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89] 조종사에서 대한수의사회장까지 `정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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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89. 정창국(鄭昌國, 1923~2010). 일본 항공대 조종사, 육군항공대 편입, 공군 훈장 수훈, 서울대학교 수의학부, 미네소타프로젝트 참가,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장, 서울대 수의대 학장, 서울시수의사회장, 대한수의학회장, 한국임상수의학회장, 대한수의사회장.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호는 현송(顯松)이며, 1923년 1월 30일 평안북도 선천읍에서 태어났다.

신의주공립보통학교와 일본 야마구치현 고죠[鴻城]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도쿄 메이지[明治]대학 경영학과 1년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징집(1944)되어 일본 항공대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싱가포르 산속에서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일본군과 함께 전쟁 포로가 되어 중노동의 기간을 지내고, 1946년 5월 부산항에 귀환하였다.

우리나라에 수의학을 정착시키려는 꿈을 품고 1947년 9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부에 입학하였지만 4학년을 한국전쟁과 함께 보내고 졸업(1951)하자마자 11월 육군 통역 장교(중위)로 임관하여, 신설된 육군항공대에 전속됐다. 기본 훈련을 마친 후 매일 경비행기(L-19)를 조종하면서 적군 후방을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비행 근무 중 얻은 신병 때문에 부산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제대 무렵 미군으로부터 ‘공군 훈장(Air Medal)’을 받았다.

제대 후 부산여자중학교(6년제)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대학교 수의외과학 유급 조교에 임용되었다. 대학이 서울로 복귀한 후 이웃한 의과대학에서 외과학 강의를 1년간 청강하면서 외과 지식을 쌓았다. 1958년 전임강사로 승진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University of Minnesot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Project)에 따라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에서 존 아널드(John Phillip Arnold) 교수의 지도로 수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회고록에 이렇게 전한다.

“동물병원에서 교수들의 수술을 참관하기도 하였지만 직접 시술도 하였다. 이따금 의과대학 외과 실습에 참여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또 한 학기가 끝나고 나서 아널드 교수로부터 ‘방학 동안에는 일선 수의사들과 같이 일을 해보라’는 권유에 학교에서 30마일 떨어진 조그만 도시의 대동물 수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는 입원실, 치료실은 없고 조그만 실험실, 약품실, 전화와 무선전화가 비치된 사무실이 있었다. 치료에 필요한 기재와 약품들은 모두 치료용 차 안에 들어 있었다. 둘째 날부터 기상 시간, 식사 시간, 취침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킬 수 없었다. 전화가 오면 꼭두새벽이라도 곧장 목장으로 달려가야 했고, 시골길에는 먹을 만한 식당도 없었다. 차가 한번 병원을 떠나면 매일 평균 100마일을 달렸다. 축사에 들어가서 환축과 한바탕 결투를 벌이고 난 후에는 차에 돌아와 무선전화로, 병원을 지키고 있던 자기 부인과 통화하여 다음 행선지를 결정했다. 매일매일 이런 활동의 되풀이였다.”

이러한 훈련 과정은 외과에 한하지 않고 산과를 포함한 수의 임상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나의 미네소타 유학은 40년에 가까운 나의 수의학계 생애에 있어서 가장 의욕적이고 혁명적이고 진취적이고 배움의 보람으로 충만한 황금 시대였다.”

귀국 후 차근차근 준비한 논문 「한우의 혈액학치 및 혈액화학치에 관한 연구」로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1966)하였다.

우리나라의 낙농 수준이 일천했던 귀국(1961. 10.) 당시 서울우유조합에서 질병상담역을 했고, 이어 1970~1980년에는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이 기간 서울우유에서 발간한 《서울우유》에 30편 넘는 읽을거리를 게재하여 젖소 지식 보급에 기여하였다.

1972년 파리 OIE(세계동물보건기구)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가 얻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고생하였으나 한국임상수의학회를 창립하여 일선 수의사들에게 임상 정보를 보급하려 노력하였다.

1981년 수정란 이식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이듬해에는 일본 홋카이도대학을 비롯한 여러 목장 및 연구소를 방문하여 수정란 냉동법, 검란 과정, 외과적 및 비외과적 이식 등을 경험했고, 이것이 수의학에 생물공학을 도입하게 되었다.

학내에서 동물병원장(1965~1971)과 학장(1985~1987)을 역임하였다. 특히 학장 재임 중에는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에, 수의과대학 수업 연한 연장(6년제)과 관악으로의 캠퍼스 이전 계획이 포함되도록 하였다.

서울시수의사회장(1966~1968), 대한수의학회장(1977~1979),한국임상수의학회장(1984~1986), 대한수의사회장(1987~1993)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학술 활동을 하였고,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1968~1971), 성균관대학교 농과대학(1979~1980)에 출강하기도 하였다. 서울우유 고문 외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사, 농수산부 농정자문위원, 서울대학교 본부 기획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여러 잡지에 게재된 논단, 수필, 단상, 낙농기술과 임상수의술에 관한 글을 문하생들이 한데 모아 정년 기념으로 『임상만보(臨床慢步)』(1988)를 발간하였으며, 이외에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2010년 6월 15일에 영면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사능 영락동산에 안장되었다. 1958년 말에 결혼한 전숙일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글쓴이_권오경, 서강문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 한국수의인물사전 인물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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