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혜원 수의사 1부 `독일 수의사가 말하는 동물보호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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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물보호시민단체(KARA)에서 주최한 동물보호명예감시원 교육에 한국인 독일 수의사가 강의를 위해 방한했습니다.

독일 뮌헨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로서 독일의 한 동물보호소 내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계신 이혜원 수의사님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데일리벳에서 이혜원 수의사님을 만나 독일의 수의환경과 동물보호∙복지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는 「1부 동물보호와 수의사」, 「2부 독일 수의사 이야기」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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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동물보호명예감시원 교육에서 강의 중인 이혜원 수의사

Q.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 국내가 아닌 독일 수의과대학에 진학해 독일에서 수의사가 되신 이유에 대해 말해달라.

어릴 때 동물 좋아하면 한 번 쯤 수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꾸지 않나. 나 역시 그랬지만 줄곧 수의사만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자라면서 여러 장래희망을 전전하다가, 진학은 결국 철학과로 했다.

졸업 즈음 장래를 고민하던 시절,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수의사되고 싶어하지 않았었냐?”는 얘기를 듣고 어렸을 때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

유학 생각을 하던 중이었기에 전공을 수의학으로 결정하고 어릴 적 생활했던 독일로 향했다. 독일은 외국인 유학생 쿼터제가 있어서 입학이 수월하다. 단, 입학이 수월한 대신 졸업이 어려운 것이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독일로 유학을 왔다가 중도포기하는 경우도 여럿 있다.

또한 유학비용이 영미권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당시만 해도 독일 수의대에는 등록금이 없었다. 현재는 일부 수의대가 받지만 그나마도 한 학기에 500유로 (한화 75만원) 수준이다.

게다가 독일은 학생비자로 일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작 수의대를 다니면서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헛된 꿈이었지만 말이다.

Q. 동물보호, 행동치료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첫 학기에 동물보호, 동물윤리학, 동물행동학을 가르쳐 주는데 너무 재밌더라. 신세계였다. 수의학에서 이런 것을 가르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동물복지, 동물행동학, 행동치료 등이 발전 할 여지가 많은 상태였기 때문에 독일의 시스템을 도입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행동치료 전문수의사, 교수님들을 찾아다녔다. 학교 안에 있는 동물보호 연구소(교실)에도 접촉했다. 처음엔 수의대에 진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연구소 사람들도 반신반의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도 계속 참여하니까, 마지막에는 박사프로젝트까지 맡겨 주셨다. 국가고시를 보기도 전이었다. 독일은 11학기를 마치고 수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석사학위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면 바로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

문제는 너무 힘들었다는 점이다. 박사프로젝트는 ‘사육환경에 따른 닭의 생리학적∙행동학적 변화’에 대한 것이었는데 매일 닭을 챙겨주면서 데이터베이스도 쌓고 국가고시도 준비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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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수의사가 있는 유럽동물자연보호협회 동물보호소 입구

Q. 동물보호∙윤리, 행동치료 등을 연구하는 일과 동물보호소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박사학위 취득 후 동물보호소 동물병원에 가게 됐나?

괴리가 있지 않다. 동물보호소에 입소하는 동물들 중에 행동장애를 보이는 개체가 적지 않다. 이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는 일과 내 연구분야가 연관되어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행동치료를 내과에서 하지만, 독일은 동물보호 연구소에서 행동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내과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동물보호 연구소 박사과정 당시 틈틈히 행동치료를 참관했다.

하지만 독일 내 동물보호소 동물병원에 가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좀 더 복잡했다.

작년 4월, 박사논문을 제출하고 귀국해서 동물복지나 행동치료와 관련된 일자리가 없을까 알아봤지만 전혀 없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국가고시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임상을 할 수도 없었다. 연구와 관련된 의약품을 쓰는 데에도 제약이 있는 상황이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내내 ‘공부만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돌아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미리 알아보지 않았던 터라 독일 내에 관련 연구소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독일 노동청 구인사이트에서 한 동물보호소가 수의사를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구를 해봤으니 동물보호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겪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동물보호를 위해 일하려면 독일의 현장 시스템을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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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수의사가 있는 동물보호소의 유기견 보호장

