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검사, 다다익선인가요?

함께 고민하는 수의 윤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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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연구실

■ 사례

대형 동물병원에서 영상진단을 맡고 있는 수의사A는 “앞다리를 약간 불편해하는 것 같고 어딘가 모를 약간의 통증이 있는 것 같다”는 모호한 주증으로 내원한 환자의 MRI 촬영을 의뢰받았다. 환자의 주치의B는 두부, 경추, 흉추, 요추까지 모든 부위의 촬영을 요청했다.

A는 MRI 촬영을 위한 마취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이 우려되었고, 불필요하게 많은 영상진단 검사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치의B가 자신이 소속된 동물병원의 원장이었기에 괜한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MRI 촬영을 진행하였다.

검사 결과, 임상증상과 관련된 의미 있는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촬영된 영상의 가장자리에서 우연히 부신의 종괴가 발견되었다. 수의사A는 조금 전까지 쓸데없는 검사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며 “검사는 정말 많을수록 좋은 걸까?” 생각했다.

(2023년 11월에 제보된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과잉활용(overutilization)의 의미와 원인

진단검사의 종류는 갈수록 전문화되며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고가의 영상진단 장비인 CT와 MRI의 사용은 동물의료에서도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데, 2014년 국내 16대였던 동물병원의 CT는 2021년 기준 94대가 가동 중인 것으로 집계되었다.1)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 활용을 뜻하는 과잉활용(overutilization)은 그간 수의학에서는 논의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동물의료에서도 영상진단 장비가 발전하면서, 진단검사에 의존도가 높은 동물의료 특성상 영상진단 검사의 과잉활용은 임상수의사라면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된다.

영상진단 검사의 과잉활용은 의학계 전반의 문제이다. 인의에서 불필요한 영상검사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최대 40%의 영상진단 검사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2)

앞선 칼럼에서 과잉치료와 관련하여 의학적 무의미함(medical futility)을 다룬 바 있다.3)

영상진단을 포함한 진단검사의 과잉활용에 대한 윤리적 판단도 본질적으로 그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치료가 아닌 검사 단계이기에 환자에 대한 이익과 해악을 평가하기가 더욱 모호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진단검사, 그 중에서도 영상진단 검사 사례에서 과잉활용을 윤리적 측면에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영상진단 검사의 과잉활용 원인과 관련해서 동물의료에서 분석된 사례가 없으므로 인의에서 분석된 요인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1) 방어진료(defensive medicine)

인간 의료에서 영상진단 검사 과잉활용이 발생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원인은 방어진료이다. 환자에게 이익이 되기보다는 의사에게 과실 혐의가 제기되지 않도록 의료제공자를 보호하려는 조치로서 영상진단 검사가 선택되는 것이다.

진료 결과와 그 책임에 대한 부담감은 수의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이는 진단검사에 의존도가 높은 동물의료에서도 비슷한 선택으로 이어질 것이다.

2) 소비자주의(consumerism): 보호자의 요구5)

소비자주의는 검사량이 증가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근래에는 반려동물의 건강검진이 활성화되면서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영상진단 검사를 원할 경우 수의사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진료의 무익성과 보호자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자는 검사의 실제 혜택이나 비용의 발생 원리, 해악의 종류나 정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보호자는 동물의 대변자임에도 동물의 이익을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검사 시행을 원할 수 있으며, 오히려 수의사가 검사하지 않는 경우 진료 태만이나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 자가의뢰: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검사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영상진단 검사를 수행하거나, 금전적 이해관계가 있는 시설(병원)에 환자를 의뢰하여 검사를 수행하는 경우이다.

CT와 MRI 같은 고가 장비는 장비비 외에도 운영비, 소모품비, 인건비와 같은 유지비용이 발생하므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부담감이 늘 작용할 수밖에 없다.

