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고양이,깜찍한 친구―임동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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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4. 고양이, 깜찍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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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더불어 고양이는 반려동물의 대표주자다. 개는 충성스럽고, 다양한 역할을 통해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동물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개와 달리 야생의 본능을 지녔으며 아직까지도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이다. 고양이는 사람과의 유대를 중시하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개와는 다른 오묘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고양이는 평소 사랑스럽지만, 쥐를 잡을 때는 무자비한 야생동물로 돌변한다. 사냥 무기인 날카로운 발톱을 발가락 끝 털 속에 숨겨두었다가 언제고 필요할 때 들어낸다. 무서운 맹수인 호랑이, 사자 등과 같은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 가장 작은 고양이는 쥐를 사냥하는 야성 때문에 인간에 의해 길러졌고, 그것 때문에 시대에 따라 부정적인 동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들고양이는 여전히 사냥하며 살아가지만, 인간 세계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살지는 않는다. 포식자로부터 안전하며, 사냥감인 쥐와 각종 설치류가 풍부한 인간세계는 고양이에게 살기 좋은 공간이었다. 인간이 들고양이를 가축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탁월한 쥐 사냥꾼이면서도, 곡식을 축내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쥐를 잘 잡기 때문에, 애완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쥐를 잘 잡는 동물은 고양이보다는 족제비다. 족제비는 먹지도 않을 쥐를 마구 잡아 죽이기도 한다. 족제비의 꼬리는 붓을 만들 때 훌륭한 재료가 되고, 가죽은 담비 대용품이 될 정도로 고급 가죽이다. 그렇지만 족제비는 성질이 매우 사납고, 냄새도 심해 애완동물로 알맞지 않는 동물이다. 반면에 고양이는 족제비에 비해 비교적 사람을 잘 따른다. 고양이는 약 700만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는데, 현대 모든 집고양이들은 리비아 고양이인 아프리카 야생 담황색 고양이가 진화한 것이다. 고양이의 가축화는 이집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최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에바-마리아 가이글 박사 연구진이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인류는 9천 년 전, 이집트와 중동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들고양이를 길들였으며, 두 차례에 걸쳐 유럽으로 고양이들이 대거 반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인간이 농업을 시작하면서 곡물을 축적하자, 쥐와 같은 설치류가 모여들었다. 이때 사람들은 고양이를 길들여, 곡식을 훔쳐 먹는 괘씸한 쥐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으면서 쥐를 통해 퍼지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농경민이었던 이집트인들에게 창고의 곡식을 축내는 쥐는 골칫거리였다. 농가에 사는 고양이는 하루에 평균 10마리의 쥐를 잡는다. 쥐 한 마리가 하루에 최소 10그램의 곡물을 먹어치운다고 할 때,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1년에 10여 톤 이상의 엄청난 곡식을 절약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B.C. 2040~1782년 중왕국 시기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가족 구성원처럼 여겼다. 쥐의 피해를 막는 구원자였다. 애완용으로도 최적인 고양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히 먹이를 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었다. 이러한 자유와 자립성은 신성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본래 사자의 모습이었던 바스테트(Bastet) 여신의 모습을 고양이로 바꿔 숭배했다. 바스테트 여신은 태양신 라(La)의 딸인 동시에 아내가 된 신으로, 죽은 자를 수호하는 여신이다. 고양이 얼굴은 한 바스테트 여신은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암컷 고양이를 여신으로 숭배한 이집트인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고양이의 눈이 태양을 연상시킨다는 점 때문에, 수컷 고양이를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바스테트의 분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해외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하지만 이집트에 드나들던 페니키아 상인들에 의해 마침내 고양이가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고양이는 페스트를 옮기는 쥐를 잡는 유용한 동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우, B.C. 200년 경에 비로소 고양이가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참 늦은 고려시대 이후부터 역사에 등장한다. 1295년 들고양이 가죽 83장, 누런 고양이 가죽 200장을 원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을 보면, 고양이는 처음부터 순수하게 애완용으로만 키워지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몇몇 귀족들의 애완용으로 키워지다가, 차츰 고양이 특유의 애교와 사랑스러움, 그리고 쥐를 잘 잡는 특성 덕분에 차츰 대중적으로 키워지게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개가 등장하는 반면, 고양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늦게 가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은 무술년으로 개띠 해다. 