Q. 지금 몸담고 있는 유럽동물자연보호협회는 어떤 곳인가?

2001년에 설립된 유럽동물자연보호협회(Europäischer Tier- und Naturschutz e.V. www.etnev.de)은 독일 쾰른에 본사를 두고 있고, 다른 나라 동물보호 단체와 연계해서 일을 하기도 하는 큰 단체다. 유럽 내 대규모 동물보호단체 중 하나다. 회원수도 10 만명이 넘는다. 독일 내 동물보호 관련 활동은 물론, 타국으로 수의사를 파견해 중성화수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동물보호 관련 노하우를 전수하고 정책수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내가 있는 동물보호소는 독일의 정중앙에 위치해있는데 부지만 4 헥타르 크기다. 쾰른 본사는 심지어 더 넓어서 10 헥타르에 이른다. 내가 있는 곳은 개, 고양이 등 소동물 위주의 보호를 하며 본사는 말, 양, 소 같은 대동물 위주의 보호활동을 펼친다.

부지는 넓지만 시설은 개, 고양이 각각 100마리 정도씩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한 달에 입양 보내는 마릿수는 30~40마리 정도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어디서든 건강한 동물을 안락사하는 것이 불법이다. 오직 치료가 안 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1년 동안 안락사는 단 4마리만 했다.

Q. 동물보호소 동물병원에서 어떤 진료를 주로 하게 되나

동물보호소에서 혼자 수의사이다보니 진료의 모든 부분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 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초반에는 특히 더 힘들었다.

여기 오기 전에 임상경험은 없었지만 박사과정 중에도 틈틈히 다른 동물병원에 가서 무급으로 수련을 받았다. 이를 Hospitation이라고 하는데 독일에는 이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처음에 오면 입소 건강체크를 철저히 한다. 혈액검사로 전염병(심장사상충, 리슈마니아, 바베시아 등) 검사하고, 구충하고, 예방접종, 마이크로칩을 삽입한다. 중성화수술도 무조건 한다.

고양이는 입소 시 FIV, FeLV를 테스트해서 양성축은 격리한다. 허피스나 칼리시 바이러스가 간혹 유행할 때가 있는데 그 시기에는 정신 없이 바빠진다. 독일은 홍역이나 파보 바이러스의 발병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길에서 생활하다가 입소한 동물들에게는 만성피부병이나 치과 관련 질병이 자주 발견된다. 소화기와 안과질환도 자주 진료하는 편이다. 교통사고나 인간에 의한 상해로 정형외과 수술이 불가피한 동물들은 2차 진료 병원으로 이송시킨다.

학대를 심하게 받은 적이 있는 동물들은 행동장애가 심각하다. 그럴 경우에 약물치료와 행동교정훈련을 병행한다. 행동치료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데, 전문의가 되려면 행동교정훈련도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

남유럽, 동유럽에서 구조해오는 동물들도 많아서 독일에서 보기 힘든 케이스들도 있다. 독일에서 구할 수 없는 약을 처방해야 해서 담당 수의부 허가를 받고 프랑스나 네덜란드에서 약을 수입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동물보호소가 있는 마을에 수의사가 나 한 명 뿐이라 동물보호소 내 동물을 진료하고 남는 시간에는 외래 환자도 받는다.

입양이 결정돼 퇴소할 때도 종합건강체크를 한다. 이 때 발견된 질병은 보호자가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여기로 내원하면 치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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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소에 입소할 동물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이혜원 수의사

Q. 독일의 티어하임은 선진국 수준 유기동물보호소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다. 어떻게 그러한 규모와 운영이 가능한가

독일 전역에는 약 520 개의 동물보호소가 존재한다. 이 중 일부는 시에서, 일부는 동물보호단체에서 운영한다. 운영자금은 국가재원과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피 같은 세금으로 시 소속 동물보호소가 운영된다면 일부 사람들은 거부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 소속 동물보호소 유지비는 ‘개의 세금 (Hundesteuer)’에서 나온다. 독일에는 일반 시민이 개를 입양할 경우 시청에 개를 등록하고 매해 개의 세금을 별로도 내야 한다. 이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동물보호소에 자신의 세금이 사용된다는 것을 오히려 환영한다.

