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81] 수의병리학 발전에 기여한 `임창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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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81. 임창형(林昌亨, 1929~2007). 미국 미네소타프로젝트 참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 대한수의학회 회장, 한국실험동물학회 창립 및 초대회장, 농림부장관상, 녹색혁명창조상, 국민훈장 모란상 수상.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아호는 지춘(遲春)이며, 1929년 10월 10일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경성한남공립소학교와 혜화동 동성중학교(5년제)를 거쳐 1953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1956년 5월 31일까지 3년 동안 수의장교로 육군중앙병리연구소에서 근무하였다. 제대 직후인 1956년 6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조교를 시작으로 대우강사를 거쳐 1961년 7월 15일 전임강사에 임용되어 정년퇴임(1995. 2. 28.)까지 34년간 후진 양성과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미네소타 프로젝트(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University of Minnesot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Project)’에 따라 1959년 8월부터 1961년 7월까지 2년 동안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수의병리학을 배우고 발전시켰다.

귀국 후 논문 「Phenyl Mercuric Acetate(PMA) 투여 동물에 있어서 Staphylococcus aureus 정맥 내 주사에 의한 신(腎)의 병리조직학적 변화」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1968), 재직하는 동안 20명의 박사와 46명의 석사를 지도하여 배출하였다. 제자들은 현재 국내뿐 아니라 미국의 수의과대학, 의과대학, 국가 연구 기관 및 기업체 등지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2명의 제자는 미국 수의병리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는데, 이는 동양권에서 전례가 없었다. 제자들에게 학문적으로 아주 엄격하였으나 인성도 중요시하는 참다운 스승이었다.

재직 기간에 무려 100여 편의 학술 논문을 여러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하였으며, 이는 연구 환경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이룩한 업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수업과 부검 및 슬라이드 컨퍼런스에서는 엄격하고 꼼꼼했으나, 학교 밖에서는 와인 이야기, 미술 전시회 소감, 해외여행에서의 일화 등을 들려주어 문하생들이 삶의 폭을 풍성하게 갖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인자하고 넓은 마음 덕분에 주변에 학생들이 넘쳐났으며 주례를 부탁하는 졸업생도 많았다. 필자의 대학원(석사) 시절은 학생운동이 격심한 시기였다. 그는 비록 강의실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긴 했지만 시위하다 연행되는 강의실 밖의 학생들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대한수의학회 학술위원, 평의원, 부회장을 거쳐 회장(1981. 11.~1983. 10.)을 역임하면서 학회 발전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또한, 1985년 5월 한국실험동물학회를 창립하여 8년 동안 회장(초대~4대)을 역임하면서 실험동물의학이라는 분야가 정착하도록 기반을 다졌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실험동물은 수의학뿐 아니라 의학, 치의학, 약학을 비롯한 생명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실험동물학회장을 역임하면서 여러 대학원생들과 함께 국내 실험동물 시설의 마우스와 랫(rat)의 각종 종양성 및 감염성 질병 발생상황을 조사해 발표하였으며 이는 국내 실험동물 연구의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또한, 당시로써는 다소 이례적인 실험동물 관련 국제 학술 대회를 유치하기도 하였다.

농과대학 수의학과 시절 기숙사인 상록사 사감(1968. 2.~1970. 2.), 수의학과장(1974. 5.~1976. 4.)을, 수의과대학 시절에는 수의학과장(1976. 5.~1978. 5.), 교무학장보(1979. 11.~1981. 3.), 학장(1987. 3.~1989. 2.)을 역임하면서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서울대학교 평의원(1993~1994)으로 활동하면서 제20대 총장추천위원회 위원장(1994)으로 봉사하기도 하였다.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그림과 스케치에 대한 애정도 가졌던 그는 한때 회장을 맡기도 한 안양일요화가회 회원으로서 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농과대학 시절에는 Blue Art(그림 동아리)의 지도교수로 오랫동안 봉사하였다. 재직 중 농림부 장관상(1968, 공로상), 녹색혁명창조상(1980), 국민훈장 모란장(1995)을 받은 바 있다.

2007년 3월 13일 아침 식사 후 서재에서 휴식하다가 영면하여 크리스천메모리얼파크에 안장되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1억 원을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재단에 지춘장학금으로 기탁하여 수의병리학 교실의 후학들을 격려하고 있다. 글쓴이_김대용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 한국수의인물사전 인물 보기(클릭)

[한국수의인물사전 81] 수의병리학 발전에 기여한 `임창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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