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혜원 수의사 2부 `독일 수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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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의 한 동물보호소 내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계신 이혜원 수의사 님을 데일리벳에서 만났습니다. 독일의 수의환경과 동물보호∙복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는 「1부 동물보호와 수의사」(바로가기), 「2부 독일 수의사 이야기」로 게재됩니다.

 

1부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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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수의과대학 옛 정문 앞에서

Q. 독일에는 수의과대학이 몇 개나 있나? 수의과대학 생활은 어떠한가?

독일 수의대도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대입시험을 치르고 입학하는 시스템이다.

독일 전역에 수의과대학은 5곳으로 내가 진학했던 뮌헨대학을 비롯해 베를린, 하노버, 기센, 라이프찌히에 있다. 정원은 대학마다 다르다. 뮌헨이 입학생 300명으로 가장 많고, 타대학은 100~200 명 정도라고 들었다. 독일 인구가 8,500만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대비 매년 수의사 배출인원수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독일 수의대 학부과정은 총 11학기다. 독일 수의사 면허증 관련 법에는 수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수의학과목, 이수시간과 국시과목들이 명시되어 있어 11학기 동안 이를 채웠음을 증명해야 수의사가 될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예과 때였다. 독일은 예과 때 해부학, 생리학, 조직학, 생화학, 식물학, 동물학 등을 배운다. 우리나라로 치면 본과1학년에 시작하는 과목을 입학하자마자 가르치는 셈인데, 이 때 학생들이 많이 떨어져 나간다.

과목마다 거의 매주 시험을 보고, 재시험이 두 번까지 가능한데 이를 통과 못하면 아예 제명당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들로 FM대로 적용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학생 측에서 쌓이는 스트레스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본과에 진학할 때 학생수가 250 명 정도로 축소됐다. 6분의 1 정도가 감소된 것이다.

10월에 1학기가 시작되고 첫 번째 해부학 실습시간, 테이블 위에 산만한 말의 다리 부위 카테바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수의학의 발달이 마의(馬醫)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 없었던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개, 고양이 위주로 교육하겠지’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11학기 중 초반 7학기 동안 모든 과목에 대한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4학기 동안은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로테이션 실습이 이뤄진다. 단순히 동물병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부 산하 수의부서, 도축장, 식품위생 관련 기관 등도 필수 실습 장소로 규정되어 있다. 동물보호, 동물윤리 과목도 포함한다. 실습 역시 법으로 정해진 이수과정을 채우고 이를 증명해야 한다.

나는 한국의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서 필수 실습시간을 채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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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일 수의과대학 졸업생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진로를 선택하나

유럽이라고 임상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정부, 제약회사, 연구소 등 다양한 경로로 적잖은 수의사들이 진출한다.

공무원 수의사들도 많은데 독일 내 지자체에만 수의부가 500군데 넘게 있고, 한 수의부에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2~3명 이상의 수의사가 근무한다.

뮌헨 같은 대도시는 축산물 및 식품위생을 담당하는 수의부와 동물보호∙복지를 담당하는 수의부가 나뉘져 있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수의사도 많다. 영양학적 부분도 공무원 수의사의 담당 업무인데, 수의부 로테이션 중에 나는 성분 분석을 위해 소∙돼지의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를 현장에서 채취한 적도 있다.

제약회사에 취직하는 수의사도 많다. 큰 다국적 제약업체도 많지만 작은 회사로도 많이 간다. 이 밖에도 독일은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있어서 꼭 대학이 아니라도 다양한 국가 지원 사설 연구소에 재직하는 수의사도 꽤 있다.

전체 분포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졸업할 당시 임상수의사로 진로를 잡은 사람은 절반 정도였다고 보면 될 것 같다.

Q. 국내 정부나 지자체의 수의관련 부서는 독립성, 영향력, 대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독일 수의직 공무원들의 현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신다면?

주마다 다르지만 1년차가 세후로 월 1,700~1,800유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 연차에 따라 봉급이 올라간다.

독일은 공무원 수의사도 안과나 피부과 등 임상세부과목처럼 전문성을 인정 받는다.

독일은 공무원 수의사가 되면 일정 기간의 근무 후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며 정부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수의사 자격(Amtstierarzt)을 취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라 이름 붙이기가 애매하지만 말하자면 '정부정책 전문의'라고도 할 수 있다. 방역이나 수의 정책 같은 정부 업무에 관한 수의사 스페셜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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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일은 법적으로 동물진료수가가 표준화되어 있다고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진료수가가 천차만별이라는 이유로 수의사들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일도 실제 가격은 동물병원마다 편차가 있나?

동물진료수가 관련 법은 1999년에 제정됐고 최근에는 2008년에 수가가 최종 조정됐다.

법에 명시된 수가에서 3배까지 받을 수 있으며 그 안의 범위에서는 각 수의사 자유이기 때문에 병원간 진료비 편차는 당연히 존재한다. 말하자면 법정 수가는 '진료비의 하한선'인 것이다. 법정 수가를 매번 조정할 수 없으니 물가상승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범위를 준 측면이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시골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라 법정 수가로만 받는다. 반면 뮌헨 같은 대도시나 2차진료병원은 법정 수가의 1.5~2배 정도까지 청구하기도 한다.

수가에 대한 수의사들의 불만은 전혀 없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개인적으로 더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 상한선인 3배 가격도 부족하다고 느낄만큼 수가가 낮게 책정되어있지도 않다.

