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12―임동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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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2. 돼지와 닭, 인류의 식생활을 바꾼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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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육류는 무엇일까? 치맥의 대명사인 치킨, 아니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소고기일까? 아니다. 단연코 돼지고기다. 전 세계 인류의 1/5을 차지하는 무슬림들이 혐오하는 육류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은 100,064킬로톤으로, 닭고기 소비량인 84,668킬로톤보다 많고, 소고기 소비량인 57,629킬로톤의 약 2배에 달한다.

돼지고기가 닭고기나 소고기를 제치고 소비순위 1위인 이유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9%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전 세계 돼지고기의 51.9%를 먹어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많이 먹기로 유명한 미국인들은 전 세계 인구에서 약 4.5%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 세계 소고기의 19.5%를 소비하고, 닭고기도 16.6%를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덜 먹는 편이다.

중국 다음으로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곳은 유럽연합으로, 중국과 유럽연합은 전 세계 돼지고기의 70%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권에 속한 대만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을 합치면, 이들이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유럽에서 장기 저장식품인 소시지가 발전하고, 중국에서 동파육을 비롯한 돼지고기 요리가 발전한 것도 두 지역에서 오랫동안 돼지를 많이 길러왔기 때문이다. 유럽은 오랫동안 삼포농업을 해왔다. 비료를 주는 방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한곳에서 계속해서 농사를 지으면 땅이 황폐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한 해 농사를 지으면 다음해에는 그곳을 쉬게 하거나, 방목지로 사용했다. 유럽인들의 주식인 밀은 쌀과 달리 영양학적으로 불완전식품이라고 한다. 밀이 주식인 경우, 부족한 영양분을 고기로 보충해주어야 한다. 밀이나 호밀을 주로 재배한 탓인지, 유럽과 북중국 사람들은 돼지를 키워 곡식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훌륭하게 보충했다. 유럽인들은 돼지고기로 소시지를 만들어 먹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돼지 창자로 순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돼지는 풍만한 육체를 갖고 있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처음 인간이 신에게 제물로 바친 돼지는 물론 야생의 멧돼지였다. 멧돼지를 가둬 키우자 성질이 온순해져, 차츰 사람들이 키우기 알맞은 가축으로 변해갔다. 잡식성인 돼지는 아무것이나 잘 먹어, 키우기도 편하다. 돼지가 번식력이 뛰어나고, 지방이 풍부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데 아주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많이 키우게 되었다. 다만 돼지는 이동시키기에 불편해서 유목민들은 돼지를 키우기 어려웠다. 또 돼지고기는 더운 여름철에 빨리 상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더운 사막과 초원에서 살았던 무슬림들은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숲이 많은 곳에서는 돼지에 필요한 먹이도 풍부해, 사람들은 돼지를 널리 키웠다. 큰 코를 가진 돼지는 특별한 향을 가진 최고급 버섯인 송로버섯을 찾을 때에도 아주 유용했다. 중국은 물론 고구려도 돼지를 많이 키웠다. 고구려는 돼지를 키우는 관리를 두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고구려 특유의 고기요리인 맥적(貊炙)은 멧돼지, 또는 돼지고기로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잠깐 고구려 시대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필자가 집필한 고구려 백제 신라 800년의 역사를 다룬 『우리나라 삼국지(총 11권)』에도 자세히 소개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구려 2대 유리명왕 19년(B.C. 1년) 가을 8월에 도성 밖에서 지내는 제사인 교제(郊祭)에 쓸 돼지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왕은 탁리와 사비 두 사람의 관리를 시켜 도망친 돼지를 잡아오게 했다. 그들은 장옥 늪이란 곳에 이르러 돼지를 발견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칼로 돼지 다리의 힘줄을 잘랐다. 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말했다.

“하늘에 제사 지낼 희생용 제물에 어찌 상처를 낼 수 있는가?”

유리명왕은 두 사람을 구덩이 속에 던져 죽여 버렸다. 돼지 다리 힘줄을 끊은 일로 관리를 죽게 한 것은 매우 심한 벌이었다. 그해 9월 왕이 병들었는데, 무당이 말하기를 “탁리, 사비의 귀신이 화근이 되었다”고 하므로, 왕이 무당을 시켜 귀신에게 사죄하게 했다. 그러자 곧 왕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고구려에는 제사에 쓰일 희생물 제물을 담당하는 관리들의 지위나 영향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임금을 병들게 하고, 왕의 사죄를 받았으니 말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더 살펴보자.

