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동제한명령 어긴 농가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지방자치단체가 살처분보상금을 손해배상청구 할 수 없다고 본 대법원 판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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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에서 살처분 보상금에 관한 판결이 하나 선고됐다.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하여 판매한 돼지 때문에 구제역이 발생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살처분을 하게 되었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보상금 등 살처분으로 인해 지출한 비용을 위반농가에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대법원 2022. 9. 16. 선고 2017다247589 판결).

판결에 따르면, A농가는 근처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이동제한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B농가에 돼지를 판매했다.

그로 인해 며칠 뒤 B농가에는 구제역이 발생하였고, 관할 지자체가 살처분을 집행하였다. 해당 살처분으로 인해 지자체는 살처분 비용과 B농가에 대한 살처분 보상금 및 생계안정자금을 지출하게 되었다.

이후 지자체는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출하게 된 원인이 A농가의 이동제한명령 위반 때문이라며 A농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령을 위반하여 구제역을 발생시킨 농가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대법원은 어떤 이유에서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일까. 판결문을 보자.

 

…(중략)… 이러한 법률의 입법취지와 관련 규정 등을 종합하면, 구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이동제한명령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뿐, 구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인 원고가 이러한 규정을 들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지방자치단체가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가축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구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원고가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급하게 된 가축전염병확산의 원인이 피고들의 이 사건 이동제한명령 위반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원고의 살처분 보상금 등 지급이 피고들의 이 사건 이동제한명령 위반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라거나 원고가 다른 법령상 근거 없이 곧바로 피고들을 상대로 원고가 지급한 살처분 보상금 등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구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들의 이 사건 이동제한명령 위반과 원고의 살처분 보상금 등 지급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있어서 상당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후략)…

 

판결 내용은 사실 굉장히 간단하다.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살처분 보상금 등 지급과 위반농가의 이동제한명령 위반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았다.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위법한 행위를 하였어야 하고, 그 위법한 행위 때문에 손해가 생겼어야 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나에게 생긴 손해가 그 위법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면, 즉 상대방의 행위와 나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

대법원은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출한 것은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한 농가의 위법행위 때문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이 그렇게 본 근거는 무엇일까. 위 판결문의 밑줄 친 문장을 보자.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가축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라고 하였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는 이동제한명령과 살처분명령, 그리고 살처분 보상금에 관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는데, 해당 규정들을 종합해보면 살처분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그 가축전염병의 확산 원인이 무엇인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법이 그렇게(=보상금을 주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대법원은 법에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에 B농가에 보상금이 나간 것이지 가축전염병을 확산시킨 A농가 때문에 보상금이 나간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언뜻 이해가 잘 안 될 수는 있다. A농가가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하여 구제역을 확산시킨 것은 분명히 잘못한 행위다.

A농가가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지자체에서 B농가를 살처분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B농가에 살처분 보상금이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 1, 2심에서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A농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해를 위해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여러 관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사실적인 측면만 고려하여 ‘만일 a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b라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 a와 b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견해가 있다. 이를 ‘조건설’이라고 한다.

A농가가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지자체가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할 일도 없었을 것이므로, 조건설에 따르면 A농가의 위법행위와 지자체의 살처분 보상금 지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게 된다.

그런데 조건설에 따르면 인과관계가 무한정 확장되는 문제가 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경우를 가정해보자. 살인범의 어머니가 살인범을 낳지 않았다면 살인의 결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건설에 따르자면 살인범의 어머니가 살인사건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법적인 책임이 확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를 다소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사실적 측면과 규범적인 측면까지 모두 고려하여 경험적으로 행위와 결과 사이에 높은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견해를 ‘상당인과관계설’이라 한다.

우리 법원이 판결문에 ‘상당인과관계’라는 말을 쓰는 것은 이 견해를 기초로 법리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사실적인 측면보다 규범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적, 자연적으로는 A농가가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면 B농가의 관할 지자체가 보상금을 지출할 일도 없었던 것이 맞다.

하지만 규범적으로 지자체의 보상금 지출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위 법률상 보상금 지급 여부는 가축전염병의 확산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A농가에서 B농가로 출하된 돼지 때문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맞다 할지라도, A농가에 이동제한명령이 내려지지 않았거나 A농가가 자신의 돼지가 구제역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B농가에 돼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B농가에는 살처분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A농가가 원인인 줄 몰랐더라도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B농가에는 살처분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보상금도 지급되었을 것이다.

이는 모두 가축전염병 예방법이 ‘그렇게 하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대법원 판결은 살처분의 법적 성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헌재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상 살처분의 법적 성격을 “가축의 전염병이 전파가능성과 위해성이 매우 커서 타인의 생명, 신체나 재산에 중대한 침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막기 위해 취해지는 조치로서, 가축 소유자가 수인해야 하는 사회적 제약의 범위에 속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14. 4. 24.자 2013헌바110 결정).

살처분이 공공필요에 의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재산권을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 소유자가 수인해야 하는 사회적 제약의 범위에 속하는 것인 이상 가축 소유자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은 사실 당연한 것이라기보다 가축 소유자의 경제적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예외적인 지급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예외적인 보상금은 법률에 정함으로써 비로소 지급 의무나 범위가 구체화되는 것이다.

결국 A농가로부터의 구제역 전파로 인해 B농가에 집행된 살처분은 당연히 보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상되는 것이다.

대법원이 판결문에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이러한 논리는 대법원이 지자체의 살처분 보상금 지출 원인을 A농가 때문이 아니라 ‘법에 정해놓았기 때문’으로 판단한 근거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최소한 법리적인 측면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무려 5년여 만에 선고되었다. 대법원도 판결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한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지자체가 위반농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일 뿐 A농가와 B농가 사이의 법률관계를 판단한 것이 아니다.

B농가가 살처분 보상금 등으로 보전받지 못한 초과손해가 있다면 A농가에게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위반농가가 아무런 배상책임도 지지 않고 면책받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칼럼] 이동제한명령 어긴 농가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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