4) 중복검사

기존 동물병원에서 다른 동물병원으로 레퍼하는 경우 같은 검사를 중복해서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경과를 보는 등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검사도 있지만 단지 다른 동물병원에서 왔다는 이유로 관례적으로 검사를 수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5) 그 외

적합한 절차에 대한 지침, 가이드라인의 부족, 주치의가 환자의 상태에 대해 단지 확신을 얻고 싶거다나, 기초적인 신체검사 같은 충분한 환자정보 없이 하는 영상검사 등이 과잉활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상진단 검사의 과잉활용에서 고려해볼 문제들

1) 동물에 대한 해악(harm/risk)

영상진단 검사의 동물에 대한 해악은 크게 방사선 노출, 마취 위험성, 보정 스트레스 정도가 주요할 것이다. CT 촬영은 동물 환자에게도 잠재적으로 암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지만, 대다수의 수의사는 그 위험성을 간과해 왔으며 촬영자가 아닌 동물 환자의 방사선 방호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6)

또한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해야 하는 동물의 MRI 촬영은 사람과 달리 마취가 필요하다. 여러 부위를 촬영하는 MRI 과잉활용은 동물 환자의 장시간 마취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검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동물을 보정할 때의 스트레스 역시 해악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공정성(fairness): 비용과 분배 측면7)

동물의료에서 과도한 영상진단 검사로 지출되는 비용은 보호자에게 직접적인 청구로 이어진다. 보호자 개개인의 비용 부담은 점점 증가할 것이고, 동물의료 시장 규모는 커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당장에 눈에 띄는 문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호자 개인 차원을 넘어 전체적인 동물 의료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동물 의료시장이 아무리 성장세에 있다 하더라도 동물 의료에 할당되는 비용과 자원은 한정적이다.

동물의료에서 영상진단 검사에 할애되는 비용과 자원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 다른 동물의료 분야에 할당되는 비용과 자원은 그만큼 감소하여 분배에 왜곡이 발생한다.

어떤 분야에는 지나치게 비용과 자원이 집중되고, 반대로 어떤 분야는 의료의 비용과 자원이 적절히 분배되지 않아 의료의 기회나 질이 담보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케이스 분석

이 케이스의 동물병원은 원장 수의사(주치의 B)에 의해 명확한 근거 없이 MRI 검사가 과잉활용 되는 상황이 반복하여 일어나고 있다. 이 병원에 고용된 수의사 A는 이 상황에 도덕적 스트레스를 느끼면서도, 위계 조직에서의 갈등을 우려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의학적 무의미함의 문제를 치료보다 진단 영역에서 논의하는 것은 훨씬 더 불확실성이 많다고 말한다.8)

영상진단 검사의 과잉활용 개념은 인간 의학에서도 여전히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방사선 사진을 한 장 더 촬영하는 것의 환자에 대한 위해도는 실제로 미미할 것이고, 동물의료는 그 특성상 불확실성을 감수하고서라도 검사에 대한 이익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케이스에서 원장 수의사가 “나는 검사의 이익이 더 많다고 판단했어요”라고 말하며 검사를 남용한다면, 과잉활용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일까?

우리는 드라마에서 종종 완전범죄를 노리는 범죄자를 보고는 한다. 범인의 알리바이는 완벽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과 장소에는 그 이유에 어색함이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무익성을 따지는 것과 같은 윤리에 대한 기술적 접근 방법9)은 알리바이 같은 것이라,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 체계 내에서 어색하지 않게 논리를 갖다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완벽해도 그가 죄를 행하려 했던 마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때, 그 범죄자는 왜 그런 옳지 않은 마음을 먹게 됐을까. 이것을 덕 윤리(virtue ethics)로 설명하자면 그가 덕을 갖추지 못해서 그렇다. 덕(virtue)이란 삶에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려고 하는 특징적인 성향이다.10)

(표1) 덕 윤리(virtue ethics)는 행위자 자체가 도덕적 가치와 신념을 내재화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행위자 스스로 덕을 지닌다면, 윤리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도덕철학이다.

