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비싸다는 편견은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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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비를 둘러싼 편협한 언론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당한 대가를 받고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도 ‘의료정보가 부족한 보호자’를 노리는 합법적인 강도로 비난 받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KBS, SBS 등 주요 공중파 언론을 비롯해 A경제지, F경제지 등 다수의 신문사가 동물병원 진료비가 너무 비싸며 편차가 심하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K일보에서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특집기사를 2회에 걸쳐 내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한 네티즌 반응은 수의사를 도둑놈으로 매도하는 차가운 내용 일변도다.

1. 동물병원 진료비는 정말 비싼가?

동물병원 진료비는 정말 비싼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물병원 진료비는 비싸지 않다.

동물병원 진료 항목 몇 가지를 사람 진료비와 비교해보자. 사람 진료비를 환자 본인부담금이 아닌 실제로 의사가 가져가는 돈으로 비교했더니, 동물병원 진료비가 전혀 비싸지 않았다. 더 저렴한 항목이 많았다.

진료비비교표1 (1)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동물병원 초진료는 대부분 3,000~5,000원 수준이고 비싼 병원이 15,000원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건강보험수가에 따라 초진료로만 13,000~17,000원을 받는다. 동물병원 초진료가 사람병원 초진료의 1/3~1/5 수준인 것이다.

또한 사람 복부 초음파 검사비의 경우 일반 병원은 9만원선, 종합병원의 경우 평균 15만원 선으로, 동물병원 복부 초음파 검사 비용과 비슷하거나 더 비싼 수준이다.

그렇다면 동물병원 진료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중성화 수술 비용’은 수술 내용에 비해 비싼 것일까. 사람의 경우 반려견처럼 불임목적으로 난소와 자궁을 들어내는 경우는 없지만, 질병적인 이유로 자궁적출이 지시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전자궁적출술은 35만 7천원, 난소 및 부속기와 함께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은 58만 6천원의 수가가 책정되어 있다. 이는 수술만 해당되는 금액으로 수술전 검사비용, 마취비, 입원비 그리고 선택진료비(특진비) 등을 고려하면 실제 의료비는 백만원을 쉽게 넘어선다.

물론 사람과 동물 의료행위에 동일한 가격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고 제도 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동물병원 진료비가 알려진 것처럼 터무니 없이 비싼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 때문에 적게 내는 것이지, 실제 의료비가 싼 건 아니다

인의병원 환자 본인부담율은 25%.. 동물병원 보호자 본인부담율은 100%

정부의 반려동물 진료비 부가세 부과도 보호자 부담 가중에 한 몫

그렇다면 많은 보호자들이 반려동물 진료비가 비싸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간한 2011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1년 국내 총 진료비 46조원 중 환자가 직접 부담한 비용은  12조원에 불과하다.

즉, 환자는 평균적으로 실제 진료비의 4분의 1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상 규정된 진료비의 환자본인부담율은 입원치료의 경우 전체 진료비의 5~20%, 외래진료의 경우 30~60% 정도다.

이러한 혜택의 원리는 간단하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 보험료를 납부하고 사용하지 않는 만큼 아픈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 진료비의 경우 이러한 공적 보험제도가 없기 때문에 모든 비용을 보호자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즉, 반려동물 진료비의 본인부담율은 25%가 아닌 100%인 것이다.

의료비본인부담율

대부분의 보호자는 가벼운 증상에 대해 인의 병·의원에서 1만원 미만의 본인부담금을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려동물 진료비가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정부가 2011년 7월, 반려동물 진료비에 10%의 부가세를 부과하며, 보호자들의 진료비 부담을 가중시켰다.

현재 사람 의료보험도 적자를 보고, 보장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려동물의 공적 의료보험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자의 본인 부담을 줄이려면, 사(私)보험 시장이 활성화 돼야 한다.

즉, 사보험을 통해서라도 보호자의 본인부담율을 낮춰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출시되어 있는 반려동물 보험상품(롯데손해보험,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들은 아직 보편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2. 동물병원마다 진료비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다.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는 것과 함께 또 하나 지적되는 문제점이 바로 ‘동일한 진료에 대해 병원마다 비용이 제각각’ 이란 점이다.

