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87] 의대·치대·한의대·약대에서 생리학 강의 `정순동`

등록 : 2021.02.18 16:07:22   수정 : 2021.02.18 16:07:27 데일리벳 관리자

한국수의인물사전 87. 정순동(鄭淳東, 1931~2008). 진주농과대학(현 경상대) 수의생리학·수의생화학 강의, 연세대 의대 연구교수, 경희대 의대 교수, 의대·치대·한의대·약대 생리학 강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1931년 8월 23일 서울 용산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농업중학교(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1950년 6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2주가량 지난 무렵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업이 3년 동안 중단되었다. 전란 중에는 선친이 근무한 철도청에서 자원봉사 겸 일용직으로 생활하였다. 이 3년의 공백 때문에 후배라는 말을 듣기 싫어 동창 모임 참석을 등한시하기도 하였다. 선후배를 말할 때 1960년대에는 졸업을 기준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고 1970년대부터는 재학생 중 군 입대자가 상당수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입학을 기준으로 말하였다.

미국 교육 체계의 신학기가 9월에 시작되고 해방이 8월이었으므로 교육 공백기를 줄이고자 미 군정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신학기가 9월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수의학부 첫 입학식이 1947년 9월 10일에 있었다. 그러나 1950년 1월 20일 국회에서 신학기 시작을 4월에 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서울대학교는 일시에 한 학기를 당길 수 없어 잠정적으로 1950년의 신학기를 6월 1일로 결정하였다(수의학부의 입학식은 6월 12일에 있었음).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 석사 과정(수의생리학)에 진학하였고, 이어 공군(항공의료원 수의장교) 복무를 마침과 동시에 1961년 3월 진주농과대학(현 경상대학교) 수의학과에서 (허린수가 부임하기 전까지) 수의생리학과 수의생화학 강의를 맡았다.

당시에는 슬라이드가 없었으므로 괘도(차트)가 사용되었는데, 교수가 옆구리에 끼고 들고 온 생화학구조식 차트가 한 장씩 바닥에 떨어져 마지막 장이 나타나야 그날의 강의가 끝났다.

항공의료원 근무 당시 홍석기 교수와의 인연으로 1967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에 1년 동안 파견(연구교수)되었다. 그 결과로 이룬 논문 「가토신피질 절편에서의 유기산 이동에 관한 연구」가 박사 학위(부산대학교 의과대학, 1968. 9. 7.)의 주 논문이 되었다. 당시에는 학위 취득자가 극히 드물어서 이 학위 덕분에 경상남도 문화상 자연과학 부문을 수상하였다(1969). 진주농과대학 재임 중에는 도서관장(제8대)을 역임(1968. 8. 5.~1971. 2. 28.)하기도 하였다.

1971년 3월 1일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로 전근하였는데, 교수가 부족한 대학의 형편에 따라 부임 초기에 의대는 물론이고 치대, 한의대, 약대, 간호학과의 생리학 강의를 맡기도 하였다. 또 당시에는 활판 인쇄의 시대라 활자의 포인트나 교정이 대단히 중요했는데, 이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치밀한 성품의 소유자인 연유로, 비록 대한수의학회 집행부는 아니었지만, 집이 서울인 탓에 《대한수의학회지》의 기본 틀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 《대한수의학회지》에서 그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의과대학에서는 병원 예산으로 지원하는 해외 연수가 다소 있었으나, 외환 사정과 대학의 형편이 좋지 않아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자비 연수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홍석기 교수가 근무하고 있던 뉴욕 주립대학교 버팔로 의과대학(SUNYAB: State University of NewYork at Buffalo)에서 연수받던 중에(방문 교수) “혈청을 첨가하지 않은 배지에서 토끼의 신장 피질세포(근위세뇨관) 초대 배양(primary culture)”을 세계 최초로 이루어냈다. 이러한 그의 버팔로 인연을 통해 수의과대학에서 생리학과 생화학을 전공하는 다수의 교수가 버팔로(의과대학 생리학 및 생화학교실)에서 연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다른 특이한 업적으로, 항공의료원을 비롯한 35년 동안의 학교생활 중 틈틈이 여러 학회지에 발표된 자료와 미발표 자료를 한데 모은 『가축과 실험동물의 생리 자료』(1996, 총 937쪽) 발간을 들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가축과 실험동물의 정상 자료를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사전 역할을 하는 귀감 자료였다.

생리학(특히 신장 생리) 교육과 연구에 35년 동안 헌신한 그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1996년 8월 31일 정년으로 학교를 떠났으며, 여생을 조용히 지내다 2008년 1월 2일 영면하였다. 부인 이은자와 슬하에 1남(형규) 2녀(원경, 수경)를 두었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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