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 돋보기②] 원 그리기 방역에서 농장별 대응 시나리오로

예방적 살처분 명령 거부 농장 또 나와..기존 방역 거부감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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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3km 예방적 살처분의 모순’ (보러가기)에 이어..

화성 산란계 농장, 예살 명령 거부 `방역선진형 농장인데..`

예방적 살처분(이하 예살) 명령을 거부한 농장도 다시 등장했다. 화성시에 위치한 산란계 농장인 ‘산안농장’이다.

지난달 23일 화성시 향남읍 소재 산란계 농장(22차)에서 H5N8형 고병원성 AI가 확진됐다. 산안농장은 이 농장으로부터 반경 3km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같은 날 화성시로부터 예살 실시 행정명령을 받은 산안농장은 이를 거부했다. 방역당국의 예살 명령을 거부한 농장은 2017년 익산 소재 산란계 농장인 참사랑농장에 이어 두 번째다.

산안농장은 친환경 동물복지축산농장이다. 물론 동물복지형이나 친환경 사육으로 고병원성 AI를 막을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같은 동물복지축산농장이었던 참사랑농장도 익산시와의 법정다툼에서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동물복지인증 받은 농장에만 AI 발병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 예방조치를 달리할 수 있다고 볼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농장이 2019년 경기도로부터 ‘방역선진형 농장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2016-17년 고병원성 AI로 큰 피해를 입은 경기도가 방역우수농장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며 도입한 사업이다.

산안농장은 선진형 방역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2년간 자부담과 지원 예산을 포함해 약 7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방역 수준이 높은 농장까지 예외없이 예살한다는데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굳이 살처분으로 예방하지 않아도 고병원성 AI 유입을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셈이다.

농장별로 방역수준의 편차가 큰 국내 환경에서 방역수준이 높든 낮든 방역정책상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애써 큰 돈을 들여 방역 개선을 유도할 동력이 사라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홍 전 서울대 교수는 “지금도 필요에 따라 지방 가축방역당국이 심의해 정부에 신청하여 예살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면서 “농장 주변의 지형이나 관련 차량의 동선, 방역 수준 등을 고려해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발생농장 주변의 농장 거리 분석
(자료 : 2014-2016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 역학조사분석보고서)

원 그리기 벗어나 위험성 평가 기반 과학적 접근 필요

AI 발생 전 평시에 농장별 발생 시 대응 시나리오 준비해야

이처럼 농장들도 지도에 원을 그리는 형태의 예살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원을 그리는 방식이 세계동물보건기구(OIE)나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살 범위를 조정하는 일은 형평성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질병 전파를 막으면서도 가능한 적게 예살하는 범위를 정확히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과론적인 비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살 정책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가금수의사인 손영호 반석LTC 대표는 “원발 형태라고 해서 예살 범위를 반드시 줄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수평전파든 원발이든 위험성 평가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이 축종, 계열화 여부, 주변 지형, 도로, 과거 발생이력, 농장의 차단방역수준, 야생조류로부터의 원발 가능성, 유전자원 보존가치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예살 범위를 포함한 방역조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를 고병원성 AI가 발생하지 않은 평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손 대표의 지적이다. 관련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현장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됐다고 곧장 판단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AI 감염농장이 나온 상태에서 준비 없이 예살 범위를 저울질하는 일은 위험부담이 크다. 동시에 가동될 수 있는 전문가 풀이 한정적이다 보니 행정조직에 판단에 의존하게 되고, 중구난방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홍 전 교수는 “(예살 범위를) 처음에는 전문가가 합리적으로 판단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며 행정조직에서 임의로 처리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밀집사육지역을 두고 예방적 살처분을 망설이다가 결국 대규모 확산을 유발한 사례도 있다”고 꼬집었다.

손 대표는 “이러한 위험평가 기반을 각 농장별로 평시에 만들어두는 것이 지자체 동물방역기관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지자체에 위치한 가금농장이 100개면 100개, 200개면 200개의 시나리오를 각각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관내 A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경우, 반경 3km 이내에 위치한 B농장이 A농장과 같은 도로와 축산차량을 공유하고 차단방역 수준이 미흡하다면 예외없이 예살에 포함되어야 한다.

반면 방역수준이 높거나 지형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산업적으로 접점이 없는 C농장은 인근에 위치하더라도 예살을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잠복기 동안 이동제한을 유지하며 정밀검사를 반복하는 밀착방역조치를 적용할 수 있다.

손 대표는 “현재는 일선 방역당국에 인원도 적고 직급도 높지 않아 이 같은 방식을 준비하기 어렵다.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AI 방역업무 전문수의사를 양성했고 ICT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개로 아예 살처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500m냐 3km냐를 논쟁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고병원성 AI 백신접종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부 ‘AI 백신접종,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로 이어집니다 (보러가기)

[고병원성 AI 돋보기②] 원 그리기 방역에서 농장별 대응 시나리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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