역시 유리명왕 21년 때 일이다. 불과 2년 전에 희생용 돼지가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돼지가 도망쳤다. 그러자 왕이 희생용 제물을 관리하는 설지로 하여금 돼지를 쫓아가게 했다. 설지는 국내위나암에 이르러 돼지를 잡았다. 설지는 돼지를 근방에 사는 백성에게 맡겨 두고 돌아와 왕을 뵙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신이 돼지를 쫓아 국내위나암에 이르렀는데, 그곳의 산수가 깊고 험하지만 땅이 오곡에 알맞고, 또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도 많았습니다. 왕께서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시면 백성들이 살기 좋아 이익이 무궁할 뿐 아니라, 전쟁의 피해도 덜 보게 될 것입니다.”

유리명왕은 심사숙고 끝에 이듬해 수도를 국내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수도를 옮기는 천도(遷都)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수도를 옮기는 일이 돼지 때문에 벌어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고구려인들은 희생용 제물인 돼지가 선택한 곳이 곧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돼지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 하나 더 소개한다. 서기 208년 고구려 사람들이 돼지우리를 만드는 법을 잘 몰랐던 탓인지, 돼지가 워낙 재빨랐는지 하여튼 제천에 희생물로 쓰일 돼지가 또 도망가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관리가 돼지를 쫓아, 술을 빚는 마을인 주통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20세쯤 된 어여쁜 처녀가 웃으면서 나서서 치마폭으로 돼지를 붙잡았다. 관리들은 아가씨 덕에 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 관리가 궁으로 돌아와 고구려 10대 산상왕에게 이 일을 아뢰자, 왕이 주통촌 여자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왕은 주통촌을 방문해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산상왕은 자신을 왕으로 옹립해준 우씨왕후의 눈치를 보는 처지여서, 자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후궁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가 맺어준 인연으로 인해 주통촌 여인을 후궁으로 맞아들였고, 그녀와 사이에서 왕자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11대 동천왕이다. 그래서 동천왕의 이름을 ‘교체(郊彘)’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제사용 돼지라는 뜻이다.

이처럼 희생용 돼지의 행동은 신의 의지로 여겨져, 고구려에서는 천도를 하고, 후궁을 맞아들이고, 왕자를 보는 일들이 벌어졌다. 희생용 제물의 행동이나 징조를 신의 의지로 보려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고대 중국이나, 부여 등에서는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제물을 바쳐 제물에 나타난 징표를 통해 신의 뜻을 읽으려고 했다. 글자를 적은 거북의 등을 태워서 갈라진 금으로 점을 쳐서 신의 응답을 해석하기도 했다.

돼지와 친했던 고구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돼지를 많이 키우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닭고기와 소고기를 먹었다. 왜냐하면 당시 곡식이 귀했고, 돼지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곡물과 야채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인구가 늘고 산을 경작지로 개간했기에 숲이 많이 사라졌다. 돼지의 먹이를 산에서 조달하지 못함에 따라, 농가에서 돼지를 키우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소나 양은 인간이 먹지 않는 풀을 먹고 성장하지만, 돼지는 인간과 곡물을 놓고 경합한다. 조선시대에 새해 첫 번째 돼지날(上亥日)에 횃불을 땅에 끌면서 ‘돼지주둥이를 지진다.’고 외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돼지가 게으르고 곡식만 축내는 동물이라고 경계했기 때문이다.

돼지가 인간의 곡물을 축내는 동물이란 생각 때문에, 조선에서는 돼지를 많이 키우지 않았다. 돼지고기 요리도 다양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소고기만큼 좋아하는 삼겹살은 불과 몇 십년도 안 된 역사를 갖고 있다. 맛과 영양가가 뛰어나지만 상온에서 빨리 상하는 돼지고기는 여름철 식중독의 주범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다 냉장고의 등장으로 보관상의 문제가 해결되자 돼지고기는 널리 소비되기 시작했다. 값도 소고기 보다 훨씬 저렴한 돼지고기는 삼겹살을 필두로, 족발, 목살, 대창, 막창 등 여러 부위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개발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돼지고기가 소고기를 제치고 명실상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대표적인 육류가 되었다. 

