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93] 경북 동물방역·위생업무 발전 기여 `조용준`

등록 : 2021.05.10 12:41:41   수정 : 2021.05.10 12:41:43 데일리벳 관리자

한국수의인물사전 93. 조용준(趙鏞俊, 1928~2014). 대구공립농림학교 수의축산과 졸업, 조선총독부 종마목장 수의사 부임, 경북도청 축정과장 및 경북가축위생시험소장, 가축위생시험소 인력 보강 및 기구 확대 기여, 한국동물위생학회 기틀 마련, 동인가축병원 운영.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호는 우경(愚耕)이며, 1928년 6월 22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 대구공립농림학교 수의축산과(34회)를 졸업하고 바로 조선총독부 함경남도 종마목장 수의사(雇員)로 부임하였다가, 그해 8월 해방과 함께 귀향하여 12월부터 경북도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경북도청 산업국 축산·사료·수의계장을 거쳐 1969년 축정과장, 1972년 가축위생시험소장으로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1989년 6월 정년퇴임하였다. 퇴임 후 10여 년간 대구에서 동인가축병원을 운영하였고 말년에는 천주교에 귀의하여 신앙생활과 봉사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2014년 3월 15일 87세에 뇌출혈로 선종하였다.

경북도청 산업국 축정과에서 근무할 때는 해방 후 과도기 수의축산 행정 기반 구축에 진력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지역 여건에 적합하나 과다 수출로 급감한 한우의 증식, 달성-고령 지구 낙농 단지 조성과 젖소 입식, 초지 조성, 우유 가공공장 설립, 월성 지구 비육우 단지 조성 등 축산 농가 소득 증대 사업에 매진하여 경상북도를 축산웅도로 우뚝 서게 하였다.

가축위생시험소장 재직 시절에는 낙농업 초창기 수입 젖소의 주혈원충 그리고 브루셀라 같은 외래 질병과 간질에 대한 대책, 탄저 및 기종저 근절, 원인 불명의 축우 폐사 원인 규명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 보급을 위해 시험소 직원을 중앙연구소에 연수시키거나 중앙연구관을 지방에 초청하여 직접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인근 수의과대학 교수들을 연구실로 초청하여 공동 연구를 하게 하였고, 직원들을 필요한 대학원에 진학시켜 전문가가 되도록 적극 후원하였다. 이를 통해 발굴된 우수 인재들이 대학과 중앙연구 기관으로 진출하여 우리나라 수의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경북도청 산업국 축산과장 시절 구자춘 내무장관을 도지사로 모셨던 인연으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장, 가축위생연구소장, 경기·충남·경남 가축위생시험소장과 함께 새벽 장대비를 맞으며 장충동 구자춘 장관의 집을 방문하여 가축위생시험소의 인력 보강과 기구 확대의 필요성을 건의해 기구를 확장한 것은 물론이고 전국에 100여 명의 인력을 확충했다.

이에 힘을 얻어 전국에 분포된 각 시도단위 가축위생시험소의 구심점을 대한수의학회 가축위생분과회로 모아 매년 업무 연찬과 연구 실적 발표회를 가졌다. 이 발표회는 가축 위생 업무의 전문성 확보와 축산물 위생, 수의 관련 시험 기술 정립 등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600여 명의 수의사 학술 단체인 가축위생학회(현 한국동물위생학회, 편집자 주)로 승격되어 운영되고 있다.

또한, 각종 시험, 연구 사업에 억울하게 희생된 동물의 영혼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팔공산 송림사 계곡에서 돌을 구해 만든 “여러 짐승의 넋을 기리는 비”가 지금도 경북도시험소 정원에 우뚝 서 있어 보는 이에게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지방 공무원이 정년을 송축하는 기념문집을 증정받는 일은 드문데, 축시, 휘호, 격려사, 하사, 감사장 등 40여 편의 주옥같은 글이 답지하여, 해방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88올림픽까지의 축산 행정 전반과 가축위생시험소 36년사 등 59쪽에 달하는 생생한 기록을 추가해『愚耕 趙鏞焌先生 停年紀念文集(우경 조용준 선생 정년 기념문집)』으로 남겼다.

건장한 체구에 고결한 품격과 덕성을 겸비했고, 과묵하면서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했으며, 지조와 신의를 생명으로 하는 행동철학을 실천하였다. 확고한 인생관과 공직관은 도민과 공직 사회의 귀감이 되었다. 어린이와 자식에게도 존중하는 어법을 쓰는 등 예를 다하는 다정다감한 심성의 소유자였고, 술을 좋아했지만 절대 과음은 하지 않았다. 겸양을 미덕으로 하여 세속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오지 않았으며, 타고난 덕성을 갈고닦아 후회 없는 공직의 길을 걸었기에 후배들 모두의 사표가 되었다. 글쓴이_정종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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