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의 동물복지 논의 따라잡기/최태규 수의사

제53회 국제응용동물행동학회 콩그레스 참관기

등록 : 2019.08.14 15:49:15   수정 : 2019.08.14 15:52:03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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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3번째 응용동물행동학회(ISAE, International Society of Applied Ethology)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렸다.

‘살 만한 동물의 삶’(Animals Lives Worth Living)을 테마로 내건 이번 대회에는 37개국에서 411명이 참가해 108개의 구두발표와 182개의 포스터 발표가 이어졌다. 참가자 다수는 동물행동학 연구자와 학생들이고 그 외에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공무원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유럽연합을 비롯해 각 지역의 동물복지 기준을 만드는 데에 근거를 제시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동물복지학의 근간이 되는 것이 동물행동학이기 때문이다.

이 학회의 동물행동학은 사람이 기르는 농장동물과 실험동물, 반려동물의 행동에 대해서 신경과학이나 진화처럼 근원적 영역에서부터 현실에 응용하는 도구, 풍부화 재료, 먹이까지 아우른다.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행동학과는 방법론의 일부를 공유할 뿐 연구의 목적이라는 큰 줄기에서 갈라진다. 수의학에서 ‘치료’의 영역까지 다루는 동물행동의학과도 결이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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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열리는 만큼 ‘물고기 복지’가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들어갔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어를 양식해서 파는 나라다.

유럽연합의 동물복지법에는 동물의 범위를 척추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먹는 물고기 역시 동물복지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물고기복지에 동물행동학자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년 안팎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육상동물에 비해 물고기의 통증과 고통에 공감하기 어려워한다. 두 개의 눈, 두 개의 콧구멍, 한 개의 입이 있지만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바뀌곤 한다.

그러나 물고기의 통증은 명백하다. 물고기도 여느 동물들처럼 고통을 기억하고 싫어하고 피한다.

베르겐 아쿠아리움의 연어 전시

베르겐 아쿠아리움의 연어 전시

세션은 ▲출생 전 후의 영향(Pre- & Postnatal Effects) ▲물고기 행동과 복지(Fish Behaviour & Welfare) ▲행동과 영양(Behaviour & Nutrition) ▲인지와 복지(Cognition & Welfare) ▲환경 풍부화(Environmental Enrichment) ▲행동과 유전(Behaviour & Genetics)▲ 인간-동물 관계(Human-Animal Interactions) ▲사회적 환경(Social Environment) ▲축산의 새로운 경향(Addressing Future Trends in Animal Production) 그리고 그 밖의 주제들(Free Communications)로 크게 나뉘어 있고 그 안에 수 많은 세부 주제로 구두발표가 이어졌다.

272개의 포스터 발표까지 초록(abstract)만 읽기에도 벅찼다. 링크(클릭)에서 이들 발표의 모든 초록을 볼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주제만 소개한다.

▶ 첫 강연은 평생 물고기 행동을 관찰한 글라스고 대학 펠리시티 헌팅포드 교수(Felicity Huntingford)의 <기초 과학과 응용 행동학의 시너지: 평생 물고기를 관찰한 교훈>이었다.

그는 1972년부터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유형과 공격성을 나타낼 때의 비용에 대해 공부했고 후에는 자연스럽게 양식 어종의 공격성을 줄이기 위한 응용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양식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면역학/행동학적으로 나타나는 반응 연구는 생산성과 동물복지 모두에 중요한 연구였다. 주요 양식 어종인 연어는 이미 가축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공격성을 나타내는 패턴은 야생 물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양식업자는 이런 사실을 이미 이해하고 있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 말(馬)은 말을 못하지만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 추운 날씨에 말에게 담요(rug)를 덮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제로 말이 항상 추워할 것인지는 물어봐야 안다는 아이디어다.

두 가지 기호를 말에게 훈련시켜서 말이 담요를 덮거나 덮지 않는 것을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말들은 기온이 낮을 때 담요를 계속 덮어놓으라고 사람에게 의사를 표시했고, 기온이 오르면 담요를 벗기라고 주문했다.

▶ 농부들은 돼지의 공격성과 싸움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돼지 농부, 수의사, 축산학과 학생, 동물과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돼지의 공격성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돼지들이 얼마나 힘들지, 싸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물었다.

의외일지 모르지만, 영국의 농부들은 다른 직업군의 참가자들보다, 특히 현장 경험이 없는 학생들보다 더 민감하게 돼지의 공격성을 판단했다(국가별, 문화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모든 조사 참가자군은 돼지가 싸우는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실제 싸움을 보지 못할 때에는 돼지의 공격성을 과소평가했다.

▶ 마지막으로 영국의 수의사들과 수의간호사들에 대한 설문을 소개한다. 수의업계 종사자들이 왜 ‘Quality of Life(동물의 삶의질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 이하 QoL)’를 사용하지 않는지를 90명의 임상수의사와 20명의 수의간호사에게 물었다.

29.1%만이 QoL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존재를 안 후에도 반드시 사용하겠다는 답변은 18.2%에 지나지 않았다. QoL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시간 부족’이 가장 컸고, 보호자의 거부, 불충분한 정보가 이어졌다.

수의사들은 ‘항상 바빠서 굳이 평가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대학에서 다 배웠다는 이유로 더 필요를 못 느낀다’는 발표자(역시 수의사다)의 투덜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수의사들이 질병의 치료를 넘어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는 더 구체적이고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평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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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은 다음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짧은 강의와 토론이 진행됐다. 각 분야의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서로 생각을 나누고 배울 수 있었다.

1. 대형 군집 사육에서 개체 수준의 자료를 시각화하고 분석하기 (Visualising and analysis of individual-level data within large group systems),

2. 손상 행동 예방을 위한 앞으로의 연구 경향 (Futrure trends in the prevention of damaging behavior)

3. 물고기 복지의 새로운 지표 (Novel indicators of fish welfare)

4. 산업동물복지 학습에 학생 참여 유도 (Engaging students in learning about production animal welfare assessment)

5. 분만기의 젖소 관리 –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까? (Managing the dairy cow around the time of calving – can we do better?)

6. 동물 훈련 – 효과와 복지 (Animal training – efficacy and welfare)

나 역시 좁은 횟집 수조에서 물고기 복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이었고, 고맙게도 헌팅포드 교수를 비롯한 물고기 복지 연구자들에게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물고기 복지 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나라에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정말 용감하다’는 칭찬에 무리해서 학회 참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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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국인 노르웨이나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동물복지 의제를 선점한 나라에서는 물론이고 부탄처럼 수의과대학조차 없는 곳에서도 동물복지 연구자가 참가했다. 옆 나라 일본과 중국도 열심히 쫓아가는 분위기로 연구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축산과학원의 연구자를 비롯해 세 명의 참가자가 있었으나, 우리 경제규모나 축산규모에 비추어보면 ‘어떻게 이렇게 동물복지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연구 기반이 미비하다.

단편적으로, 반려동물 쪽에서도 동물복지가 저해되는 주요한 요소로 동물의 안락사가 늦어지는 것을 걱정하는데, 한국은 아직 안락사를 입 밖에 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요 몇 년 동안 ‘동물권(리)’이라는 말이 급격히 많이 쓰이고 있다. 물론 정제되지 않은 쓰임이고 동물복지와 혼동해서 쓰기도 한다. 반면에 동물복지라는 개념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동물복지는 과학의 영역이고 동물권리는 철학과 관념의 영역이다. 이미 유럽연합은 대내외적으로 동물복지를 무역의 조건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학문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들이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이유에서라도 동물복지 연구와 제도화는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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