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식품부가 동물복지에 역행하는 길을 가려 한다

유경근 방배한강동물병원장/대한수의사회 학술홍보위원장


0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170420 ygg1

장면1

어릴 적 친구처럼 지내던 누렁이란 이웃집 개가 있었다. 어느 날 누렁이가 어른들의 손에 끌려가는 광경을 무심코 보았다. 평소 같으면 먼저 앞장서서 뛰어갈 누렁이는 온 힘을 다해 대항하며 버텼다.

그날 저녁 우리 집 밥상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국이 나왔다. 나는 국에는 눈도 두지 않고 김치만으로 눈물로 말은 밥을 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친구 누렁이는 볼 수 없었다.

장면2

몸이 아프면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네 약국으로 갔다. 약사는 내 이마에 손을 집고 열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나의 상태를 들었다. 어머니의 입에서 먼저 일명 ‘마이신’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약사는 끄덕이며 약을 조제해 주었다. 우린 그렇게 항생제를 소화제만큼이나 편하게 접했다.

*   *   *   *

이 두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지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낯선 풍경일 것이다. 장면1은 만약 지금 그런 일을 벌어진다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장면2는 현재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약사법 위반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장면이 단지 법에 위반되어 어색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또한 항생제처럼 우리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약물 사용은 의사라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 두 장면이 어색한 것은 바로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법이 문화를 따라간 것이고 후자는 문화가 법을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 사회를 한층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

 

국민적 공감대에 힘입어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제한 법 개정 성사

작년 우리는 한 TV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모두 충격에 빠졌다. 한 농장주가 자신의 개 배를 갈라 직접 새끼를 빼는 수술을 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도 자랑스럽게 그 장면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했다. 동물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충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런 일을 저지른 그 농장주를 수의사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로 수의사법 제10조 무면허진료행위 금지에 대한 예외 조항을 담은 시행령 12조3항 때문이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라면 그것이 비록 진료행위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이다.

처음 이 조항은 축산농가 때문에 만들어졌다. 수의사가 많지 않던 시절, 진료를 제대로 받기 어려웠던 농가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동물에 한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자기 동물이란 이유만으로 함부로 동물을 다룰 수 있게 만든 대표적인 반동물복지 법조항이 되었다.

다행히 국민적 공감대에 힘입어 정부는 이 법조항을 개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식육견 농장 단체, 반려견 농장 단체(사실 개를 식육견과 반려견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와 그리고 약사회의 거센 반발에 좌초위기까지 갔었다. 그래도 동물보호단체와 수의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16년이 끝날 무렵 끝내 이 법은 개정되었다.

 

해당 법조항의 취지를 훼손하는 유권해석이 진행되고 있어

모든 것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이 법 개정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만들어지는 농식품부 행정 유권해석용 내부 지침이 알려졌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바로 자기 동물에게 할 수 있는 치료 범위에 누가 봐도 진료행위일 수밖에 없는 피하주사행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 피하주사정도는 큰 위해가 없다고 판단된다. 둘째, 피하주사는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허용한다. 셋째, 법리 자문의 결과가 그렇다. 넷째, 피하주사까지 막으면 보호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다.

피하주사 정도가 큰 위해가 없다는 말은 정말 수의학적 지식이 없어 할 수 있는 무식한 말이다. 우선 약제에 따라 큰 위해가 된다. 피하주사로 대부분 투여되는 예방접종의 부작용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항생제는 국민건강까지 위해할 수 있을 만큼 큰 문제이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170111self1

▲ 백신 자가접종의 부작용 사례 2014년. 별이(가명)가 백신 자가접종 부작용으로 보인 극심한 혈변. 쇼크에 대한 집중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망했다

 

투여경로의 문제도 크다. 피하주사로만 투여되어야 할 약물이 자칫 실수로 근육이나 혈관 또는 피내로 주입되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