오히려 덤핑식으로 법정 수가보다 낮게 받는 수의사가 있을 정도다. 법정 수가보다 낮게 받는 것도 불법이다. 그런 수의사는 욕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보호자들도 그런 병원에는 별로 가지 않는다. 진료의 질이 낮다든지,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독일에서는 병원마다의 진료비 편차가 크지 않다. 물론 경제수준 자체가 다른 지역별로는 평균치에서 차이가 있지만, 같은 지역 내라면 큰 편차는 없다고 보면 된다.

독일과 한국 모두 사람 의료보험이 잘 정비되어 있는만큼 한국에도 동물진료에 대한 수가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 낫지 않겠나.

Q. 자가진료허용은 한국 수의사들이 꼽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독일에서는 자가진료가 허용되어 있나?

그렇지 않다. 동물의 소유자가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 법을 기자님께 처음 들었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의약품에 있어서 정말 까다롭다. 약을 잘못 처방한다거나 남용하는 것을 정말 큰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신 같은 의약품을 동물을 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호자 손에 쥐어주면 난리난다. 즉 백신은 수의사가 직접 사용해야 한다.

애초에 어떤 의약품이든 수의사가 동물을 직접 진료하지 않고 약을 주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특히 항생제, 산업동물 관련해서는 법을 강력히 적용한다. 진료 없이 산업동물에게 항생제를 투여, 판매하거나 잔류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면허증을 박탈 당할 수도 있다.

동물에게 투여되는 의약품 모두 수의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공급될 수 없기 때문에 불법진료 문제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동물용 마취제나 항생제를 일반인이 약국에서 그냥 살 수 있다니 충격적이다.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 축주가 자일라진을 사서 동물을 진정시키고 반려견 판매업소가 직접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니, 그러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지 이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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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의사들에게 지급되는 수의사카드. 이 카드를 제시하는 수의사만 동물 진료를 위한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Q. 이 밖에도 독일의 선진적인 수의환경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부족하여 개선이 필요한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 수의사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비교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하나 꼽자면 ‘전문의 제도’다.

독일은 대학원 과정과는 별개인 수의사 전문의 제도가 있다. 수의대졸업 후 특정 분야에 3~4년 과정을 거쳐 전문의 시험에 합격할 경우 스페셜티를 취득한다. 정말 다양한 전문의 과목으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동물보호 전문의, 행동치료 전문의도 있을 정도다. 나도 행동치료 전문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독일은 1인 수의사 동물병원 중에도 전문의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심장전문의 동물병원, 안과전문의 동물병원, 치과전문의 동물병원 같은 1인 수의사동물병원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가 상부상조한다. 자신의 동물병원에 방문한 환견이나 환묘를 해당 전문의에게 소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다른 전문의 1인 병원이나 2차 진료병원에 리퍼를 보내면, 크리티컬한 치료 후에 원래의 병원으로 돌려보낸다. 2차병원이 차후 관리방법에 대한 권고해주면 1차 로컬병원에서 관리를 이어받는 것이다. 1, 2차병원이 서로 치료에 대해 통화도 많이 하고 동업자 의식을 바탕으로 한 협력이 잘 이뤄진다.

임상 각 과목에 대한 수의사끼리의 협력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전문의제도가 꼭 필요하다. 전문의제도를 발판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유럽으로 진출하거나 유학을 꿈꾸는 국내 수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비EU 외국에서 수의사가 된 사람도 독일에서 수의사로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출생신고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내용의 증명서, 재판과정 중이 아니라는 증명서, 해당 국가의 수의사 관련 법 위반한 적이 없다는 내용 등 여러가지 요구문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의대생의 경우 편입은 불가능하다. 학부 1학년으로 입학을 하든지, 아니면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와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언어적인 부분이다. 의사소통은 물론 뉘앙스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의학용어는 라틴어가 많고, 영어에서 쓰이는 많은 단어들을 독어식으로 발음하면 되긴 한다. 의사소통이 될만큼의 독어를 할 수만 있다면 독일에서 수의사로 충분히 일할 수 있다. 물론 초반에는 문화차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친한 수의사인 Dr. Navarra는 독일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표현을 사용해 보호자를 당혹케 한 적이 있다.

나는 입학 당시 뮌헨대에서 비유럽연합 사람으로 유일한 수의대생이었다. 대부분 유학생은 유럽사람들이다. 그런 생경한 환경에 위축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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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소 동물병원에서 진료 중인 이혜원 수의사

Q. 끝으로 수의사님의 앞으로의 꿈과 비전에 대해 말해달라.

학부생일때는 동물보호, 행동치료를 배워 한국에서 빨리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거치고 한국의 동물보호 현황을 알게 되면서 좌절이나 실망도 겪었다.

나는 한국에서 동물에 관한 가슴 아픈 뉴스나 현장이 보이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내 연구나 수의학적 지식 그리고 현장에서의 경험은 한국 동물 복지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실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작은 변화가 모여 언젠가는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동물 복지 개선을 위해 일하다보면 분명 성과가 보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실망하는 일이 많겠지만 내가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일이 없길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도 수의사가 일할 수 있는 동물보호, 동물복지 연구소가 있으면 좋겠다. 수의학적 관점에서 한국의 동물보호실태에 접근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면, 보호단체든 법제정과정에든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혜원 수의사 2부 `독일 수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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