Hafferty와 Franks는 “윤리적 기술로 무장했지만 덕성(virtue)이 결여된 의사의 이미지는 윤리적 의학과 윤리적 의사라고 보기엔 너무 무서운 묘사입니다”라고 하였다.11)

윤리는 단순히 기술이 될 수 없다. 수의사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훌륭한 수의사”란 정직하고, 이타적이며, 자율적이고, 공감능력을 갖추고, 좋은 매너를 갖추는 것을 포함한다.12)

 

표1.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의 가치들

이러한 덕의 가치들은 대학에서의 한 시간 수업으로 체득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학습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군의 문화, 직업 현장에서 롤모델로서 선배들이 보여주는 모습 등이 영향을 줄 것이다.13)

유덕한 수의사가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할 능력이 아니라 평생 추구해야 할 등대와 같은 가치이다.14)

 

이 케이스에서 수의사A는 고용된 수의사로서 평소 과잉활용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요청된 검사를 모두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직장 내 위계로 인해 의견 개진이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전문가적이지 않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부수적인 발견(incidental finding)으로 종괴가 발견되자 A는 영상진단 검사의 과잉활용이 윤리적으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인지 혼란을 느끼는데, 부수적인 발견은 애초에 의도한 것이 아니고 늘 있는 일도 아니므로 이를 검사에 대한 환자의 이익으로 고려할 수는 없다.

A가 과잉활용된 영상진단 검사 결과를 판독하며 환자의 검사 이익과 별개로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그 이유는 검사가 시행된 배경에 윤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용은 분명 검사의 이익과 해악을 치열하게 고민한 적정수준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만약 이 케이스의 원장 수의사가 덕을 갖춘 수의사였다면, 과잉활용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주

1) “2021년 기준 전국 동물병원 CT 94대, 전체 방사선 장비 3,400개” https://www.dailyvet.co.kr/news/practice/192600, 데일리벳

2) Hofmann, Bjørn. “Too much of a good thing is wonderful? A conceptual analysis of excessive examinations and diagnostic futility in diagnostic radiology.” Medicine, Health Care and Philosophy 13.2 (2010): 139-148.

3) 의학적 무의미함 ‘할 수 있지만, 해야 할까’. https://www.dailyvet.co.kr/news/187853, 데일리벳

4) Jury, Farrin B. Addressing medical imaging overutilization with clinical decision support. Diss. Utica College, 2015.

5) Magnavita, Nicola, and Antonio Bergamaschi. “Ethical problems in radiology: radiological consumerism.” La radiologia medica 114.7 (2009): 1173-1181.

6) Gregorich, Scott L., et al. “Survey of veterinary specialists regarding their knowledge of radiation safety and the availability of radiation safety training.” Journal of the 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 252.9 (2018): 1133-1140.

7) Magnavita, Nicola, and Antonio Bergamaschi. “Ethical problems in radiology: radiological consumerism.” La radiologia medica 114.7 (2009): 1173-1181.

8) Hofmann, Bjørn. “Too much of a good thing is wonderful? A conceptual analysis of excessive examinations and diagnostic futility in diagnostic radiology.” Medicine, Health Care and Philosophy 13.2 (2010): 139-148.

9) Magalhães-Sant’Ana, Manuel. “A theoretical framework for human and veterinary medical ethics education.” Advances in Health Sciences Education 21.5 (2016): 1123-1136.

10) Hursthouse, Rosalind; Pettigrove, Glen (2018). “Virtue Ethics”. In Zalta, Edward N. (ed.).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nter 2018 ed.).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12) “The image of a physician armed with a phalanx of ethical skills but shorn of virtue is a frightening depiction of what might be claimed as ethical medicine and the ethical physician”. Hafferty, F. W., & Franks, R. (1994). The hidden curriculum, ethics teaching, and the structure of medical education. Academic Medicine, 69(11), p. 870.

13) Mossop, Liz H., and Kate Cobb. “Teaching and assessing veterinary professionalism.” Journal of Veterinary Medical Education 40.3 (2013): 223-232.

14) Doukas, David John. “Promoting professionalism through virtue ethics.” The American Journal of Bioethics 19.1 (2019): 37-39.

15) McCammon, Susan D., and Howard Brody. “How virtue ethics informs medical professionalism.” HEC forum. Vol. 24. Springer Netherland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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