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0] 수의사 출신 `4선 국회의원` 김병순 수의사

등록 : 2018.02.13 13:33:33   수정 : 2018.02.26 23:36:59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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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10. 김병순(金炳淳, 1910~1973)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수의사 출신 정치인, 대한수의사회 초대 및 2대 회장

1910년 3월 26일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1932년 일찍이 일본 아자부[麻布] 수의축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대선배 수의사이다. 청년 시절인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에서 농회(현 농협) 기수(기능직), 지방 산업 기수 및 군청 기수를 거치며 수의축산 분야의 일선에서 10여 년간 종사하였다.

그 후 8.15 광복과 동시에 미 군정청 농림부 축산과에서 윤상원(尹相元) 과장과 함께 잠시 일하다가 대한농회(일제 때의 조선농회가 대한농회로 개편)의 축산부장으로 영전한 이래 줄곧 축산 사업을 통괄한 수의계의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우리나라 수의축산 및 농민 단체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으며,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수의축산 분야에서 1950년대 대한축산공업조합연합회장을 시작으로 대한농민회 상무위원, 이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축산 단체인 축산진흥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수의사들의 전국 조직인 대한수의사회에 영입되어 초대 및 제2대 회장(1957. 10. 26.〜1961. 4. 13.)으로 수의사회의 기틀을 잡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 밖에도 자유당 시절(제3대 및 제4대) 및 민주공화당 시절(제6대 및 제7대)에 걸쳐 무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수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서 이룬 업적 중 수의축산 분야의 활동을 요약하면 수의사법(1957. 5. 30.), 가축전염병예방법(1961. 12. 30.), 축산법(1963. 12. 24.) 등의 입법에 기여했음은 물론이고 정부의 예산 심의와 긴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많은 자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축산 신문을 발간하였고 축산회관 및 수의사회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전국의 축산 유관 기관과 동지들을 통해 찬조금을 모금하는 데도 앞장섰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자유당 시절인 1954년 고향인 해남군 갑 선거구에서 제3대 국회의원(1954. 5. 31.〜1958. 5. 30.) 선거에 자유당으로 출마하여 당시 현역의원이던 무소속 윤영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으며, 이어 1958년 제4대 국회의원(1958. 5. 31.〜1960. 7. 28.) 때도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홍광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후 1961년에는 3.15부정선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반민족행위자 공민권제한법’으로 잠시 공민권이 제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1963. 12. 17.〜1967. 6. 30.)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중앙상임위원 및 중앙정책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이어 제7대 국회의원(1967. 7.1.〜1971. 6. 30.) 선거에서 지역구인 해남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민주공화당 전남제14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육군참모총장 출신 임충식 예비역대장에 밀려 탈락하였다. 2년 후인 1973년 3월 5일 많은 후배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영면하였다.

농림부 축산국장을 지낸 김영한(金永漢)의 회고록 『畜産과 함께 걸어온 50년』(1998)에 실린 그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김 의원은 축산인에게, 특히 학교에서 수의학과 축산학을 공부한 기술자 그 누구에게도 친절했고, 관대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공직 생활에서의 일이다. 그분은 풍기는 품격처럼 보스 기질이 강했다. 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미 군정 시절 대한농회의 업무가 완전히 독립될 때 지부 조직을 구성하고 도지부 축산과장을 임명할 때였다. 그 당시의 사회사정에 비추어 도지사나 지방 유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출했다. 자기가 적임자로 선정한 사람을 임명했다. 그런 일은 소신과 배짱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했다.”

“우리 후배들은 그분의 그런 큰 업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병순 씨는 신장 178센티미터에 체중 80킬로그램이 넘는 체형이 말해주듯 만나는 상대를 압도한다. 혈색이 좋고 까만색 넓은 얼굴에 유난히 크고 까만 눈썹, 그분을 한번 만난 사람은 좀처럼 그 얼굴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다. 그는 아자부대학 시절 씨름 부원으로 일본의 전국학생씨름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씨름선수였다고 들었다. 따라서 그분은 소탈한 성격으로 대인관계에서도 강한 친화성을 갖고 있었다.” 글쓴이_신광순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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