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장병증 관리, 원포인트 레슨-청담 장튼튼내과동물병원 한성국 원장
브이오엠 알엑스와 함께하는 반려동물 식이전략 ②

만성장병증(Chronic Enteropathy)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계적인 접근(stepwise approach)을 통한 관리가 필요한 소화기내과 분야의 대표적인 질환입니다. 소동물 임상수의사들에게는 구토 및 설사 증상 환자라고 하면 인턴 기간을 마친 진료 수의사가 가장 처음 맡게 되는 환자라는 비교적 가볍게 느껴지는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질환의 광대한 스펙트럼 및 진단과 치료의 어려움과 방법론적인 정교함을 고려해 볼 때, 만성장병증을 위시한 소화기질환은 수의사들이 식이관리, 면역억제제 등의 약물적 접근, FMT 등의 미생물학적 개입 혹은 마이크로바이옴 관리 기술 및 나아가 때로는 외과적 개입에 이르기까지 모든 치료 옵션을 염두에 두고 보호자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을 시행하며 끌고 나가야 하는 장기관리 질환이라는 점이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와 주식회사에서는 ‘브이오엠 알엑스와 함께하는 반려동물 식이전략 ①’을 통하여 ‘만성장병증에 대한 다기능 식이전략’에 대한 이론적인 개괄과 함께 자체 임상연구결과에 대해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만성장병증의 치료와 관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및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공유하고자 국내 최초 소화기내과 전문진료 동물병원인 ‘청담 장튼튼 내과동물병원’의 한성국 원장님을 만나 진행한 대담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성국 원장님은 미국수의소화기내과학회 정회원이며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한 바 있습니다. 수의과대학 및 각종 수의컨퍼런스에서 다수의 강연을 통해 소화기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식이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 원장님의 경험을 지면으로 함께 나눔으로써, 만성장병증의 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치료 및 관리 방법, 나아가 원헬스(One Health) 시대의 수의학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질환 관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POINT 1: ‘만성장병증’에서 강조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장병증’이 아니라 ‘만성’입니다
우선 만성장병증이라는 명칭에서 강조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장병증’이 아니라 ‘만성’이라는 점부터 말씀드리면서 시작해 볼까요? 보호자분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고 계신 것 중 하나가 만성장병증이 만성질환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구토나 설사 같은 증상이 싹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만성 관절염이나 CKD 같은 경우 오랫동안 증상을 관리하고 신경 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만성장병증도 구토나 설사 같은 증상들을 장기적으로 관리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요. 당장 특별한 요법으로 증상을 싹 없애줄 수 있을 만큼 쉬운 질환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성장병증 치료를 진행하면서 알부민 수치도 괜찮고 설사 증상도 없어졌지만 6개월, 1년이 지나도 초음파 소견 같은 것들은 개선이 안 되는 친구들도 많이 있거든요. 조급한 마음 때문에 한 번 토했다고, 하루 이틀 설사했다고 해서 약이나 사료를 바로 바꾸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먹을 약도, 사료도 없을 수 있는 거죠. 수의사는 이런 상황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POINT 2: 만성장병증의 많은 경우는 식이관리만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항생제에 반응하는 장병증(ARE)의 존재에 대해서는 저 역시 회의적입니다. 최근의 증례나 연구 결과를 보아도 마찬가지고요. 극히 단기적으로는 최초 항생제 처방 시 개선이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식이반응성 장병증(FRE)이나 면역억제제 반응성 장병증(IRE)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항생제로 구토나 설사를 치료했다는 것은 사실 ‘언 발에 오줌 누기’였을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실제로 만성장병증의 60%가량이 식이반응성 장병증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이런 관점에서 저는 소화기질환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많은 경우 식이 변경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수의사들은 임상 현장의 실제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저 역시 소화기질환 진료를 보면서 다른 처방이나 처치 없이 오직 식이만을 변경했던 기억은 별로 없어요. 보호자들이 병원에 오는 것은 전형적인 처방이나 처치를 원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대신에 감염성이라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생제를 처방하지는 않고 주로 유산균이나 위장관 보호제를 조제약으로 처방하고는 하죠. 그리고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아서 좋아진 히스토리가 있는 환자들의 경우 상비약으로 처방해 드리기도 합니다. 저는 수의사라면 보호자들의 마음, 즉 심리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뿐만은 아닙니다. 만성장병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보호자 교육(Client Education)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경증이거나 오늘 당장 증상이 없는 경우 대부분의 소화기질환이 식이조절로 개선이 된다는 것을 교육하고, 장기적인 식이관리 플랜 설정을 통하여 증상이 심한 것이 아니면 약 없이 식이관리하는 것이 목표이며 중간에 이 사료에서 저 사료로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점 등을 인식시키죠. 만성장병증에서 중요한 것은 ‘장병증’이 아니라 ‘만성’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리고 싶네요.