삼국시대 돼지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물로 사용된 것처럼, 닭 역시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사랑을 받는 가축이었다.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탄생 설화에는 “시림 숲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신라왕이 신하 호공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 궤를 가져와 열어보니 안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이 아이가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에 시림 숲의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불렀고, 당시 신라의 국호로도 사용되었다.

닭은 지네의 천적이다. 지네는 독을 가진 곤충으로, 지네의 독은 히스타민 성분으로 사람이 물리면, 빨간 반점 등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지네 독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발열 증세를 일으켜 사람들을 대단히 아프게 한다. 그래서 지네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닭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충주시에 있는 계명산은 본래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산(梧桐山)이라 불렸다. 그런데 옛날에 지네가 하도 많아 지네들의 천국이었다. 한 촌로가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더니 어느 날 도인이 나타나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닭을 길러 보라”고 일러주어 그대로 했더니 지네가 없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동산을 계족산(鷄足山), 계명산(雞鳴山)으로 불렀다. 지네를 한자로 백족충(百足蟲)이라 한다.

대전광역시에 있는 계족산에도 천년 묵은 지네가 사람들을 해쳤기에, 마을 사람들이 매년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그러다 닭이 지네의 천적이라는 것을 깨닫고부터 닭을 풀어 지네가 사는 굴을 찾아 지네를 소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황해도 장연군의 학림사에도 흰 닭 전설이 전해온다. 매일 아침마다 승려가 한 명씩 없어졌는데,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큰 지네였다. 그런데 흰 닭 2마리를 풀어놓자, 닭이 지네를 제거해 사람들을 편하게 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닭은 사람들을 해치는 해충을 제거해주는 착한 가축이다. 그래서 닭을 신의 전령처럼 여겼다. 수탉은 울음을 울어 새벽을 알린다. 시계가 없던 시절, 수탉의 울음소리는 알람시계와 같은 역할을 했다. 또 암탉은 지구촌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영양식품인 달걀을 낳아준다. 그래서 닭은 오래전부터 집집마다 몇 마리씩 키우고 있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잡아 대접하는 동물이었다.

중국 한나라 학자, 한영(韓嬰)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닭을 선비에 빗대어 다섯 가지 덕을 칭송한 대목이 있다. “머리의 관은 문(文), 발의 갈퀴는 무(武), 적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먹이를 보고 동료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에 맞추어 시간을 알림은 신(信)이다.” 닭을 선비에 빗댄 것은 닭이 그만큼 인간과 가까운 가축이고,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1kg짜리 닭을 키우는 데는 사료 1.7kg 정도가 필요하다. 반면 돼지를 1kg 살찌우는 데는 사료 4.4kg가 필요하고 소는 7.5kg 정도를 먹여야 체중이 1kg가량 불어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보다 닭고기 가격이 저렴한 것은 닭의 사료효율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닭은 사료를 조금만 먹어도, 전부 살로 간다는 것이다. 붉은 고기인 소고기와 돼지고기보다 백색 고기인 닭고기는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하여 소화 흡수가 잘되기에, 유아나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단백질원이 된다.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닭고기를 많이 먹는다. 전 세계적으로 닭고기를 돼지고기보다 더 많이 소비한다고 할 정도로, 닭고기 소비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닭이 낳는 달걀도 20세기 이후 크게 늘었다. 달걀은 날로 먹거나, 삶아서 먹기도 하지만, 빵이나 과자, 전같이 많은 요리에 활용된다. 달걀이 들어간 요리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만큼 많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닭고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닭 한 마리를 잡게 되면,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쌀과 인삼, 야채 등을 넣어서 백숙을 만들었다. 양을 크게 불려야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라도 기름에 튀겨 만든 치킨을 손쉽게 먹을 수 있기에 국민간식이라 불린다.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는 치킨의 등장은 인류의 식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고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대로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치킨의 등장은 한국 식생활사에서 혁명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양계도 집집마다 몇 마리 키우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대량생산으로 접어들었다. 수의사가 닭의 질병을 연구하고 격퇴했기에 닭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닭은 돼지와 더불어, 현대인들에게 풍족한 식생활을 만들어준 귀중한 가축으로 자리 잡았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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