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10 ― 임동주 수의사

등록 : 2018.02.05 16:22:00   수정 : 2018.02.07 12:21:15 데일리벳 관리자

[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0. 소, 농업 혁명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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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말만이 교통혁명을 일으킨 주역은 아니다. 말 외에도 인간의 교통수단이 되어준 소중한 동물들이 있었다. 인간이 만든 위대한 발명품인 수레를 끌어주었던 소, 당나귀, 노새, 코끼리, 낙타 등이 그것이다. 특히 소는 말보다 느리지만, 끄는 힘은 더 세다. 말이 여행용, 의장용, 지휘용 수레를 끌었다면, 소는 많은 짐을 실은 달구지와 좋은 승차감을 원하는 귀족들의 수레를 끌었다.

인도나 중국에서는 코끼리가 수레를 끌기도 했는데, 코끼리를 키우려면 워낙 많은 비용이 들었으므로 왕과 귀족들 정도가 코끼리 수레를 이용했다. 인도에서는 낙타가 수레를 끌기도 한다. 발이 넓은 낙타는 평지에서 수레를 끌기보다는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에서 사람과 짐을 안전하게 운반해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말은 낙타보다 빠르지만, 물이 없는 사막에서는 낙타만큼 목마름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낙타가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지금까지도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수레를 가장 많이 끌었던 동물은 말과 더불어 소였다. 인류의 교통혁명을 일으킨 주역이 말이었다고 하지만, 소 역시 많은 짐을 실어 날라준 수레의 소중한 동력원이었다. 

소는 평상시 말보다 훨씬 쓸모가 많은 동물이다.

소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가장 귀중히 여긴 동물이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하는데 굳은 땅에는 싹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먼저 땅을 갈아야 한다. 신석기 시대 이후로 인류는 막대기나 따비라는 농구를 사용해 땅을 팠다. 여기서 발전한 것이 쟁기이다. 사람이 동물의 도움 없이 땅을 갈려면 너무나 큰 힘을 필요로 한다. 이때 쟁기를 끌어주는 것이 소다. 농부들은 소가 끄는 쟁기를 뒤에서 조정하면서 논밭을 간다. 땅을 갈아서 밭을 만들려면, 소가 끄는 쟁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쟁기에 철로 만든 보습을 끼우는데,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보습 가운데는 폭이 50㎝가 넘는 초대형도 있다. 대형 보습을 복원한 연구에 따르면, 보습 자체 무게가 약 27㎏, 쟁기에 장착하면 무려 48㎏에 달한다. 이런 것들은 소가 끌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2마리의 소를 이용해 쟁기를 끄는 것을 겨리(結犂)라 한다. 겨리 농사는 우리의 옛 땅인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 일대에 널리 행해졌다. 이렇듯 소는 농민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농부들은 벼 심기 전 논을 무르게 한 뒤 논바닥을 평탄하게 하는 일인 써래 끌기도 소를 시킨다. 또 소는 볏단 등 농산물을 운반하는 달구지를 끌어준다. 농부들은 소 덕분에 더욱 넓은 농경지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우경의 힘은 농업생산성을 높여 주어, 전업농의 잉여농산물이 늘어났다. 그 결과 식량의 거래가 활발해졌다. 따라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전문 직업인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카의 경우 옥수수가 워낙 생산성이 높은 곡물이기 때문에 소 없이도 고대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와 중동에서 고대 문명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연 소의 역할 때문이었다.

다 자란 소는 무게가 400㎏에 이를 만큼 거대하고 힘도 세지만, 성격이 온순해서, 나이어린 소년들도 쉽게 부릴 수 있다. 소는 주인을 잘 따르고 의리가 있는 동물이다.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문수점에 의우총(義牛塚)이라 불리는 소의 무덤이 있다. 의우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수점에 사는 김기년이 암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어느 해 여름 이 소를 부려 밭을 갈고 있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사나운 호랑이가 뛰어나와 소에게 덤벼들었다. 김기년이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며 가지고 있던 괭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김기년이 급하여 양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소가 크게 우짖고는 쇠뿔로 호랑이의 배와 허리를 무수히 쳐 받았다. 마침내 호랑이는 피를 흘리며 달아나다가 몇 걸음 못 가서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 김기년은 비록 다리를 여러 군데 물렸으나 정신을 차려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때 입은 상처가 덧나 시름시름 않다 20일 후 죽고 말았다. 죽기 전에 가족에게 이르기를 “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게 누구의 힘이었겠는가?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소를 팔지 말고, 늙어서 스스로 죽거든 그 고기를 먹지 말며 내 무덤 옆에 묻어 달라.”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소는 물린 데가 없었고, 김기년이 누워 있을 때는 평상시처럼 스스로 논밭 일을 했다. 주인이 죽자 마구 뛰며 크게 울부짖으며 쇠죽을 먹지 않더니 삼일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관가에 알렸다. 당시 선산부사로 있던 조찬한이 그 사실을 알고 1630년, 의우전을 기록하고 돌에 새겨 무덤가에 비를 세우고, 이를 ‘의우총’이라 불렀다 한다. 

