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09] 경상국립대 수의학과 초석 만든 ‘형성해’

등록 : 2022.07.08 11:28:48   수정 : 2022.07.08 11:28:53 데일리벳 관리자

한국수의인물사전 109. 형성해(形誠海, 1918~2005). 일본 오비히로 수의축산전문학교 졸업, 진주농과대학 수의학과 인가 및 수의학과장, 한국인 최초 일본 아자부 수의과대학 박사.

호는 인초(仁初)이고 1918년 12월 3일 제주 서귀포에서 출생하였다.

서귀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1932. 3.)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다이세이[大成]제2중학교(1939. 3.)를 거쳐 홋카이도 관립 오비히로[帶廣]수의축산 전문학교를 졸업(1943. 9. 30.)하였다. 일본 수의사회연구소와 조선총독부 농업시험장(함경남도 명천 종양장)에서 근무하였으며, 해방을 맞아 월남하여 부산 가축위생연구소에 입소(1945. 10.)해 병독과(기좌)에서 일하였다.

1953년 진주로 와서 생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였기에 진주가 고향인 셈이다. 1953년 4월 진주농과대학(현 경상대학교의 전신) 축산학과(가축질병학 담당)에 부임하여 원봉래를 초빙(1954. 5.)하였는데 두 사람이 협력하여 다음 해인 1955년 3월 15일 수의학과 인가를 받아냈다.

그래서 그해 4월 신입생 40명을 받아들여 1959년 3월에 26명을 졸업시킴으로써 첫 수의학사가 배출되었다. 당시 수의사 국가시험 합격률, 특히 신설된 수의학과의 합격률은 그 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므로 합격률을 높이려고 대학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수의학과장으로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높은 합격률을 유지하였다.

진주농과대학에 부임한 다음 해에는 축산학과장(1954. 5. 5.~1954. 12. 31.)을 맡았고, 수의학과 신설 이후에는 거의 10년 동안 수의학과장을 맡아 지방에 묻혀 있는 인재를 발굴해냄으로써 그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국가의 수의학 교육 정책에 따라 졸업생의 수에는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수의학과의 신설은 초기 경상대학교를 떠받치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식량의 절대 부족으로 미잉여 농산물(저개발국가 식량 원조 계획인 ‘PL480 프로그램’의 일환)로 그 부족분을 충당하던 실정이었으므로 대학의 연구시설은 말할 수 없이 빈약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본생물과학연구소에 가서 일본뇌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배양 세포에 의한 일본뇌염 바이러스의 분리, 동정, 증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만들어 아자부[麻布]수의과대학 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1968. 6. 20.)를 받았다.

김영한의 회고에 따르면, “형성해를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가 강한 허스키 보이스에다 사교적이지 못할 것 같지만 인품이 넉넉하여 장난삼아서라도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김영한, 이현수, 형성해, 이 세 사람은 안양이나 진주에서 가끔씩 어울려 친구네 집에 묵으면서 술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관포지교’의 정을 쌓았다.

그의 학장 재임(1972. 1. 1.~1975. 12. 31.) 시절에 진주농과대학은 종합대학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었다. 진주‘농과’대학은 농학계열 6개 학과와 사범계열 5개 학과를 합한 11개 학과가 그 울타리 안에 있기에 부적합했으므로, 전임 학장 시절에 이미 경상대학(慶尙大學)으로 개명하자는 학내 의견 수렴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의 학장 재임 중에 국립대학교 설치령 개정(1972. 7. 11.)에 따라 교명이 경상대학으로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전국의 수의학과 통폐합에 따른 이른바 대치 학과 명목으로 낙농학과, 식품가공학과, 식품영양학과 신설 인가와, 부설 중등교육연수원 설치 인가를 받았다. 또한 부속 경남문화연구소 설치도 인가받아 대학이 지역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도록 하였다. 1975년 3월에는 대학원(농학과, 임학과, 축산학과, 농화학과) 설치 인가를 받음으로써 대학원 개원의 꿈을 이루었다.

같은 해12월 30일에는 학생 입학 정원이 2,120명으로 증원되었다. 이와 같이 학장 재임 중에 단과대학이 종합대학교가 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43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학교를 떠난 후에는 마점술, 조희택 등과 낚시를 다니고 때로는 바둑으로 소일하면서 여생을 지내다 미수(米壽)에 이른 해인 2005년 12월 1일 타계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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