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獸)타트:채식은 처음이라] 작심삼일이라도 좋으니 일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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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면서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문을 두드립니다. 인턴으로 불리는 1년차 임상수의사 뿐만 아니라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을 해도, 이직을 해도 심지어 은퇴를 해도 1년차가 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0기는 다양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수의대생, 새로운 생활에 직면하는 수의사들을 위해 [수(獣)타트 : OO은 처음이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타트 프로젝트는 임상, 기업, 공직,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1년차에 도전하고 있는 수의사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유학, 결혼, 입사, 개원, 창업, 은퇴 1년차인 수의사들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두 번째 주인공은 ‘채식 1년차’ 강다영 학생입니다.

*   *   *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들은 각자의 신념혹은 가치관을 지키고, 또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 중 ‘비거니즘’은 건강, 종교, 환경, 동물권 등의 이유로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철학 및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비거니즘을 지지하며 식습관을 바꾸고, 동물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것들의 소비를 지양하는 사람을 비건(vegan) 혹은 채식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완전한 비건이 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는 ‘비건 지향’이라는 말도 널리 사용됩니다.

채식주의자는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채식 중 과일과 견과류만을 소비하는 프루테리언(fruitarian)부터 동물에게서 얻은 모든 식품을 먹지 않고 채소와 과일만 섭취하는 비건(vegan), 우유·유제품·꿀까지만 허용하는 락토(lacto), 달걀만 허용하는 오보(ovo), 채식을 하나 달걀과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락토오보(lacto-ovo), 채식을 하지만 생선·달걀·유제품까지 허용하는 페스코(pesco), 붉은 살코기를 먹지 않는 폴로(pollo), 채식을 지향하나 때에 따라 육류와 생선을 소비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으로 나뉩니다.

이렇게 채식의 실천 범위는 아주 넓고 다양한데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 시작한 충남대 수의대 강다영 학생(사진)을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충남대 수의대에 다니고 있는 강다영입니다. 본과4학년을 마치고 곧 졸업할 예정입니다.

채식은 2021년 여름에 시작했으니, 지금까지 1년반 정도 됐네요.

 

Q.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학생 때부터 채식에 관심이 있었는데요, 가장 처음 도화선이 된 것은 수의대에 입학하고 간 첫 동아리 엠티였어요.

아침 식사 당번이 돼서 카레를 만드는데, 고기를 안 넣는 거에요. 알고 보니까 선배 중에 비건인 사람이 있어서였어요. 그 때 ‘수의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나도 언젠가는 비건 해야지‘라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2021년 여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이 때 동물권과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읽게 됐죠.

그 중 채식을 시작하는데 가장 큰 계기가 된 책이 있는데요, 바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멜라니 조이 저)]입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어떤 동물은 한없이 사랑하고, 어떤 동물들은 가차 없이 소비해요. 다 같은 동물인데 말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키우는 반려동물이랑 먹는 동물이랑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비건 실천을 결심하게 됐어요.

Q. ‘프루테리언(Frutarian)’부터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까지 채식주의자 유형이 다양하게 나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 어느 유형에 해당하시나요?

저는 ‘비건‘에 해당해요. 동물로부터 온 것은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습니다. 육류, 해산물, 우유, 달걀 그리고 꿀도 먹지 않아요.

 

Q. 채식 이후 변화된 점이 있나요?

채식을 한다고 하면 다들 살이 많이 빠졌냐고 물어봐요. 사실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외식에 대한 선택지가 줄어든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주로 비건 식당에 가는데요, 친구들이 ‘이 기회에 비건 식당도 가고 참 좋다‘라고 말해줄 때는 참 고마워요.