동양에서는 12지신이란 개념이 있어서, 띠. 시간, 방위를 나타낼 때 사람들과 친근한 동물이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데 십이지에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가 들어가지만, 고양이는 없다. 인간과 친근한 고양이가 십이지에 없는 것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고양이가 12지신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전해오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필자가 어려서 동네 어르신께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해보겠다. 하나님이 십이간지 선발 달리기 시합을 연다고 모든 동물들에게 공지를 했다. 그때 고양이와 친했던 쥐가 고양이에게 시합일자를 하루 늦은 날로 알려주었고, 자신은 먼저 출발한 소의 등에 타서, 가장 먼저 1등으로 도착했다는 것이다. 쥐가 1등을 하고 자신은 탈락했음을 알게 된 고양이는 이후 쥐를 원수로 여겨 쥐만 보면 잡아 죽이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들었던 이야기 외에도 고양이가 십이지신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다. 고양이가 마땅히 십이지신에 포함되어야 할 만큼, 인간과 가까운 동물임을 증명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십이지신은 서기 1세기 중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런데 이때는 중국에는 고양이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따라서 십이지신에 고양이가 빠졌다. 십이지신 개념을 받아들인 한국, 일본에서 고양이가 누락되었던 이유다. 인도, 태국, 베트남, 몽골에도 십이지신이 있는데, 태국과 베트남에서는 토끼 대신에 고양이를 넣었다. 그래서 태국에는 고양이 띠가 따로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고양이가 악마의 동물로 취급받기도 했다. 이집트 달의 여신 이시스는 고양이 형상의 바스테트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이것이 그리스, 로마 문화로 퍼져 그리스 여신 아르테미스와 로마 여신 다이아나의 신화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다이아나가 남자 형제인 루시퍼를 유혹하기 위해 고양이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양이는 악마와 마술의 이미지도 갖게 되었다. 1233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고양이를 악마의 분신으로 규정했다. 고양이는 무조건 죽여 버려야하고 키우는 사람도 처벌할 수 있다는 칙서를 공포했다. 또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도 고양이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의 동물이라고 선언했다. 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마녀사냥에서 마녀를 수행하는 존재로 각인된 고양이는 산 채로 불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지기도 했다. 하지만 수십만 마리의 고양이가 억울한 죽임을 당하던 암울한 중세에서도 도시 지역을 벗어나면 고양이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동물이었다. 고양이는 다양한 성화에 그려지며, 여성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동물로 치부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고양이는 개와 함께 대표적인 반려동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는 대대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 민담에 『개와 고양이의 구슬다툼』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줄거리를 요약해보자. 

“가난한 어부가 어렵게 생계를 잇고 있었다. 어느 날 영감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으나 허탕을 치고, 겨우 잉어 한 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잉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놓아 주었다. 다음 날 영감이 다시 바닷가에 낚시를 하러 갔는데 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전날 구해준 은혜를 입은 잉어인데 용왕의 아들이라 밝혔다. 용왕의 아들은 은혜를 갚고자 영감을 용궁으로 초대했다. 영감은 용궁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선물로 보배 구슬을 얻은 뒤, 집으로 돌아와 큰 부자가 되었다.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 노파가 찾아와서, 다른 구슬과 바꿔치기하여 보배 구슬을 훔쳐갔다. 어부 부부는 다시 가난해졌다. 부부가 기르던 개와 고양이는 주인을 돕기 위해 노파의 집에 찾아가서 그 집에 사는 쥐를 위협해 구슬을 되찾았다. 돌아오면서 강을 건널 때, 개는 헤엄치고 고양이는 구슬을 물고 개의 등에 업혀 있었는데, 개가 구슬을 잘 간수 하고 있느냐고 자꾸 묻자 고양이가 마지못해 대답하다 구슬을 그만 물에 빠뜨린다. 이 일로 크게 다투다가 개는 집으로 가고, 면목이 없어진 고양이는 강가에서 살며 물고기를 잡아먹다가 우연히 구슬을 찾게 되자 주인에게 돌아갔다. 