또한 일반인이 동물보호소에서 동물을 입양받을 경우 ‘보호과금(Schutzgebühr)’을 지불해야 한다. 동물보호소 마다 차이가 있지만 100~500 유로 (한화 15만원~75만원)까지 부가되기도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동물보호소는 기본적으로 동물보호단체의 후원금과 보호과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사립동물보호소라도 길에서 발견된 동물이 입소할 때에는 발견 지역 구청에서 지원비를 받는다.

자원봉사자 활동도 활발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육사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중고등학생들도 실습하러 많이 오고, 사법부에 의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사람들도 주기적으로 온다.

동물보호소는 무조건 정부에 등록이 되어야 한다. 돈 있고 땅 있다고 맘대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수의부에 등록이 되어야 하고 수의부 수의사들이 나와서 감찰∙관리를 한다.

시설 관련 기준도 마련되어 있다. 한 동물 당 사육면적 등 세세한 기준이 다 법제화되어 있다.

Q. 국내에는 동물병원을 설치하거나 수의사를 상시고용하는 동물보호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부 주요 동물보호단체에서 추진 중이지만 수의사 처우 등의 이유로 호응도 부족하다. 독일에는 동물보호와 관련된 일을 전업으로 하는 수의사들이 많이 있나? 그들의 대우는 일반 동물병원 수의사에 비하면 어떠한가?

대형 동물보호소는 대부분 진료환경은 잘 갖춰져 있다. 수의사가 풀타임 고용인 곳도 있고 촉탁식의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는 곳도 있다.

독일의 동물보호소 수의사는 일반 동물병원 월급수의사에 비해 적지 않은 월급을 받는다. 다른 수의사들 얘기를 들어봐도 ‘내가 많이 받는 편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여러 수의사가 공동운영하는 동물병원이나 2차 진료병원의 경우에는 월급이 적더라도 선배 수의사에게 배울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반면 동물보호소 진료수의사의 경우는 그러기가 힘든 단점이 있다. 그래서 다른 수의사들보다 학회나 세미나를 많이 참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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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소 내 고양이 방. 바깥으로의 출입이 자유로우며 전염병 양성 개체들은 다른 장소에 격리된다.

Q. 수의사로서 동물보호단체에 몸 담고 있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동물보호협회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 연구소에서 친하게 지냈던 선배 수의사들은 걱정과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동물보호연구소와 동물보호협회는 가까운 듯 하면서도 매우 대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를 위한다는 점은 같지만 그에 접근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동물보호연구소는 수의사,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현재의 동물 복지 현황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분석하여 단계적인 변화를 꾀한다. 즉, 감정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동물보호협회는 동물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다. 감정이 배제되면 안되는 곳이다. 이는 대중들에게 손쉽게 동물복지에 대해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동물보호연구소와 동물보호협회 양쪽에 모두 몸을 담궈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 두 곳 모두 동물복지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들이다. 동물보호협회는 동물 복지에 반하는 곳을 발로 뛰어 직접 찾아간다.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언론의 도움을 받을 줄 알며 필요한 법을 개정하는 일을 도모한다. 일반인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농장동물의 사육환경에 대한 고발도 그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생후 1일에서 10일 사이에 마취도 없이 고환제거수술을 당하는 수컷돼지, 좁은 닭장 안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스트레스로 다른 닭을 쪼아 죽이는 산란계, 생태적으로 수영을 하며 지내야 하지만 수영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철창 안에서 갇혀 사는 밍크(족제비과)와 같은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게 한다.

동시에 동물 복지와 거리가 먼 그러한 사육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데이터가 큰 힘이 된다. 연구에 의한 결과물은 대중들은 물론이거니와 농장주와 정치가들을 설득할 때에 그 무엇보다도 용이하다. 이와 같은 연구활동이 동물보호연구소 수의사의 몫이다. 동물보호연구소는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변화를 점차적으로 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리하자면 동물보호의 감성적인 부분도 중요한 것인만큼 현실적인 부분이나 수의학적인 기초와도 조화를 이루기위해 서로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2부에 계속..

[인터뷰] 이혜원 수의사 1부 `독일 수의사가 말하는 동물보호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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