이처럼 소는 주인에게 충성심이 높은 가축으로, 농부들에게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가축이었다. 게다가 소는 신의 가축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동물이다. 소가 죽으면 등심, 안심 등 살코기 부위뿐만 아니라, 꼬리와 뼈는 사골로, 발은 우족탕으로, 창자는 곱창과 대창구이로, 머리는 소머리국밥으로, 피는 선지 해장국으로 먹는다. 소의 담낭에 생긴 응결물인 우황은 신경안정제인 우황청심환의 주재료로 사용되고, 소의 연골은 퇴행성관절염 예방 및 통증 완화제인 글루코사민의 원료가 되며, 소뿔은 국궁의 소재나 화각 공예품을 만들 때 사용하고, 가죽은 가죽제품의 재료로 사용되며, 소의 기타 여러 다양한 부위는 잡식동물 사료의 주원료 및 각종 화장품의 필수 원료가 된다. 또 고기만큼이나 중요한 우유도 제공해준다. 심지어 소의 배설물은 비료로 활용되거나 말려서 연료로도 사용된다. 그야말로 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아주 귀중한 가축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 사는 농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목록 1호는 소였다. 그래서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소를 팔아서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우골탑(牛骨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소는 농가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기도 했다. 1670년 조선에 기상재해가 겹쳐 온갖 재앙이 닥쳤는데, 이때 소의 전염병이 크게 번져 경기도에 남은 종자가 거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소 대신 사람이 논밭 갈이를 했는데, 9명의 힘으로 겨우 소 한 마리의 일을 해낼 수 있었으므로, 힘들어 농사일을 포기하는 백성이 속출했다.

1670년 대기근을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이때 소 전염병으로 인해 소가 죽어서 생긴 피해액이 최소 120만 냥에서 최대 240만 냥이었다. 당시 조선 8도 1년치 벼농사와 맞먹고, 호조의 2년 수입과 비슷한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심지어 소가 없어서, 한강에서 얼음을 저장하던 빙고(氷庫)에서 얼음을 떠내가는 일도 중단될 형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소가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그런데, 소가 없어지니 국가의 중요한 사업조차도 중단될 정도로 역우(役牛)로서의 소의 가치는 실로 엄청났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가축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소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후반 들어 농업이 빠르게 기계화됨에 따라 소가 끄는 쟁기 대신 트랙터, 소달구지 대신 경운기 등을 이용한 기계 농업으로 대치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2억〜13억 두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이렇게 소를 많이 키우는 이유는 소고기가 돼지고기, 닭고기와 더불어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육류이기 때문이다. 소는 매년 7억 마리 이상이 도살된다. 엄청난 덩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고기를 먹는다. 현재 한국인의 소고기 소비량은 연간 10㎏이 넘는데, 1970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났다. 최근 10년간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40%가 줄어든 반면, 육류 소비는 무려 67%가 늘어 1인당 연간 45㎏ 넘게 소비하고 있다. 2016년 말 현재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61.9㎏으로, 우유 소비량보다 적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맛있는 고기를 더욱 선호하므로 소고기 소비량은 매년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13년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의 소는 약 12억2,700만 두인데 이 중 약 60%인 7억2천만 두가 이른바 선진국에서 사육되고 있다. 이외에도 남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이 키워지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젖소를 많이 사육하고 개발도상국 또는 저개발국일수록 역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농사에 주로 이용되는 물소는 1억2천만 두 정도인데, 그중 약 80%가 동남아시아의 열대 또는 아열대지방에서 사육되고 있다. 앞으로 농사일에 쓰이는 역우는 줄어들겠지만, 전체적으로 소의 사육두수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는 인류에게 고기뿐만 아니라 각종 의약품과 화장품 원료, 가방, 구두, 의복, 잡식동물의 사료 등의 재료로 사용되어 여러모로 아주 소중한 가축이기 때문이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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