주인은 다시 큰 부자가 되어 고양이를 예뻐해 집안에 들이고 개를 박대하여 집밖의 마당을 지키게 했으므로, 그 뒤로 둘의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동물에게 선행을 베풀자, 동물이 은혜를 갚는다는 ‘동물보은담’이 핵심 주제다. 더불어 개와 고양이가 사이가 나빠진 유래를 이야기하는 ‘동물유래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고양이는 개보다 더 똑똑하고, 충성심이 강한 동물로 등장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고양이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김득신(1754~1822)이 그린 『야묘도추(夜猫盜雛)』라는 그림이다. 화창한 봄날,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채어 달아나자 놀란 어미 닭이 새끼를 되찾겠다고 뒤를 쫓고, 마루와 방에 있던 주인 부부가 일을 팽개치고 내달려 병아리를 구하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고양이는 인간 주변에 머물지만, 완전히 가축화되지 않는 동물이다. 야생으로 살면서 쥐나 병아리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야생성을 가진 상태로 인간 주변에 살기도 한다. 주인 없는 도둑고양이는 조선시대에도 문제였다. 하지만 김홍도(1745~1806)의 『황묘농접(黃猫弄蝶)』 그림에서 보듯이, 조선 사람들은 고양이의 아름다운 자태에 빠져 애완동물로 키우기도 했다. 

고양이는 농촌보다 도시에서 키우기 적합한 동물이다. 유럽에서도 고양이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특히 1697년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발표한 『장화신은 고양이(Le Maistre Chat ou Le Chat Botté)』 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탓에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방앗간을 운영하던 주인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기로 한다. 첫째에게는 방앗간을, 둘째에게는 당나귀를, 막내에게는 고양이 한 마리를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난다. 형들보다 적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쫓겨나기까지 한 막내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자, 고양이는 가방 하나와 장화 한 켤레를 주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가방을 메고 장화를 신은 고양이는 왕에게 찾아가 허구로 지어낸 카라바 공작을 자신의 주인으로 이야기 한다. 이후 카라바 공작의 이름으로 왕에게 여러 차례 선물을 보낸다. 그리고는 카라바 공작이 옷을 도둑맞은 것처럼 꾸며내어 막내가 왕으로부터 값비싼 옷을 선사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고양이는 이어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을 물리치고 거인의 성을 차지한다. 고양이는 왕에게 그 성을 카라바 공작의 성으로 소개한다. 마침내 왕은 방앗간 집 막내아들인 카라바 공작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킨다. 그래서 방앗간 집 막내아들과 공주, 고양이는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페로는 상속 받은 재산보다 지혜가 더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페로가 선택한 지혜로운 자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였다. 페로가 고양이를 선택한 것은 당시 유럽인들이 고양이를 총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복고양이(마네키네코)라는 도자기 장식품이 있을 만큼,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라다. 최근 일본에서는 고양이 키우기 붐이 일어나 고양이 관련 산업이 호황이라고 한다. 고양이 가격이 1마리당 1천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자기 앞가림을 하면서도 산책을 시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령자나 집을 비우는 일이 많은 독신자가 기르기 쉬워서 고양이 사육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사육하는 고양이 숫자가 이미 개를 훨씬 능가했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병이 적고, 특유의 매력이 있다. 대체로 선진국일수록 고양이를 많이 키우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2년 고양이를 기른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 인구의 0.3%에 불과한 반면, 2015년에 4%에 이르러 13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고양이가 인기가 높은 비결은 훈련하지 않아도 대소변을 가리고, 강아지처럼 시끄럽게 짖거나 집을 더럽히지 않으며, 보호자가 없어도 분리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두고 외출하더라도 보호자의 죄책감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가 사라지고, 차츰 핵가족이 되어가는 오늘날,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같이 누리며 자신의 말동무가 되어줄 친구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그래서 고양이와 개가 누구에게는 친구로, 노인에게는 딸이나 아들을 대신해 외로움을 달래주고, 기쁨을 주는 동물로 사랑받고 있다. 개와 고양이가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더 외로워하고, 더 쓸쓸하고 무미건조하게 살는지도 모른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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