그래도 주변 사람들한테 배려받는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나 빼고 너네끼리 밥 먹고나서 나는 카페에서 만날까?”라고 먼저 묻는 경우도 많아요.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반대로 좋은 점도 있어요.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일이 많아졌죠. 그 덕분에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 먹게 되는 느낌이에요. 내 눈으로 어떤 식재료가 어떻게 요리되는지를 볼 수 있으니까 식생활이 조금 더 풍요로워졌다고 할까요. 요리 실력도 많이 늘었고요(웃음).

 

Q. 고기(육식)가 생각날 때는 없었나요?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았었는데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공장식 축산부터 도축과정까지 모두 알게 된 후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 내 혀를 만족시켜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이것은 음식으로서 취급될 것이 아니고 한 개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인데, 우리의 밥상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은 미디어에서도 육식 관련된 콘텐츠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

 

Q. 단순히 식단이 제한되는 것 이외에 주변의 인식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많죠. 채식을 한다고 하면 다들 ‘왜?’하고 제일 먼저 물어봐요. 도살과정이나 사육 환경이 너무 가혹해서 먹을 수 없다고 대답을 하면, 고기를 먹는 본인들을 공격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니까 스스로 비건임을 밝히는 것에 점점 더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가장 뻔한 이유인 환경 때문에 채식한다고 주로 말하고 다녀요.

채식주의 분류
(이미지 : flaticon.com)

Q. 좋아하는 비건 식당이나 자주 해 드시는 비건 요리가 있나요?

카페로는 카이스트 근처에 있는 ‘폴인터풀‘을 정말 좋아해요. 비건 케이크와 쿠키 같은 것들을 파는 곳이에요. 또 세종시에 위치한 비건 식당 ‘그린피스트’도 추천해요.

서울에는 맛있는 비건 식당이 너무 많아서 한 곳만 고르기 어려운데요, 그 중에서도 사당역에 근처에 있는 ‘남미 플랜트랩‘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집에서는 채식 식단으로 거의 모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어요. 찌개 같은 한식은 거의 다 가능하고요, 파스타나 볶음요리도 제한 없이 해 먹을 수 있어요. 저는 주로 간단하게 덮밥 종류를 많이 해 먹는 것 같아요.

 

Q. 1년간 채식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저는 블로그에 일상이나 감상 같은 것들을 기록하는데요, 친구들이 달아주는 댓글들이 참 힘이 많이 돼요. ‘네가 이렇게 하는 걸 보고 나도 생각이 변해서 채식을 시도해보려고 해.’ 같은 식의 댓글들이죠.

이런 반응들을 볼 때마다 정말 뿌듯하고, ‘이렇게 조금씩 세상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채식을 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요?

일단 너무 큰 목표를 가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처음에는 ‘소고기만 먹지 말아보자’하는 것처럼 작게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점차 넓혀가면 실천하기 훨씬 쉬울 겁니다.

그리고 채식과 함께 동물권을 공부하려고 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아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거든요.

또한 주변에서 유세 떤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이 맞다’하는 굳은 마음이 필요할 거예요.

 

Q. 1년 후와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앞으로도 쭉 비건으로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채식을 설파하고 다니지 않을까요? 돈을 벌게 된다면 동물복지단체나 동물권 단체에 후원도 하고 싶고요.

1년 뒤에는 아마 수의사로서 자리 잡기에 바빠서 매일 비건 도시락 먹는 것에 소확행을 느끼며 지내고 있을 것 같아요(웃음).

10년 뒤에는 책을 출간하거나, 비건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포틀럭파티를 열어서 비건 음식도 나눠 먹고 레시피도 공유하는 거죠. 이런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고 있어요.

 

Q. ‘1년차가 0년차에게’ 이제 막 채식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0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더 낫다.’는 유명한 말이 있어요. 작심삼일이라도 좋으니 너무 겁내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니면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는 날을 정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일주일에 하루만 비건으로 살아도 남은 인생의 1/7을 비건으로 사는 거잖아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채식을 시작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홍진서 기자 vivian1009@naver.com

[수(獸)타트:채식은 처음이라] 작심삼일이라도 좋으니 일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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