사람의 경우도 의사의 처방과 지도가 있으면 피하주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비전문가의 이런 투여경로의 실수를 막고 침습을 최소화 하고자 일반인이 쓸 수 있는 주사는 인슐린주사기처럼 그 바늘이 매우 가늘고 짧게 특수 제작되어 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다른 경로로 투여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그 크기가 훨씬 작은 동물인 개나 고양이에게 사람에서 쓰는 일반 주사기로 비전문가가 주사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결국 어린아이에게 덤프트럭을 맡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투여용량도 문제가 된다. 약제가 아무리 안전해도 그 용량이 맞지 않으면 그것도 큰 위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물의 탈수를 교정하기 위해 정말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생리식염수를 피하에 투여할 때도 그 용량을 과하게 할 경우 폐부종을 유발시켜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나마 문제는 이런 선의로 사용되는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악의적 목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동물에게 아무 약물이나 주사기로 피하주사를 해도 이 지침에 따르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게 과연 이 법 개정취지에 맞는 지침인가?

해외에서 어느 정도 허용된다는 말도 사실 맞지 않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의 주에서 주사행위를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허용이 되는 경우도 대부분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수의사의 지도하에 허용할 뿐이다. 동물의 사회적 지위가 훨씬 높게 형성되어 있는 해외의 예를 우리 사회와 직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법리적 해석의 문제도 그렇다. 대부분의 법률자문에서도 수의사에게 처방 받은 경우에만 보호자가 주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피하 주사행위 전체를 허용할 수 있다는 근거로 확대해석 할 수 있는가. 의도적 오역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문제도 잘못된 분석이다. 사실 진료비 문제만 나오면 수의사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이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법이 허용하더라도 일반 보호자가 실제 피하주사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현재로서 종합 예방접종 정도다.

동물보호자가 동물약국에서 종합백신을 직접 구입해서 주사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은 대략 5,000~10,000원이다. 대신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게 되면 15,000~25,000원정도 비용이 든다. 예방접종은 통상 1년에 한번 정도 실시하기 때문에 만약 피하주사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실제 보호자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최고 년 20,000원인 셈이다.

고작 이 정도의 경제적 이득을 보전해주기 위해 정말 동물복지를 침해해 가면서 이법을 훼손시킬 필요가 있는 것일까?

 

피하주사 허용은 보호자가 아닌 생산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조항이다

사실 피하주사를 전면허용할 때 이익을 보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식육견 농장이나 반려견 농장 그리고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애견숍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 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 약사들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작년 법 개정 과정에서 그들이 그토록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동물을 오직 경제적 이득을 취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필요하다면 항생제든 백신이든 무분별하게 주사기를 찌르고 있다.

그러면서 생기는 동물학대를 막고자 법을 개정했지만, 구멍을 뚫어도 너무 크게 뚫으려 한다. 대어들은 그대로 다 빠져 나갈 판이다. 법 개정의 의미를 완전히 무색케 만드는 일이다.

SAMSUNG CSC

▲ 동물보호법 개정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 육견협회 2016년 8월 31일 육견협회 관계자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동물보호법 토론회’에 반대하며 ‘개식용합법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지침은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왜냐하면 진료행위라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하여 그 범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행위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큰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의료법도 어지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행정 지침이 따로 존재 하지 않는다. 꼭 법적 판단이 필요할 경우는 모든 정황을 살펴 사법부가 판단하게 두었다.

그럼에도 처음 실시되는 법이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지침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으로만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 법을 악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선의의 목적이라도 그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말 선의의 목적인 경우는 법에선 이미 ‘위법상 조각사유’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의 아이에게 의사의 처방과 지도하에 인슐린 주사를 부모가 주사를 놓는 행위는 비록 그 행위가 진료행위라도 선의의 목적으로 행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굳이 선의의 목적을 고려하여 허용하는 범위를 정해 둘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   *   *   *

어린 시절 뒷산으로 끌려가던 내 친구 누렁이를 나는 막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그때 그렇게 그 시절을 살았다. 하지만 우린 이미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의 사회에 이르렀다.

동물 복지란 동물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삼아 배려해 주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번 반려동물 자가진료 제한의 마지막 조치가 그 동물복지에 어긋남이 없이 올바르게 행해지길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본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편집자주

[기고] 농식품부가 동물복지에 역행하는 길을 가려 한다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