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동물보건기구 OIE 방문기―수의사 이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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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박 13일 간의 길지 않은 유럽여행 기간 중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프랑스 파리에 2박 3일간 머물렀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파리에 가는 김에 세계동물보건기구 OIE(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 본부를 견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OIE에 근무하는 박민경 수의사님과의 친분도 있고, 베르나 발라(Bernard Vallat) OIE 사무총장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나 발라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3회 OIE 표준실험실 및 협력연구센터 회의(Global Conference of OIE Reference Laboratories and Collaborating Centres)에서 만났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OIE의 미션과 비전, 전 세계 동물 질병, 우리나라의 가축전염병 발생 현황과 대응,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수의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베르나 발라 총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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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천 송도에서 만난 베르나 발라 OIE 사무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참, 베르나 발라 OIE 사무총장은 올해로 15년간의 사무총장 생활을 마무리한다. 2016년 1월부터는 모니크 에르와 박사(Dr. Monique Eloit)가 OIE를 5년간 이끌게 된다. OIE의 7번째 사무총장이 될 에르와 박사는 수의학 박사이자 수의공중보건감찰관으로서 프랑스식품안전청(Afssa) 청장과 프랑스 CVO를 역임한 바 있다.

파리에 가면 꼭 OIE를 견학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었지만, 바쁜 나날 속에 유럽으로 떠나는 날까지 박민경 수의사님께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결국 (무례하게도) 유럽에 도착한 뒤 겨우 연락을 드렸는데, 다행히 박 수의사님께서는 흔쾌히 연락을 받아주시고 OIE를 구경시켜주셨다.

OIE 본부는 파리 지하철 2호선 몽소(Monceau)역 바로 근처에 위치한다. 몽소역은 에투알 개선문에서 (지하철로 단 3정거장 떨어져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나도 개선문을 구경한 뒤 OIE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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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보다 40분정도 먼저 도착하여 몽소역 바로 옆에 있는 몽소 공원을 산책했다.

몽소 공원은 프랑스 파리 개선문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넓은 녹지 공원으로 다른 프랑스 공원들과 달리 영국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원 안에는 연못, 기둥, 다리, 조각상, 나무, 꽃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많은 파리 시민이 반려동물과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파리에 갈 일이 있는 분은 꼭 몽소 공원에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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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E 건물을 처음 보면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의계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기구의 본부가 작은 3층 건물에 위치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OIE를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생각보다 작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실제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2층, 지상 3층의 본 건물 외에 일부분을 사용하는 2개의 건물이 더 있다. 즉 총 3개의 건물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형태다.

OIE는 UN이 결성되기도 전인 1924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뒀다고 한다.

OIE는 파리 본부와 함께 전 세계에 13개 지역본부(Regional Offices)를 두고 있는데, 아시아에는 일본 도쿄와 태국 방콕에 OIE 지역본부가 있다.

현재 OIE 본부에는 박민경 수의사님과 이재명 사무관님 등 2명의 한국 수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농식품부에서 근무하던 이재명 사무관님은 현재 OIE에 파견근무를 나온 상태다. 반려견을 포함한 전체 가족이 모두 파리로 와서 함께 생활한다고 하셨다.

이재명 사무관님은 International Trade Department에 근무하고 있고, 박민경 수의사님은 Scientific and technical Department에 근무하고 있었다.

박민경 수의사님은 한국이 OIE에 가입한 지 60년이 되는 2013년에 한국인 수의사 최초로 OIE 정식직원이 됐으며, 지금까지 쭉 Scientific and technical Department에서 근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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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세계 180개국이 OIE에 가입되어 있으며, 한국은 1953년에 가입했다.

OIE 사무실을 들러보는 중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프랑스 출신 수의사가 있었다. François Diaz 수의사는 “얼마 전 한국 대전에서 열린 APIMONDIA에 다녀왔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대전컨벤션센터 및 대전무역전시관에서 개최된 제44회 세계양봉대회(APIMONDIA) 참석차 한국에 왔었다고 한다. 내가 OIE 본부를 방문하기 바로 일주일 전에 한국에 있었던 셈이다.

참고로 세계양봉연맹(APIMONDIA)이 주최하는 세계양봉대회는 1897년 벨기에에서 세계 양봉가들의 친목모임을 시작으로 2년에 한 번씩 각 나라를 순회하며 개최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85년), 중국(93년)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 번째로 대회를 개최했다.

“Bees connecting the world!”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44회 세계양봉대회에는 130개국 양봉관련 학자와 연기기관, 기업관계자 등 1만여 명이 참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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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IMONDIA 2015 참석차 한국 대전에 왔었다고 반갑게 인사해 준 François Di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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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는 OIE 본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걸려있었다. OIE 본부에는 약 8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꽤 클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지하로 내려가면 큰 회의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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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참가자가 많아져 다른 장소에서 총회를 개최하지만, 그 전에는 이곳에서 OIE 총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나도 슬쩍 앞으로 나가 태극기와 함께 사진을 찍었지만, 태극기는 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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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는 간단한 음식과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거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파리에서의 생활, 프랑스어 공부, OIE에서 하는 일 등을 주제로 박민경 수의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OIE는 공식적으로 주 5일 근무에 오후 5시 퇴근이지만 야근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직원은 출장도 잦다고 한다.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는 아미칼 활동이었다. 박민경 수의사님은 현재 OIE 본부에서 일종의 친목회인 아미칼(Amical) 활동을 하는데, 직원들의 친목도모를 위해 볼링을 치러가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같이 먹으러 가기도 하고, 각 국의 전통음식을 서로 가져와서 나눠먹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베르나 발라 사무총장도 아미칼 회원이다). 각 국의 전통음식을 먹는 이벤트 날에는 박 수의사님이 준비한 김치전과 김밥이 전 세계에서 모인 OIE 직원들에게 소개됐다.

이런 부분도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하나의 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미칼에서는 또한 크리스마스 파티나 새로운 직원이 오면 퇴근 후 함께 모여 맥주를 마시며 간단하게 환영해주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방문한 날이 새로운 인턴 2명을 위한 웰컴드링크가 열리는 날이었다.

OIE를 구경한 뒤 웰컴드링크가 열리는 자리에 이재명 사무관님, 박민경 수의사님과 함께 참여했다.

이 날은 튀니지에서 온 남자 수의사인 Shadi Hénchiri 씨와 이탈리아에서 온 비수의사 인턴에 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Shadi Hénchiri 수의사는 IVSA활동을 통해 한국 수의사와 수의대학생들을 알고 있었고(나와 공통으로 아는 사람도 여러 있었다), 심지어 데일리벳도 알고 있었다. IVSA한국 지부 친구들로부터 데일리벳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이다(이렇게 신기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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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아르헨티나, 일본, 프랑스, 세르비아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수의사 및 일반 직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지난해 가을 일본에서 개최된 JBVP 포럼에 참석하여 여러 일본 수의사를 알게 되었는데, 이 날 일본 출신의 수의사 직원분과 얘기하다보니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녀는 파리 본부로 오기 전에 OIE 도쿄 지역본부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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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E를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작은 건물에서 수십 명 밖에 되지 않는 인력으로 어떻게 그렇게 큰 일 들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 국제기구에 관심을 갖는 수의사·수의대학생들이 많아졌다. OIE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인턴 공고가 게재되므로, 관심 있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자주 챙겨보면 좋을 것 같다.

국제기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파리에 가게 되면 꼭 OIE를 구경해보길 바란다(수의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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