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 경주마 복지는 한 목소리, 경주마 생산·도축에는 입장차

연간 퇴역마 1,400마리 번식·승용 제2의 삶은 40% 그쳐..도축 금지한 선진국도 원정 도축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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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대회에 출전하다 은퇴한 퇴역 경주마(퇴역마)의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마사회는 퇴역마의 용도, 소재지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퇴역마 복지 증진에 쓰일 기금 확대에 나섰다.

복지 증진이라는 대전제에는 공감대를 보이면서도, 경주마 과잉생산이나 퇴역 후 도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물보호단체와 업계·정부의 시각차가 엿보인다.

동물복지국회포럼과 위성곤·윤미향 의원, 동물자유연대·생명체학대방지포럼·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은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퇴역 경주마 복지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담당부처인 농식품부와 한국마사회, 서울마주협회, 대한재활승마협회도 참여했다.

연간 퇴역마 1,400마리..번식·승용 제2의 삶은 40%만

3월까지 퇴역마 전수조사..이력제 의무화 검토

이력제 들어와 있는 말도 학대 위험 노출 지적도

지난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안락사된 말 ‘까미’가 퇴역마인 것으로 알려지며, 퇴역마의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은퇴 이후에 어떤 용도로 어디서 사육되는지 제대로 추적되지 않고, 동물복지 문제를 관리하는 주체도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내에서 연간 은퇴하는 경주마는 1,400마리 안팎. 은퇴한 말들의 빈자리는 어린 말들이 채운다. 이중 900여마리는 국내 생산된 말이다. 나머지 400여마리는 해외에서 수입된다.

은퇴한 경주마의 약 40%가 번식이나 승용 목적으로 사육된다. 매년 700여마리의 퇴역마가 안락사되거나 도축된다. 퇴역 이후 다른 용도로 사육되다 폐사한 경우까지 합친 수치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란영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 대표는 “경주마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력을 추적하고, 전 생애주기를 책임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산업 주무부서인 농식품부 축산정책과 이정삼 과장도 퇴역마 실태조사에 우선순위를 뒀다. 지난해말부터 실시하고 있는 전수조사 결과가 오는 3월 나오면, 퇴역마를 포함한 말 이력제 의무화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다. 퇴역마의 개체별 현황을 데이터로 확보해야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삼 과장은 “이번이 첫 조사인만큼 복지수준에 대한 조사는 포함되지 못했다”면서도 “복지실태에 대한 조사항목 추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력제 도입·실행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것인만큼 동물보호단체를 포함해 마사회·마주와 함께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며 “올해 상반기 중으로 말 이력제 의무화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동물자유연대가 부여에서 구조한 퇴역마.
1마리는 부여가 아닌 전남에 있는 것으로, 나머지 1마리는 아예 폐사한 것으로 신고되어 있었다.
(사진 :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이력제 안에 들어와 있는 말들의 복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동물자유연대가 충남 부여의 폐축사에 버려진 말 2마리를 구조했는데, 이들 모두 현행 말 이력제에는 엉뚱한 곳에 있다거나 아예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조희경 대표는 “(말 관련) 시민제보는 계속 들어 온다”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 말의 동물학대 문제는 없지 않다”고 지목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말 등록 및 이력제 관리를 ‘말 수의사’들이 담당하는 시스템이 거론되기도 했다. 매년 실시되는 말 관납백신 접종사업과 연계하면 실제 현장을 예찰하는데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마사회 사업에 퇴역마 복지 추가, 말 복지센터 출범

마주·마사회 매칭 펀드..경마상금 1% 넘어

이정삼 과장은 이날 퇴역마 복지를 위한 제도·인력·재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데 의의를 뒀다. 말 복지를 위한 정책은 이제 기틀을 잡기 시작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지난해 안병길 의원이 대표발의한 마사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퇴역 경주마의 관리 및 복지를 위한 사업’이 마사회 사업 범위로 추가됐다.

그러면서 올해 마사회 말복지센터가 출범했다. 마사회 내 말 복지 전문가 양성도 4명까지 확대한다. 이날 말복지센터는 퇴역마 관련 국내외 정보를 별도로 제공하기도 했다.

김진갑 말복지센터장은 “서로 소통을 통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고쳐야 한다. 올해부터는 동물보호단체와 말산업관계자의 소통 기회를 늘리고, 현실성 있는 실천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마주·마사회뿐만 아니라 경마산업 전후방에 위치한 말 생산자, 승마장 사업자 등도 관련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용학 서울마주협회장은 “마주들도 퇴역마 복지에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금 출연에 나섰다”고 밝혔다.

2027년까지 5년간 마주와 마사회가 연간 10억씩을 매칭펀드로 조성한다. 여기에 검토 중인 축산발전기금 지원까지 합하면, 경마상금의 1% 이상이 이미 말 복지에 쓰이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홍콩·일본·영국·프랑스 등 경마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관련 세율이 높다는 점도 지목했다. 마주들도 복지기금 마련에 나서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부 차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언하는 김진갑 한국마사회 말복지센터장(왼쪽 첫 번째)

뽑기식 과잉생산 vs 수요·공급 자연스러운 조절

경마 선진국은 말 도축 금지했다? 실상은 주변국으로 원정 도축

이날 토론회 참여자들 모두 말의 복지 증진이라는 대명제에 공감대를 보였다. 다만 경주마의 과잉생산이나 말고기 도축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시각차를 보이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경주마의 조기 출주, 조기 퇴역이 과잉 생산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말은 20년까지도 살지만 3~4살까지만 현역으로 활동한 후 은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번식·승용마 수요는 한정적인데 퇴역마는 계속 나온다. 조희경 대표는 이를 두고 ‘뽑기식 과잉번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면 조용학 서울마주협회장은 “마주들이야 오래 출전시키고 싶지만 5살이 넘으면 경주력이 확 떨어진다. 기력이 떨어진 말을 계속 경주에 쓰는 것도 학대”라며 “이러한 경향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경주마 생산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론됐지만, 섣부른 생산 규제는 말 사육농가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수 번식마의 프리미엄이 지나치게 상승해 경주마 생산성을 저해하거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

조 회장은 “말 생산농가로부터 마주들이 말을 구입하는 일은 수요·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절되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조용학 서울마주협회장

말 도축 문제에 대한 입장도 거리가 있다. 김란영 대표는 퇴역마 복지 개선과제 중 하나로 식용 및 사료화 금지를 위한 법 개정을 제시했다. 영국, 미국, 홍콩 등 경마 선진국에서 경주마의 도축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반면 정부나 말 산업계에서는 당장의 금지는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정삼 과장은 “제주도에서 매년 900여마리의 말이 도축되고 인근 식당에 공급되고 있다는 현상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도축금지 사례도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축 금지 국가에서도 인근 국가로의 원정 도축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말 복지센터 측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아일랜드로, 미국은 멕시코·캐나다로, 홍콩은 중국으로 말을 보낸다.

미국수의사회(AVMA)도 원치 않는 말(unwanted horse)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도축이라는 선택지가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도축할 수도 없고 더 기를 수도 없는 말을 유기·방치하는 행위가 늘면서, 오히려 동물복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원정 도축이 오히려 비인도적인 운송·도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도 지목했다.

강원명 제주도청 친환경축산정책과장은 “일본에서도 퇴역마가 일정 기간의 비육을 거쳐 도축되고 있다”며 “(말 도축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퇴역 경주마 복지는 한 목소리, 경주마 생산·도축에는 입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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