POINT 3: 만성장병증에서의 식이관리는 시행착오(trial-and-error) 과정이 필요합니다
보호자분들 중에는 저에게 오면 환자가 단 한 번에 나을 거라 기대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만성장병증은 긴 호흡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 질병입니다. 그리고 세 마리가 만성장병증으로 방문했다고 했을 때 세 마리가 다 치료에 대한 반응이 같지 않을 수 있어서 자동차 수리하듯이 똑같은 공식으로 치료할 수는 없어요. 똑같은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물론 히스토리에 기반해서 처방하기는 하지만, 히스토리가 똑같아도 환자들의 반응이 다를 수 있으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이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에(웃음) ‘이 사료 먹이세요’ 한다고 해서 한 번에 그 사료가 맞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만성장병증 식이관리에서는 피부질환의 식이관리에 있어서와 같이 시행착오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보호자 분들께도 이 부분을 확실히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죠. 저를 찾아오면 단번에 다 나을 수 있다는 보호자 분들의 환상을 깨는 일이 제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POINT 4: 마이크로바이옴 관리와 면역학적인 개선은 장기적으로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장내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지 면역계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죠. 이 부분은 면역계의 작동 원리를 비유적으로 말씀드림으로써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보호자 분들께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의 교실 한 곳을 떠올려 보세요. 한 반에 모범생도 있는 반면에 문제학생들도 있죠. 저는 T 세포(T cell)나 B 세포(B cell)를 모범생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장내미생물 불균형(dysbiosis)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이나 항원(allergen)을 문제학생에 비유하고요. 여러 해 동안 이 모범생들이 문제학생들의 행패에 시달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서 문제학생들을 훈계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고 해서, 높아져 있던 모범생들의 경계심이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트라우마’인 거죠. 면역계도 마찬가지예요. 좋지 않은 마이크로바이옴으로 학습(기억, memory)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식이관리를 하거나 FMT를 한다고 해서 바로 면역계가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장내 환경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개발하는 겁니다. 저는 할렘을 베벌리힐스처럼 바꾸는 것처럼 작업을 하다 보면 면역계도 서서히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POINT 5: ‘만성’이라는 관점에서 질환 초기에 적극적인 식이관리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마이크로바이옴과 면역학적인 개선은 장기적으로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A는 B다’라는 식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이 바로 만성장병증으로 연결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몸에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승모판(mitral valve) 이상이 있어도 심장병 증상이 없을 수 있고, 신장에 해부학적 혹은 생리학적 이상이 있어도 현재 신장 기능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듯이, 당장 장내미생물 불균형이 있다고 해도 만성장병증의 증상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혈액검사나 복부초음파와 같은 진단 방법을 통해 소화기질환의 위험군으로 분류가 되는 경우 저는 그때부터 식단을 조절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을 드리는 편입니다. 이렇게 장내 환경을 초기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POINT 6: 중다양식 치료(Multimodal therapy)로서의 멀티기능 처방식(multi-function diet)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고단백식이를 할 경우 장내미생물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PLE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거나 알부민 수치가 정상인 환자들에게 가수분해 사료(hydrolysed protein diet)를 추천하고 있어요. 가수분해 사료를 먹이면 PLE까지 진행되지 않은 IBD 환자들은 변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PLE 환자 중에서는 단순 가수분해사료만 먹이면 변은 좋아지는데 알부민 수치가 개선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PLE 상황에서는 저지방 식이(low fat diet)를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가수분해 단백질에 더하여 저지방 포뮬러를 적용한 중다양식 치료 수단, 즉 다기능 처방식이 꼭 필요하게 되죠. 그래서 가수분해 단백질과 저지방 포뮬러가 동시에 적용된 멀티기능 처방식의 출시가 매우 반가웠습니다. 지금도 만성장병증 환자의 식이관리를 위해서 이런 멀티기능 처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반응도 좋아요.
