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 통폐합, 이것은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

제14대 대한공중방역수의사협회 부회장 박수현

등록 : 2022.09.15 07:27:53   수정 : 2022.09.15 09:48:45 데일리벳 관리자

지난 8월 29일 「수의사법」 시행령에 따른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를 폐지하고,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른 중앙가축방역심의회에 편입시키는 입법예고안이 공고되었다.

이후, 이에 대하여 수많은 수의사들과 수의대생이 참여한 반대 연서명과 대한수의사회를 대표로 하여 각 수의과대학, 산하 단체들의 의견이 농림축산식품부 측으로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해당 입법예고안을 재공고하는 등 그 의지를 좀처럼 굽히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하여 본 기고를 통하여 기존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현재 상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중앙“가축”방역심의회, 그 자체로 “식물”회의체는 아니었는지?

본론에 앞서,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를 폐지하고, 수의사 국가시험을 총괄하게 될 중앙가축방역심의회(입법예고안의 “중앙가축방역수의심의회”의 현행 회의체)에 대한 현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앙가축방역심의회는 현재 총 6개 분과(구제역, 검역, 소질병, 돼지질병, 가금질병, 인수공통전염병)와 90여명 가량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수의사와 관련 학계 인원은 32명, 공무원은 19명가량으로 각각 전체 비율의 34%, 20%에 이른다.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의 구성은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학계, 법조계, 수의계, 축산 관련 단체, 시민단체, 동물보호단체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동물방역‧검역과 관련된 안건을 의결하는 것처럼 보이고 농식품부 또한 보도자료를 통하여 수차례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게 대부분의 회의는 서면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 또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형태가 아닌, 농식품부가 제안한 안건을 그대로 의결 처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과거부터 수의계가 아니더라도 여러 시민단체와 축산 관련 협회로부터 농식품부의 거수기(擧手機)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수차례 들어왔다.

해당 회의체가 농식품부 측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 따라 거수기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그 회의의 개최 및 안건의 의결이 적재‧적소‧적시에 이루어졌다면 해당 회의체가 그 목적에 따라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공중방역수의사로서 방역현장에 있던 2020년부터 현재까지 근 3년 동안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일대에서 우리나라에서 근절되었다고 배웠던 소 브루셀라병(Bovine Brucellosis)이 폭발적으로 발생하였다(2020.1.~2022.3.까지 전국 570여건, 대한공중방역수의사협회 내부조사 결과).

최근에는 해당 전염병이 전라북도까지 급속도로 확산해나가고 있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하여 동물방역의 기초 근간이 되는 지방자치단체들과 축산 관계자들이 관련 대책을 지속적으로 촉구하였으나 해당 안건에 대한 심의회의 회의는 단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다.

다만 「가축전염병 예방법」 상 중요한 질병이라고 여겨지는 FMD, HPAI, ASF 등에 대해서만 스탠드스틸, 특별방역대책, 긴급방역조치 등의 (매년 시기만 다른, 대부분 과거에 시행되었던 동일한) 안건들만 답습하여 다루어졌을 뿐이다.

이러한 현행으로 판단컨대, 입법예고안 대로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가 현행 중앙가축방역심의회에 통폐합된다면 수의계와 교육자, 학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로 보이며, 농식품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또 하나의 거수기만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사고, 그리고 소통의 문제

수의사라는 직군은 이전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러 농식품부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아래에 포퓰리즘적이고 각종 규제로 일관된 정책들의 희생양이 되어 왔고, 이번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를 통폐합하고자 하는 상황 또한 그 맥락을 이어가는 듯하다.

8월 29일 해당 입법예고안이 공고된 이후, 수의사 각계에서 공식적인 경로를 통하여 우려와 반대의 의견을 전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9월 7일 또다시 동일한 내용의 입법예고안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사고 아래에 「수의사법」과 「가축전염병 예방법」의 법령의 구분 자체를 흔들리게 하고, 타 직군(보건의료인, 법조인 등)과의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은 무시한 채 농식품부는 다만 귀를 닫고 마치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어느 유명인의 발언이 떠오를 만큼 좀처럼 소통과 협의를 하려 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한 정부 부처가 앞장서서 공론화(公論化)를 막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지금, 많은 수의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결국,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이다

지난 8월 30일,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의 통폐합에 반대하는 연서명에 참여한 인원이 2,000여명을 넘어섰다.

농식품부는 이에 대하여 겨우 수의사법에 있는 위원회 하나를 통폐합시키는데 이 정도의 항의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수의사들이 집단의 권익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것을 단순히 수의사 집단이 자기들의 권익을 지킨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부처의 협의와 숙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는 일방적인 통보 방식의 태도, 그리고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조차 없는 해당 입법예고안에 대한 수의사들 그리고 미래 수의사들의 분노와 우려가 서려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릇 사람은 어떠한 행동을 할 때 명분이라는 것이 필요하고, 국가 또한 행정행위를 할 때 명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 명분이 없다면 국가는 어떠한 목적으로, 어떠한 공익을 위하여 행정행위를 하는 것인가. 그저 무질서와 혼란을 불러올 뿐이지 않을까. 우린 그런 사회를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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