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사람-동물 `겸용의약품`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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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약품 업계와 관련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가 ‘겸용의약품’ 제도 검토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물을 진료하면서 인체용의약품과 동물용의약품을 모두 활용하는 수의사들조차 ‘겸용의약품’은 용어부터 낯설다. 겸용의약품 제도 도입안과 찬반론, 우려되는 부작용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현재 의약품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인체용의약품’과 동물에게만 쓰이는 ‘동물용의약품’으로 나눠 관리되고 있다. 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후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담당한다.

수의사는 동물을 진료하면서 동물용의약품과 인체용의약품을 모두 사용한다. 동물에게 꼭 필요함에도 동물용의약품으로는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약성분이 많아, 인체용의약품이라도 사용하는 것이다.

동물용으로 정식 품목허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수의학적 전문지식에 따라 수의사가 책임지고 처방하는 형태다.

이는 우리나라나 해외나 마찬가지다. 전세계 수의사들 모두 인체용의약품을 ‘허가외사용’(extra-label)하는데 익숙하다.

특히 반려동물 임상에서는 동물용의약품보다 인체용의약품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수의학 교재나 대학 교육도 extra-label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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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약품 동물용 확장 규제완화’ vs ‘전세계 전례없는 관리체계, 자의적 법해석’

현재 인체용의약품이 동물에게도 사용되는 경로는 2가지다. 동물용의약품으로 다시 정식품목허가를 받거나, 인체용의약품인 채로 수의사가 extra-label 처방하는 것이다.

식약처가 현재 검토중인 안은 3번째 경로의 신설이다. 기 허가된 인체용의약품 중 동물용으로도 판매하고자 하는 약품은 ‘겸용의약품’으로 품목허가하고, 이를 식약처가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제약사가 동물용의약품제조업 허가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되고, 제조설비나 제조관리자·안전관리책임자는 인체약품용으로 갈음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기존 인체용의약품의 extra-label 사용이나,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용의약품 관리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식약처 관계자 A씨는 “약사법이 동물에게만 사용하는 의약품(동물용의약품)의 관리만 농식품부에게 위임했으므로, 겸용의약품의 관리권한은 여전히 식약처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약사법에 겸용의약품 관련 내용을 신설할 필요도 없이, 제조업 관리나 품목허가에 대한 세부규정만 만들면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법제처가 이 같은 취지의 법령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농식품부와 동물약품 업계는 ‘겸용의약품’이라는 분류체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 B씨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겸용의약품’이라는 분류체계로 의약품을 관리하는 국가는 없다”며 “동물에 쓰이는 약품을 동물용의약품과 겸용의약품으로 이중 관리하면 혼선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했다.

겸용의약품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법해석이 자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약품업계 관계자 C씨는 “약사법 상 ‘겸용의약품’에 대한 근거내용이 없음에도, 그 실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법제처 법령해석은 심각한 오류”라며 “설령 ‘겸용의약품’ 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그 개념에 대한 정의부터 공중보건학적 영향, 국제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약사법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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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등 전문의약품 오남용·동물 자가진료 조장 우려..유통방식 불투명

업계에서는 “겸용의약품 제도가 생기면, 항생제를 포함한 인체용 전문의약품 다수가 전문가 처방 없이 오남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인체용 전문의약품은 사람에겐 의사의 처방, 동물에겐 수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사용되고 있다. 반면 동물용의약품은 수의사 처방의무대상 성분을 제외하면, 약국이나 동물용의약품도매상 등에서 동물 소유자에게 직접 판매되는 일반의약품에 가깝다.

자칫 전문의약품이 ‘겸용의약품’의 탈을 쓰고 동물 소유자의 자가진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겸용의약품 제도가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기조와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수립한 항생제 내성관리 종합대책 2020에서 사람에게 쓰이는 주요 항생제의 동물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 항생제를 확대하고, 플루오르퀴놀론계 및 3·4세대 세팜계 항생제 등의 동물 사용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또다른 동물약품업계 관계자 E씨는 “겸용의약품으로 인체용 항생제를 보다 쉽게 유통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은 오히려 식약처가 반대해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 A씨는 “인체용 전문의약품이라면 겸용의약품으로 허가 받더라도 여전히 전문의약품”이라며 “의사나 수의사의 처방 없이 판매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약사법에는 수의사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제외하면, 동물에 쓰이는 약의 처방 외(外) 유통을 제한하는 근거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겸용의약품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동물병원을 통해서만 사용되는지, 수의사 처방에 의해 약국·도매상 등에서 판매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일선 동물병원장인 D씨는 “동물에 사용되는 인체용 전문의약품은 항생제, 심혈관계약물, 스테로이드, 안약, 항암제 등 오남용되면 부작용 위험이 큰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전문가 처방 하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약사 애로사항에는 공감..농식품부
·업계 ”동물용의약품 관리제도 하에서 풀어야”

인체용의약품의 동물용 전환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해야 한다는 당초 목적에는 양 부처와 업계가 공감대를 내비쳤다.

성분과 함량, 제형 등이 완전히 동일한 인체약품을 그대로 동물에게 쓰고자 한다면 별도의 제조설비를 추가하지 않도록 하거나, 제조업 허가·GMP 인증을 갈음해주는 방향이다.

농식품부도 겸용의약품 제도화 대신 현행 동물용의약품 관리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이 같은 일부 규제완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만 동물약품 업계는 GMP 인증, 약사감시 면제 등에서는 농식품부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겸용의약품 신설이든 기존 규제 완화든 인체용의약품이 동물 사용을 위해 추가 품목허가에 나서는 경우가 어차피 드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품목허가 허들에 비해 동물약품 시장성이 작아 업체 입장에서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 애초에 전세계적으로 수의사에게 인체약품의 extra-label 사용을 허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물약품업계 관계자 E씨는 “현재 extra-label로 사용되고 있는 인체약 성분이라면 동물용으로는 정식 허가된 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 같은 신약은 안전성, 유효성을 검증하는 품목허가 과정이 더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긴급진단] 사람-동물 `겸용의약품`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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