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낮춰서 유기동물 줄이려는 수의사법 개정안

서일준∙안병길 의원 수의사법 개정안 대표발의,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사전고지제

등록 : 2021.03.02 11:33:17   수정 : 2021.03.02 11:33:19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국민의힘 서일준 의원(경남 거제시)과 안병길 의원(부산 서구동구)이 지난 24일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두 개정안 모두 수술 등 중대진료행위의 사전설명∙서면동의 의무화, 진료항목이 표준화된 다빈도 진료비용 게시를 주 골자로 하고 있다.

이중 안병길 의원은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이 유기동물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개정 이유로 들었다.

대한수의사회는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과 사전고지제는 현재로서 시행하기 어렵다면서, 진료 표준화 선행 이후 다빈도 진료행위에 한해 동물병원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서일준, 안병길 의원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사전고지제..정부안과 유사

대한수의사회, 현재로선 시행 어려워

서일준 의원안은 수술 등 동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진료행위의 경우 그 필요성 등을 사전에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정부 입법을 앞두고 있는 수의사법 개정안(이하 정부안)처럼 예상되는 부작용이나 진료비용 등 구체적인 구성 요소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취지는 같다. 안병길 의원안도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진료항목의 표준화도 두 개정안에 모두 담겼다. 서일준 의원안은 동물의료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질병명, 진료항목 등에 관한 표준을 마련해 고시토록 했다.

표준이 고시된 진료항목 중 정부가 정하는 행위의 비용을 보호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고지하여야 한다는 의무도 추가했다(사전고지제). 기본진찰료, 입원료, 혈액검사비 등을 게시하도록 정부안과 비슷하다.

안병길 의원안도 다빈도 진료항목의 진료비를 게시하되, 이를 위한 진료항목∙질병명의 표준을 고시하도록 했다.

대한수의사회는 중대진료행위 설명의무 신설은 현재로선 시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무엇이 중대진료행위인지 구체적으로 정할 기준이나 관련 통계자료도 없는 데다가, 법적으로 동물 소유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도 동물병원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료비용의 고지에 대해서도 ‘진료항목 표준화가 선행된 이후 다빈도 진료에 한정하여, 동물병원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 진료항목 표준화 비용
(자료 : 서일준 의원안 비용추계서)

동물 진료항목 표준화에 5년간 25억원?

개별 연구용역보다 전문학회 위주로 접근해야’ 지적도

서일준 의원안은 동물 진료항목 표준화를 위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간 25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 의원이 제출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진료항목 표준을 마련하는데 20억원, 표준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사업에 5억여원이다.

동물 진료항목 표준화를 위해 현재 일선 동물병원의 진료현황을 조사∙분석하고, 진료 표준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접근이다.

하지만 국내 임상수의사 모두가 공유하는 표준 프로토콜을 만드는 일이 책임연구원의 인건비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지에는 의문부호가 제기된다.

지난해 ‘동물병원 진료 표준화 방안 마련’ 연구를 수행한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은 질환별로 독립적인 수의임상프로토콜을 개발할 때 문헌에 따른 근거에 기반해야 함은 물론, 전문 학회의 검증과 인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대한수의사회에 임상교수, 임상수의사, 수의외과학회, 동물병원협회 등이 참여하는 개발위원회를 구성하고, 표준화된 개발지침을 기준으로 세운 다음, 개 슬개골내측탈구교정술의 프로토콜은 수의외과학회가 진행하는 등 질환별로 학회 중심의 개발 주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어차피 정부의 연구용역을 받은 개별 연구팀이 ‘진료 표준화’를 전담하는 방식으로는 그 결과물을 일선 동물병원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서일준 의원안은 동물 진료표준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사업으로 ‘동물진료정보시스템 구축∙운영’을 가정한 것도 한계점이다.

새로 개발된 질환별 표준진료프로토콜을 손쉽게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그 것만으로 일선 병원이 해당 프로토콜을 따를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슬개골 안쪽 탈구 수술 프로토콜 예시.
개별 병원이 참고할 수 있는 진료의 순서와 세부 진료행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담고 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통계자료와 문헌 근거가 조사되어야 하며, 전문학회의 검증 절차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위 내용은 그러한 절차를 실제로는 거치지 않은 예시.
(자료 : 동물병원 진료 표준화 방안 마련 연구보고서)

진료비 부담으로 반려동물 버린다’ 법 개정안까지 괴담 거론

한편 동물 진료비 부담이 유기동물 증가의 원인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수의사법 개정안에까지 등장했다.

안병길 의원은 “천차만별인 진료비로 인해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진료비 부담 등으로 유기∙유실동물이 매년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와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기∙유실동물이 2019년 기준 13만여마리가 발생해, 구조∙보호를 위한 예산으로 연간 232억원이 소요됐다는 것이다.

‘유기동물 관리를 위해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 유기동물은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서 늘어난다 → 진료비를 싸게 만들면 유기동물이 줄어든다 → 유기동물 관리예산도 줄일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진료비 문제로 반려동물 유기한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유기행위의 원인을 파악한 조사결과도 없고, 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통계 분석에서 노령견에 비해 진료비 부담이 덜할 수밖에 없는 5년령 이하 유기견의 비중이 90%에 달한다.

게다가 안병길 의원안처럼 ‘진료비 부담’을 수의사법 개정 이유로 지목한 것은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동의나 사전고지제 등이 결국 소비자의 알 권리 측면보다 진료비 경쟁으로 인한 하향평준화를 유도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대한수의사회는 “(안병길 의원안에는) 진료비 부담 등으로 인한 유기동물 매년 증가 등 객관적이지 않은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며 “동물은 진료과정에 따른 예후나 추가 진료 여부를 예상하기 어려워 사전 고지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한수의사회는 2월 26일 시도지부와 산하단체에 서일준∙안병길 의원안 관련 의견조회 공문을 내리고 오는 8일까지 의견을 취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