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선의 인문수의학②]동물을 통한 궁극적 지식의 탐구 I

아리스토텔레스의 Historia animalium (동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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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소장품이 많은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 Scuola di Atene, 1509-1510)’은 놓치면 아까운 명작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는 시스티나 예배당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를 보기 위해 ‘스텐자 델라 세나투라(The room of segniture, Stanza della Segnatura)’를 찾는다. 그리고 수 많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중앙의 두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가장 먼저 눈길을 준다.

아래 그림에서 멋진 그리스 조각처럼 수염을 기른 상대적으로 젊은 이가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다. 의사인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의 어머니에게서 난 이 청년은 17살의 나이에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고 20년간이나 그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연구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지냈던 약 10년간의 시간을 뒤로하고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세움(Lyceum, 리케이온, Lykeion)이라는 학교를 세운다.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 은퇴하여 고향인 유보이아(Euboea)로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다.

그림1_아테네학당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Raffaello, 1509-1510)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그러하듯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현상, 특히 생물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서양 과학에서 ‘생물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의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수의학의 역사에서 종종 언급되는 ‘동물론(또는 동물지,historia animalium)’을 저술하기도 했다.

흔히들 동물의 역사(History of Animals)로 잘못 해석하는 이 저작물 말고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동물 관련 서적을 남겼다. 사실 그의 저작물 중 25% 정도가 동물에 관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저작물들은 주로 기원전 1세기 경의 편집물을 바탕으로 중세에 출간된 라틴어 서적으로 남아 있으며, 르네상스 이후 학자들이 그리스 원전을 번역하거나 이들 책에 주석을 달아 출판함으로써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서적 중 ‘동물론’ 이외에, ‘동물의 부분에 대하여(de partibus animalium)’, ‘동물의 발생에 대하여(de generatione animalium)’, ‘동물의 운동에 대하여(de motu animalium)’, ‘호흡에 대하여(de respiratione)’등은 직접적으로 동물을 다룬다.

그림2_deanimalium
Historia animalium의 라틴어 번역본 (프랑스, 13 세기, 총 164장)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Online Exhibition “An Odyssey of Knowledge”에서)

총 9권(때로는 10권)으로 편집된 ‘동물론’의 제 8권은 동물의 생리, 행동과 질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호흡기와 턱, 발굽을 비롯해 온 몸에 부종이 생기고, 그 주위가 붉게 되며, 진행상황이 빠른 돼지의 질병인 브란코스(branchos)를 비롯해 –아마도 탄저나 돈단독 등을 의심해 볼 수 있겠지만- 개와 소, 말 그리고 당나귀의 질병이 언급된다(Peters and von den Driesch, 2003).

그러나 이들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나 원인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스스로 치료를 행해본 경험을 기술하지도 않은 듯 하다.

그러나 ‘동물론’은 이후 2천년의 세월 동안 생물학과 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널리 읽혔다. 명의로 이름을 날린 아비세나(이븐 시나, Avicenna, Ibn-sina)가 주석을 남길 정도였다.

그의 생물학 지식은 “매우 사실적이고 체계적이어서 고대 사람들은 이를 백과사전으로 오인할 정도(Balme, 1987, 재인용)”였다고 평가되니 말이다.

표
동물론(historia animalium)에 언급된 동물질병과 그 묘사 예(Peters and von den Driesch, 2003, P29 Tab.1-2 인용)

‘동물론’에 기록된 동물의 생리나 기능, 질병을 실용적인 목적에서만 해석한다면, 특히 이집트의 엘라훈 파피루스(기원전 18세기) 등과 비교할 때 수의학적 수준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 기술이 체계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중세까지 지속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로 인해 이 책에 근거한 질병의 원인∙발생∙전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맹신되었다는 점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론’을 그가 ‘사실’로서의 동물의 차이점과 속성들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으로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동물의 부분에 대하여’나 ‘동물의 발생에 대하여’에서는 동물 신체의 기능과 동물의 생성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을, 즉 인과관계를 탐구하는데 집중한 것과는 다르다(Lennox, 2014).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분과의 기틀을 세웠던 이 위대한 철학자는 “모든 인간은 본성 상 알고자 한다(all men by nature desire to know: pantes anthrôpoi tou eidenai oregontai phusei)”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로서의 ‘알고자 함’은 ‘무엇을 위해서’ 라는 유용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각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런 자연스러운 욕구는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는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이고, 이를 충족 시키는 활동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한다(전재원, 2011).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일상의 경험에서 생성된 피상적이고 조직화 되지 않은 지식을, 조직화되고 과학적인 이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연구하면서 그 답을 구체화 시켰다.