참고로 초저지방 식이(ultra low fat diet)가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한 상업용 사료가 아직 없기 때문에 미국에 계신 수의영양학자 선생님과 협업하여 홈메이드 식이(home-made diet)를 추천하고 있어요. 나이가 많거나 제한식이시도(elimination diet trial)에 실패했을 때 위험할 수 있는 환자들에게 홈메이드 식이를 권장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나이 많은 환자들을 그 동안 보다 다양한 항원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덧붙여 이러한 경우에는 체중, 근육량 유지 등에 특별한 고려를 하고 있고요. 앞으로 소화기질환의 다양한 케이스에 대응할 수 있는 정교한 포뮬러의 멀티기능 처방식이 출시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방함량을 조절할 수 있는 사료, 새로운 단백질(novel protein)을 사용한 처방식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POINT 7: FMT는 치료반응이 안 좋은 환자들에 대한 대안적인 요법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식이관리나 기타 약물요법 등으로 잘 유지되고 있는 환자에게 면역적으로 큰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FMT는 치료반응이 안 좋은 환자, 재발이 잦은 환자 혹은 장내미생물 불균형 지수(dysbiosis index)가 좋지 않은 환자들에 대한 대안적인 요법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FMT를 하더라도 맞지 않는 식이를 하고 있으면 장내미생물 불균형이 개선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환자 하나하나에 맞는 식이를 찾는 것을 당연히 함께 고려하고 있습니다. 결국 만성장병증 치료에 있어서는 모든 치료 대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기보다 하나씩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즉,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거죠.
POINT 8: 만성장병증 관리를 위해 장기적 안목과 식이관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만성장병증의 예후는 ‘good to guarded’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의사분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예후가 아주 안 좋은 질환은 아니에요. 그리고 만성장병증 치료는 3~6개월 정도가 지나야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시 좋은 반응이 있다고 해도 말이죠.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다른 병원에서 표준치료(standard therapy)를 모두 거치고 온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저는 수의사 선생님들의 처치에 절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데 그동안 왜 효과가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보호자로부터 히스토리를 자세하게 들으면서 하나씩 찾아나가요. 환자들이 식이에 대한 반응, 약에 대한 반응이 모두 다르거든요. 교과서에 면역억제요법에 대해 나와 있지만, 그것에 대한 부작용이 더 큰 환자들도 있고요. 잘 지내다가 오히려 그런 약을 처방하자마자 갑자기 나빠지는 환자들도 많죠. 그래서 취할 건 취하고 뺄 건 빼는 식으로 진료하는 편이고요, 기존의 처치들을 조금씩 변경하면 환자들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처치는 최소화하고, 식이를 변경하고, 각종 보조제, 유산균, 영양제를 일단 완전히 배제하고요. 변수가 최소화되도록 환경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난 다음 범인을 찾아나가는 거죠.
마지막으로 강조해 드리고 싶은 것은, 만성장병증을 포함한 소화기질환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식이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보호자들의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방귀 냄새가 심하거나, 입을 쩝쩝거리는 행동을 보이거나 혹은 복명음이 있는 등의 증상을 보일 때부터 보호자들이 환자에게 치료가 필요한 소화기질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하지만 이러한 단계부터 가수분해 사료 등으로 식단을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식이관리를 시작한 후에도 보호자들이 식이관리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제한식이(elimination diet)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만성장병증에 대한 관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료를 처방할 때 수의사들이 보호자들에게 처방 사료의 의미를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죠. 만성장병증의 치료 혹은 관리를 위해서는, 수의사 선생님들부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식이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보호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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