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도 실현 가능성도 불분명한 동물진료 표준화, 어디로 가나

프로토콜 개발∙적용에 임상가 공감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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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수의사법에는 동물진료 표준화 근거가 마련됐다. 2024년 시행을 앞두고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표준 프로토콜의 수준이나 사용 여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병원 사정에 따라 프로토콜 내용을 바라보는 시각에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프로토콜을 만든다고 동물병원이 따르게 유도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동물진료 표준화 방향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 없이는 동물병원의 족쇄가 될 수도,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사진)은 2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열린 2022년도 제1차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구 수의정책포럼)에서 동물진료 표준화 추진방향을 소개했다.

법은 ‘표준화된 분류체계’ 만들라지만..

정확한 정의도 없다

올해 초 개정된 수의사법은 동물진료 표준화 근거를 처음으로 신설했다. 농식품부장관이 동물진료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 동물의 질병명, 진료항목 등 동물진료에 관한 표준화된 분류체계를 작성해 고시하도록 하면서다(제20조의3).

문제는 법에서 언급하는 ‘표준화된 분류체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우연철 사무총장은 “동물진료에서 표준화된 분류체계가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수의사법 조문은 ‘동물진료의 체계적인 발전’을 목적으로 명시했지만, 동물진료 표준화 논의는 순전히 진료비 문제에서 출발했다. 표준화가 선행되지 않은 채로 가격 비교가 법적으로 강제되면, 오히려 소비자의 오해를 사거나 하향평준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령 슬개골탈구교정술의 표준화된 절차 없이 단순히 가격만 비교한다면, 실제로 진료의 내용이 달라서 생긴 비용 편차를 ‘착한 병원, 나쁜 병원’의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의뢰로 동물진료 표준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대한수의사회도 코드∙용어 표준화와 함께 특정 진료항목의 표준화된 절차를 개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의임상 프로토콜, 표준 진료 프로토콜, 진료 프로토콜 표준화 등 여러 표현이 혼재되어 있긴 하지만, 특정 질환이나 증상에 대한 수의사의 진단∙치료∙예후판정을 정리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다.

첫 프로토콜 표준화 연구를 담당한 건국대 윤헌영 교수팀은 수의사 설문조사를 통해 다빈도 진료항목 100여개를 추출하고, 이중 10개 우선 항목을 선정해 진료 프로토콜을 수립했다. 이들 프로토콜 10종은 개발을 마치고 검토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연철 사무총장은 “의료계가 임상진료지침(CPG, Clinical Practice Guideline) 개발을 추진한 것은 의사별∙의료기관별 의료의 편차를 줄이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수의사법처럼 가격비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의료수준의 발전을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얘기다.

대한의학회도 임상진료지침을 근거기반의학을 구현하는 도구로 정의했다. 주치의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진단∙치료 옵션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환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해 순응도를 높이는 수단으로서다.

일선 동물병원이 프로토콜 따를까’ 라포 형성 과제

표준 프로토콜 따르면 가격 전반 상승 우려도

이날 우연철 사무총장은 프로토콜 표준화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수의사 공감대를 지목했다. 프로토콜을 만들어도 동물병원 수의사가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우 총장은 “의료계의 CPG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 간의 라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동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합의하는 과정에 대부분의 개발비를 투입한다”면서 동물진료 프로토콜도 수의사에 강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건강보험처럼 돈으로 요양기관(병의원)을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표준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동물병원 과태료∙벌금∙과징금 등 페널티를 부여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쉽지는 않다. 윤헌영 교수팀은 1차 연구에서 진료과목별 교수협의회나 연구회∙학회 등의 자문을 받았지만, 항목 수가 늘어날수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생업이 있는 원장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어렵다.

동물병원 규모별로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지난 6월 건국대에서 열린 동물진료 표준화 공청회에서도 소형 동물병원의 부담 문제가 거론됐다.

표준 프로토콜은 학술적 근거에 기반해 다양한 진단∙치료 절차를 제시하는데, 이를 전부 준수하기 어려운 일선 동물병원에서는 반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권고사항일뿐 의무가 아니다’라지만 혹시 모를 보호자와의 분쟁 가능성을 고려하면 마냥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처럼 표준 프로토콜에 맞춰 진료항목이나 절차가 늘어나게 되면 오히려 진료비 부담을 커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도 숨어 있다.

우 총장은 “’표준’이라는 용어를 두고 따르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일선의 불만이 있다. 표준이라는 용어를 검토하는 것이 임상가들의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같은 우려와 별개로 표준 프로토콜 수립 연구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당초 4억원으로 예정했던 동물진료 표준화 예산을 12억원으로 증액한 2023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

진료 표준화 방향성 잡으려면..동물의료체계 구축 나서야

진료 표준화 논의가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는 동물의료체계에 대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왔다.

동물의료체계를 정비하려면 그에 맞는 법과 정부조직, 연구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목됐다.

우연철 사무총장은 “동물의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도 없고, 정부 조직도 굉장히 미약하다”며 “수의사회와 함께 발전방향을 고민할 당사자가 없다”고 토로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도 이날 포럼에서 “농식품부가 동물의료를 관리할 수 있는 부서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수의사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동물의료체계에 대한 정책틀도 없이 가격비교를 위한 수단으로 진료 표준화에 나선 농식품부가 이 같은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허주형 회장은 수의사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허 회장은 “축산 위주였던 시기에 제정된 현행 수의사법은 반려동물 비중이 커진 동물의료를 담아내기 적절치 않다”면서 “수의사법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동물의료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문도 실현 가능성도 불분명한 동물진료 표준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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