마치 같은 진료는 같은 액수의 진료비를 받아야 하며, 가장 싼 곳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병원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국민일보_동물병원 가격편차
국민일보 기사에 실린 동물병원 가격편차 표

인의 초음파 검사도 병원마다 가격 달라..최대 7.7배 차이

의료서비스 가격은 다양한 요소로 결정…진료비는 당연히 병원마다 다를 수 밖에 없어

같은 진료 항목이라도 환자의 병력이나 증상, 수의사의 경력이나 경험 등에 따라 다른 치료방법이 선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러한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도 급여항목(건강보험에 포함되어 진료에 수가가 정해져 있는 항목)을 제외하면 병원마다 비급여 항목(건강보험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항목)의 진료비는 모두 다르다. 의료보험이 없는 동물진료는 사실상 모든 진료를 비급여 항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진료비가 다른 것이 당연한 이치다.

2012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건강세상네트워크가 국내 335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급여항목 진료비 내역에 따르면, 복부초음파 검사의 경우 최저 3만5천원에서 최고 26만 9천원으로 7.7배의 가격차이를 보였다.

시민들이 흔히 접하는 비급여 진료항목인 임플란트도 가격차가 크다.

2011년 덴탈포커스가 전국 316개 치과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산재료 임플란트는 80에서 200만원, 수입재료 임플란트는 120에서 300만원 수준으로 약 2.5배의 가격차이를 보이고 있다.

병원진료비차이
(2012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건상세상네트워크, 2011 덴탈포커스)

각종 언론이 동일한 항목의 동물진료비가 2배 가량 차이가 나는 것을 큰 문제인양 보도하지만, 수의사가 자유롭게 의료서비스 가격을 정하는 시스템 내에서 진료비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진료비는 수의사의 임상경험과 전문성, 동물병원의 입지, 직원 인건비, 의료장비의 가격 및 감가상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료비를 결정하는 각 요소가 동물병원마다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진료비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료비를 똑같게 혹은 비슷하게라도 맞출 수는 없는 것일까?

3. 수의사들도 진료비 통일 원해… 하지만 가격조사만 해도 담합소지 있어

정부는 지난 1999년, 동물의료수가제를 폐지시켰다.

동물의료수가제를 폐지하고 자율 경쟁을 유도한 것은 수의사들이 아니라 정부였다. 자율 경쟁을 통해 진료비는 낮추고 진료의 질을 올리겠다는 취지였다.

동물의료수가제 폐지로 동물병원 진료비 자율 경쟁이 시작됐지만, 이를 비난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수의사 내부에서 ‘표준수가제’를 도입해 진료비의 가이드라인을 정하자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진료비 표준화는 공정거래법 상 담합행위..실제 벌금부과 사례도 있어

진료비 시세를 조사하는 행위도 담합 소지..소비자 공유 여부와는 무관

실제로 지난 2009년 11월, 부산시수의사회에서 반려동물 백신 접종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가, 담합행위로서 적발돼 약 3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사례가 있다.

당시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한 뒤 “동물병원들이 자유롭게 예방접종비와 사업내용을 결정함으로써 당해 시장에서의 가격 및 서비스 경쟁이 촉진돼 소비자의 후생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결국 동물병원끼리 가격을 비슷하게 맞추고 싶어도, 담합으로 여겨져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뿐 만이 아니다.

가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가격 현황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담합행위로 간주 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총괄과 관계자는 “생산자 단체가 합의하여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상 담합의 소지가 있다” 며 “각 케이스마다 판단할 문제이긴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입장”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처럼 동물병원 진료비 평균 현황을 조사해 수의사는 물론 일반 보호자에게도 공개하는 것과 관련해 “특정 진료비를 정해서 (수의사 단체의) 회칙에 명시하든, 평균적인 진료비를 조사해 단순히 알려주든 그 방법과 상관없이 생산자가 조직적으로 가격정보에 접근하는 행위는 담합의 여지가 있다”면서 “또한 그 정보를 소비자와 공유한다고 해서 담합적 측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즉, 강제적으로 진료수가를 정하지 않더라도, 현재 시세를 조사하여 공유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의 전문성, 보호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건전한 경쟁 필요

피상적인 현상에만 집중한 자극적 보도 자제해야

국민일보는 ‘자율경쟁을 빌미로 진료수가가 사라지고 동물병원 진료비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에서 소비자의 진료 선택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고 보도했다.

소비자의 진료 선택권이 없다니?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동물병원 수의사들은 자신의 실력을 발전시키고 서비스를 개선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1차 진료를 주로 제공하는 동물병원부터 2차 진료만 제공하는 동물병원까지, 동물병원의 종류, 규모도 다양해지고 있다.

동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보호자들의 선택권 또한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물병원 진료비는 부르는 게 값이고, 보호자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 왜곡일 뿐만 아니라 수의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진료비 문제는 수의사와 보호자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수의사를 불신하고 일방적인 책임을 지우는 관점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동물병원 진료비,비싸다는 편견은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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