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왜 개를 위한 미술관을 준비하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프리뷰&북토크 열려

등록 : 2020.06.29 00:45:51   수정 : 2020.06.29 10:44:04 이학범 기자 dvmlee@dailyvet.co.kr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오는 9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02 :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사람뿐만 아니라 개를 위한 전시를 기획했을까.

28일(일)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Museum for All, Museum for Dogs)> 프리뷰&북토크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지극히 인간 중심적 공간인 미술관이 비인간 동물인 ‘개’에게 문을 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날 행사는 ‘개’라는 동물에 대해 알아보는 1부와 전시에 대해 한 걸음 깊게 다가가는 2부로 진행됐다. 전시를 기획한 성용희 학예연구사가 사회를 맡았다.

1부에서는 유기견 출신 ‘꼬미’를 입양해 1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 래퍼 ‘빈지노’와 설채현, 조광민 수의사가 참여했다. 설채현·조광민 수의사는 기획단계부터 개의 감각과 습성에 대해 자문을 했는데, 두 수의사의 자문이 전시 곳곳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적록색맹이라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파란색과 노란색 위주로 보는 개를 위해 ‘파란색과 노란색’을 주로 사용한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색이 있는 자연’을 개에게 선보이고자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자연을 표현한 작품도 전시된다.

빈지노는 반려견 꼬미를 통해 ‘멈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작업을 하다가도 꼬미와 함께 산책하며 주변을 돌아볼 기회를 얻고, 이런 ‘멈춤’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인생의 스승인 반려견이 인간에게 ‘잠시 쉬어가도 돼’라고 알려주는 ‘교훈’ 아닐까.

2부에는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저자인 최유미 연구가와 2년간 북한산 들개들을 촬영한 권도연 작가, 미술비평가 정현 교수가 참여했다.

‘사이보그 선언’으로 유명한 도나 해러웨이는 두 번째 선언의 대상으로 개를 택했다(반려종 선언). ‘반려종 선언’은 주로 개와 인간의 관계성을 다루고 있는데, 개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혹은 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안락사 하루 전에 긴급히 유기견을 입양한 정현 교수는 5년 동안 반려견 ‘여름’과 함께 산책하며 ‘반려견이 온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를 마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따지는 사회문화적 문제들은 개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평가로서 현상을 풀이하는 게 힘에 부칠 때가 많은데, 반려견이 자연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모습에서 미학적 마주침을 느꼈다는 게 정현 교수의 설명이다.

6월 25일 출간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책을 통해 이날 프리뷰&북토크 참여자들의 생각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책에는 전시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인간과 비인간의 복잡한 관계나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글이 가득하다.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미술관, 비인간 동물에게도 문을 열다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처음에 ‘개를 위한 미술관’ 기획이 거절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획안을 받아들여졌고, 오는 9월 전시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모두를 위한 OOO’라는 제목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모두’는 어디까지일까. 어린아이? 노인? 사회적 약자? 사치처럼 느껴져 미술관은 엄두도 못 냈던 사람? 어떤 타자(경계 밖의 존재)를 생각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범주는 주로 ‘인간’이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유일한 존재가 아니며, 비인간 동물도 ‘모두’에 속할 수 있다.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개와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대하는 일을 통해 소중한 타자성(significant otherness)을 확산시키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나 퍼포먼스를 넘어, 개를 위한 미술관을 짓는 수준의 노력이 투입되고 있다. 현재도 조경가, 건축가와 함께 작업 중이다.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한 미술관을 짓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그동안의 미술관은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미술관은 언제나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과연 ‘모두’는 누구이고, ‘열린’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라며 “이러한 경계짓기, 규정하기는 경계 밖의 존재들인 ‘타자’에 대한 질문과 우리와 사회에 관한 성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런 고민과 성찰로부터 ‘인간 중심의 공간이었던 미술관’이 대표적 타자인 ‘비인간 동물’에게 문을 여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개에서 시작된 ‘소중한 타자성’에 대한 노력이 반려동물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을까?

5월 개최 예정이었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코로나19로 인해 한 차례 연기되어 9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