리함과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는 성격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개는 겨우 1만 년 남짓한 단기간에 인간들에 의해 다양한 종(種)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사람 곁에 가까이 살게 된 개는 다양한 상징과 역할을 지니게 되었다. 개는 고양이와 달리 충성심이 강하다. 기독교 성화에서도 개는 종종 신뢰와 믿음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인간은 키우던 개를 쉽게 버리기도 하지만, 개는 자기의 주인을 버리지 않는다. 개의 조상인 늑대는 계급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개도 강한 자에 복종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반면 약한 자를 깔보고 무시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버려진 유기견들은 늑대처럼 도시 외곽이나 주변 산을 무리지어 배회하다가 사람들을 위협한다. 게다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광견병을 옮기기도 하며, 때로는 날카로운 송곳니로 사람을 물어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개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표현된다. 추리소설의 대가,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는 귀족인 위고 바스커빌을 물어 죽인 ‘악마 개’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로 유명하다. 근자에 가정에서 키우던 개가 이웃집 사람을 물어 죽게 한 사고가 난 이후로, 대형견에 입마개를 하고 외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주인이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도사견, 로트와일러,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코카이안 오브차카, 도코 아르젠티노와 같은 개들은 엄격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으면 사나운 맹견으로 돌변할 수 있는 무서운 투견들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며, 자신이 키우는 개에게 목줄과 입마개를 하지 않은 채로 풀어놓는 것은 매우 그릇된 사육 방법이다. 근본적으로 개는 훈련하기에 따라 성품이 달라지는 동물이다. 개는 어릴 적부터 잘 훈련시키면 주인에게 충성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 조상들도 개를 많이 키웠는데, 부여(夫餘)에서는 왕 밑에 여섯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馬加-말), 우가(牛加-소), 저가(猪加-돼지), 구가(狗加-개) 등의 대가(大加)들이 있었다. 대가는 부족장을 말한다. 구가를 단순히 풀어보면 개부족의 우두머리라는 뜻인데, 개를 많이 키웠거나, 개가 부족의 상징이었기에 구가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에 머리가 세 개 달린 개인 케르베로스가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개를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이끄는 길잡이로 생각했다. 2015년, 이집트 북부 사카리 사막의 한 대형 지하묘지에서 8백만 마리로 추정되는 동물 사체가 무더기로 발굴된 바 있다. 이 가운데 헝겊에 싸인 미라 형태로 보존된 동물의 대다수는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개였다. 고구려와 이웃이었던 오환족 사람들도 개가 인간을 저승으로 이끈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각저총, 송죽리 고분벽화, 무용총, 안악 3호분, 덕흥리 고분벽화 등에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개가 그려져 있다. 무용총 벽화에는 말을 탄 무사들이 개를 거느리고 함께 사냥하는 모습이 있고, 안악 3호분 그림에는 부엌 옆에 개 2마리가 있다. 고구려 시대에도 사냥개와 집개가 구분되어 있었다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절과 신사 입구에는 고마이누(狛犬)라고 불리는 개의 석상이 수호동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개는 이승은 물론 저승까지도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개가 인간에게 사랑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다. 고려시대 문인인 최자가 1254년에 간행한 『보한집』에 거령현(전북 임실군)에 사는 김개인(金盖仁)과 개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개인은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귀여워했다. 어느 날 그가 외출하는데 개도 따라 나섰다. 김개인이 술에 취해서 풀밭에 쓰러져 잠을 잤다. 이때 근처에서 들불이 크게 번져 오고 있었다. 개는 곧 곁에 있는 냇물에 몸을 흠뻑 적셔 주인 주위를 빙 둘러 풀과 잔디를 적셨다. 이렇게 불길을 막기를 수십 차례나 했다. 개는 너무 지치고 탈진해 그만 죽고 말았다. 김개인이 잠에서 깨어나 개가 한 자취를 보고는 슬프고 감동해서 노래를 지어 슬픔을 기록했다. 그리고는 무덤을 만들어 장사 지낸 뒤에 지팡이를 꽂아 이것을 표시했다. 그런데 이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났다 한다. 사람들은 그 땅의 이름을 개 오(獒), 나무 수(樹)를 써서 오수라고 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의 지명 유래다. 악보 중에 개 무덤 노래(犬墳曲)가 이것이다. 뒤에 어떤 사람이 시를 지었다.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人恥時爲畜)

공공연히 큰 은혜를 배신한다네. (公然負大恩)

주인이 위태로울 때 주인 위해 죽지 않는다면 (主危身不死)

어찌 족히 개와 한 가지로 논할 수 있겠는가. (安足犬同論) 

오수개는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이야기가 전해오는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원동산 공원에 의견비(義犬碑)가 세워져 있다. 또 지역명칭 조차 오수리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현재 오수개 육종사업장이 만들어져 오수개를 널리 보급하고 있다. 또 임실군에서는 매년 오수의견문화제가 열린다.

오수개는 지혜와 용기, 자기희생의 덕목을 갖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개였다. 그래서 오수개는 지금까지도 칭송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오수개와 유사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구비문학자 최래옥은 이를 12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호랑이나 다른 맹수를 물리쳐 주인을 구한다.

둔갑하여 주인을 해치려는 동물이나 귀신을 물리치고 주인을 구한다.

독약, 독이 든 물건을 주인이 받거나 먹거나 만지려 할 때에 막아서 주인을 구한다.

억울하게 주인이 죽으면, 관청에 알리고 시체와 범인을 찾아 주인의 원수를 갚는다.

주인의 글이나 옷자락을 물고 와 죽음을 알리거나 시신을 지킨다.

위험에 빠진 주인을 개가 지켜준다.

개는 죽으며 발복(發福)할 명당 터를 잡아 준다.

산에 길을 내어 사람을 돕거나 길 잃는 사람을 인도한다.

밭을 갈아 주고, 죽은 후 무덤에서 나무가 자라 보화를 얻는다.

주인이 없는 사이에 어미개가 주인의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중요한 문서를 전달한다.

눈먼 주인에게 길을 인도하여 동정을 사게 한다.
  

이처럼 개는 인간을 돕는 동반자, 동지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개는 사흘을 기르면 주인을 알아본다.’, ‘사람이 개를 버려도 개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요즘 들어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개는 단연코 애완견으로, 집 안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가족과 같이 생활하기에 반려동물(伴侶動物)로 불리고 있다. 반려라는 말은 한평생 짝이 된다는 말로, 예전에는 부부 사이에만 사용하던 말이다. 개가 이렇게 사랑받게 된 원인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람에게 충성을 바치며,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이다. 개는 점점 개인화되는 사람들의 삶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함께하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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