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라면 할 줄 알아야 할 임상실기 54개 항목 선정

대학 인증평가기준 반영, 국가시험 실기고사 도입 서둘러야

등록 : 2020.11.16 09:47:31   수정 : 2020.11.16 09:47:55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수의과대학에서 학부생이 익혀야 할 임상실기(clinical skill) 54개 항목의 초안이 공개됐다. 임상현장에서 자주 사용되거나, 간과할 경우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실기들이다.

12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 공청회에서 수의교육학회 연구진은 수의 기본임상실기 2020 초안을 발표했다.

전국 수의대 교수진을 중심으로 한 공청회 참가자들은 임상실기 교육 표준화에 공감하면서, 이를 대학인증기준과 국가시험에 반영해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2일 공청회에서 발제에 나선 류판동 서울대 교수(왼쪽)와 이기창 전북대 교수(오른쪽)

현행 수의사 배출, 운전면허 따는데 필기시험만 보는 꼴

이날 발제에 나선 연구책임자 류판동 서울대 교수는 수의학 교육과 배출(국가시험)을 운전면허에 비유했다.

운전면허를 획득하려면 이론(학과시험)은 물론 주행·주차에 필요한 실기를 배우고 평가받는 기능시험·도로주행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반해, 수의학 교육은 기능·도로주행에 해당하는 실기 교육이 표준화되어 있지 못한 데다가 국가시험에서 실기 역량을 평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수의학계의 임상교육 연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강종일 충현동물병원장도 “동물병원에서 수십년간 수의사를 채용해보면 출신 대학에 따라 지식수준과 실기능력이 굉장히 다르다는 점을 느낀다”며 “이들도 졸업 후 세미나 등을 통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한국수의과대학협회,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 한국수의교육학회는 졸업생들이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임상역량을 구체화하고, 이를 10개 수의과대학에 모두 적용할 수 있도록 기반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증원에 지원하는 예산 일부를 연구사업에 배정하고 있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는 성과바탕 수의학교육을 구체화하기 위해 매년 기반연구를 진행해왔다

머리로 하는 ‘진료수행’과 손으로 하는 ‘임상실기’

제대로 못 하면 위험하고 자주 쓰는 임상실기 54개 항목 선정

올해 연구진은 수의대 졸업생에게 요구되는 임상역량을 크게 ‘진료수행’과 ‘임상실기’로 구분하고, 이중 임상실기의 기본항목을 구체적으로 선정했다.

의사 국가시험 실기고사에 적용되고 있는 임상수행(CPX), 임상술기(OSCE)와 같은 방식이다.

진료수행은 보호자에게 병력을 청취하고, 주요 증상에 따른 감별진단 목록을 만들어 최종진단에 이르는 알고리즘에 해당한다. 반면 임상실기는 피를 뽑기 위해 주사바늘을 찌르거나, 마취를 위해 호흡마취기를 연결하는 실제 행위를 뜻한다.

이기창 전북대 교수는 “임상역량을 크게 머리로 하는 ‘진료수행’과 손으로 하는 ‘임상실기’로 구분했다”며 “올해 연구사업은 후자인 임상실기를 구체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연구기획회의 14차례와 의학교육계 전문가 자문, 온라인 설문조사 등을 거쳐 54개 실기항목이 포함된 초안이 마련됐다.

류판동 교수는 “졸업생에게 진료업무를 위임하는데 필요하면서,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활용되며, 간과할 경우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항목으로 추렸다”고 전했다.

진료업무를 크게 ▲병력수집, 검진, 감별진단 우선순위 목록 작성하기 ▲진단계획 수립, 검사 및 결과 해석하기 ▲관리/치료 계획 작성 및 실행하기 ▲ 긴급/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인식, 평가 및 관리에 착수하기 ▲ 일반적인 수술 절차 진행하기(수술 전후 관리 포함) ▲ 전신 마취 하기(모니터링, 관련 조치, 회복 포함)로 분류하고 여기에 필요한 임상실기 54개 항목을 선정했다.  

수의대 학부생이 반드시 배워야 할 기본 임상실기 목록 54개 초안

2027년 실기시험 도입? 그것도 늦다

2020 수의 기본 임상실기 목록이 확정된다면, 10개 수의과대학이 반드시 가르쳐야 할 실기교육의 대상이 구체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연구진은 내년 2월로 예정된 한국수의과대학협회 이사회에서 기본 임상실기 목록을 추인받는다는 계획이다.

류판동 교수는 “앞으로 기본 임상실기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문서화하고, 2019년 주요증상별로 마련된 수의학교육 학습성과에 맞춰 ‘진료수행’의 지침을 만드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과대학과 마찬가지로 수의학 교육에도 진료수행과 임상실기의 지침이 마련된다면,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을 도입하고 대학 인증기준에도 이를 반영할 준비가 끝나는 셈이다.

연구진은 2023년 이후 인증평가에 반영하고, 2027년까지 국가시험을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서강문 한국수의과대학협회장은 “기본 임상실기 항목이 잘 선정됐다”며 “이제는 실제로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2년 단위로 바뀌는 수의과대학 학장 체제에서 (임상교육 개편이) 연속성을 가지려면 대학 인증기준에 집어넣어야 한다”면서 “국가시험 실기고사 도입도 2027년이면 너무 늦다. 2~3년 내에 시도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