그는 모든 동물의 차이점과 그 속성들을 먼저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이 속성들의 원리와 인과에 대해 연구했다. 밝히고자 하는 인과 관계 이전에 밝히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확하게 정의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론’은 그 차이점과 속성에 중점을 맞춘 저작물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500 여종의 동물들의 신체 부위, 행동과 생태, 발생 그리고 질병 측면의 특성과 차이점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런 특성들을 바탕으로 그는 생물에 대한 지식을 유혈동물의 기관, 유혈동물의 조직, 무혈동물의 기관, 무혈동물의 조직 등 네 분류로 구분했다.

(물론 그의 동물분류가 현대 생물학에서의 분류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지금 맨 처음 생물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어떻게 조직화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한다)

‘동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고 있는 구분(division)의 개념은 명확한 분류의 틀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전제(presupposition)에 가깝다(Lennox, 2014).

그림3_동물탐구
동물을 탐구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수의학적 지식이 다분히 경험적이고 수집적으로 축적되어 온 것을 생각할 때, ‘동물의 질병에 대한 사실’들은 동물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데 필요한 많은 자료 중 일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과 생명을 이해하는데 있어 궁극적인 지식을 이루는데 필요한 정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적 탐구에서 인간과 동물을 구조와 기능, 생식, 발생 등의 측면에서 비교했다. 그는 영양 섭취, 생식, 운동, 감각 기능을 총괄하는 개념으로서 ‘영혼(pshche)’을 비교의 준거로 삼았다. 이 개념은 ‘영혼이란 코스모스 전체를 에워싸는 바람이나 공기 같이 우리 몸에 두루 퍼져 우리를 묶는 숨’이라는 아낙시메네스의 영혼에 대한 물질주의적 해석을 발전시킨 것이다.

영혼은 생성되면서 영양섭취의 영혼, 감각적 영혼, 지성의 단계를 거치며, 이는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가진 영혼의 차이이기도 하다. 영혼, 즉 영혼의 ‘기능’은 조직과 기관들의 형태를 설명하는데도 바탕이 되었다(조대호,2002;조대호, 2005).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세 단계로 보았다.

궁극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에서 자유로운 에피스테메(epistēmē), 개별적인 관찰과 경험을 종합적으로 분류하여 얻는 지식인 테크네(techne), 그리고 단순한 경험적 지식인 엠페레이아(empereia)가 그들이다.

그에 따르면 의학지식은 질병의 치료라는 목적이 뚜렷하며, 이런 실제적인 측면이 강조될 때 테크네에 가까운 것이다.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흐름을 이어 받아 의학을 기초를 세웠던 히포크라테스나 갈레노스 역시 의학의 ‘테크네’적인 성격을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지식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며, 의술에 의해서만 질병의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의학지식의 인과성을 강조했다. 갈레노스는 의학을 ‘에피스테메’로 보았다(여인석, 2004).

그러나 의학서적이 아닌 ‘동물론’에서 인간이 동물을 탐구함으로써 얻게 되었던 지식은, 테크네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에피스테메를 목적으로 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이런 복잡한 얘기보다는 임신한 쥐에게 말이나 소가 물리면 그 독으로 병에 걸린다거나, 광견병이 사람에게는 옮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 대가의 오류를 트집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말이다.

[참고서적]

Balme, DM (1987) The Place of Biology in Aristotle’s Philosophy, in Gotthelf & Lennox 1987, pp. 9–20. 재인용 in Janssens JL and De Smet D (Eds.) (2002) Avicenna and His Heritage: Acts of the International Colloquium Leuven-Louvain-la-Neuve, September 8-September 11, 1999. Leuven university press.

Joris P and Von den Driesch, A (2003) Geschichte der Tiermedizin: 5000 Jahre Tierheilkunde. Schattauer Verlag.

Lennox, J (Spring 2014 Edition) “Aristotle’s Biology”,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dward N. Zalta (ed.), URL = <http://plato.stanford.edu/archives/spr2014/entries/aristotle-biology/>.

여인석 (2004) 고대희랍의학의 의학론. Korean J Med Hist, 13, 121-127.

전재원(2011) 아리스토텔레스와 지욕.철학연구. 119, 305-321.

조대호(2002) [동물의 생성에 대하여] 를 통해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성이론. 서양고전학연구, 18, 95-121.

조대호(2005) 논문: 고대 그리스 철학의 생물학적 이론들에 대한 연구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이전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68(단일호), 19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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