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69] 한국인 최초 미국수의사 `이주성 수의사`

등록 : 2020.08.17 14:31:17   수정 : 2020.08.17 21:32:37 데일리벳 관리자

한국수의인물사전 69. 이주성(李柱成, 1934~2013). 전북대 수의대 졸업, 한국인 최초 미국수의사 면허 취득, 맬번동물병원(Malvern Animal Clinic) 개원, 재미한인수의사회 공동부회장

1934년 5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전라북도 옥구 구마모토 농장의 진료소장 일을 맡게 되어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지냈으므로 옥구군 개정(지금은 군산시에 편입됨)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아버지 이영춘은 한국의학원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의학의 선구자』(2007)에 “농촌 의학을 개척한 이영춘”으로 소개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아버지의 일대기를 잠깐 살펴보면,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출생하여 평양고등보통학교 및 동 사범과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중, 세브란스의전에 진학함에 따라 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세브란스의전 병리학 강사를 거쳐 교토대학에서 윤일선 교수의 지도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는 한국인 교수로부터 받은 첫 의학 박사이다. 그는 은사의 소개로, 전라북도 옥구 구마모토 농장의 자혜진료소장으로 부임하여 소작 농민 2만 명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였고 1940년에는 일본인 농장 주인을 설득하여 결식 초등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무료 도시락을 제공하여 우리나라 초등학교 무료 급식의 효시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군산도립병원장을 겸하였고 옥구군 의사회장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차출되어 부산에서 경찰병원 창설에 관여하였고, 1951년 농촌 의료 보건 인력 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개정고등위생기술원양성소(현 군산간호대학교)를, 1954년에 개정보건소를, 1957년에 일심영아원을 설립하였다. 국제로타리클럽 377지구(전라남북도) 총재 등 무수한 사회활동을 하는 동안 외국의 지원도 많이 유치하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이랄까, 이주성은 군산미군비행장에 자주 다니면서 익힌 어학과 교분을 바탕으로 전북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바로(1958. 3. 8.)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수의사 면허를 취득하여 농장 동물 수의사로 활동하였다.

출국하려면 병역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3학년을 마치고 병역 의무를 1년 만에 마쳤다. 그리하여 동기들보다 한 해가 늦은 1958년 3월에 대학을 끝냈다. 재학 중에 미 대사관 시험, 외무부 시험을 통과하고 미국인 재정 보증은 맥(Mac)의 도움을 받았다. 맥은 아이다호주 홈데일(Homedale)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큰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는 군산비행장에 근무한 공군이어서 이주성 집에 여러 차례 놀러 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렉스버그(Rexburg)에 위치한 릭스대학(Rick’s College) 축산학과에 등록하게 되었다. 당시는 외환 사정이 좋지 않았으므로 출국 때에도 까다로웠지만 미국 현지에서도 국내로부터의 1인당 송금 한도액이 3개월에 100달러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대학의 장학금을 받아 출발했지만, 주방에서 일하고 방학에는 타 지역에서 일(건설 노동)하여 생활비를 충당하였다.

다음 해에는 덴버의 콜로라도 수의과대학 기생충학 전공 대학원생으로 등록하여 수의과대학 대학원생, 지역 수의사들과 같이 농장을 다니면서 임상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수업료, 기숙사비를 충당하느라 생활은 늘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대학원 한 학기를 마치고 사우스다코타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여기서 4년 동안 체류하면서 다른 수의사들과도 진료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진료 경험은 수의사 노리스(Norris)의 병원에서 동고동락하면서 한 농장 동물 진료를 통해 얻었다. 노리스는 콜로라도 수의과대학의 당시 학장과 동창생이었고 수의과대학 교수로 제의받을 정도로 유능한 수의사였다.

1964년 당시는 ‘외국 수의대 졸업생 교육 위원회(ECFVG)’ 시험이 실시되기 전이었고 외국 수의과대학 졸업 수의사에게 면허를 허용하는 주가 2개에 불과하였다. 그는 아칸소주 면허에 도전했는데, 한국의 4년제 수의과대학 졸업생이었지만 미국에서 축산학과 1년, 수의과대학 대학원 6개월, 농장 동물 진료 경험 4년이 감안되었다.

1964년 6월 9일과 10일 아칸소주 주도인 리틀록(Little Rock)에서 양일간 주 시험(State Board)을 보았고, 국가시험(National Board)은 인터뷰와 퀴즈여서 불과 수 분 만에 마쳤다. 약 1개월 후 사우스다코타에서 받은 합격 통지서(한국인 최초의 미국 수의사 면허 취득)를 들고 다시 아칸소 주로 돌아와 어디에서 개원할지 고민했다.

그때 어느 수의사가 주민이 1,000명 정도인 맬번(Malvern)에는 돌팔이 수의사는 여럿 있지만, 정규 수의사는 아무도 없다면서 그곳을 추천하기에 마음먹고 장소를 정한 후 은행 지점장을 만나 대부를 받았다. 이때가 1964년 8월이었고, 대동물 50퍼센트, 소동물 50퍼센트의 이른바 혼합형인 맬번동물병원(Malvern Animal Clinic)을 개원하였다. 하루하루 정착해 가던 중 지역 로터리클럽과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아 신분이 상승되면서 지역 유지가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농장주들이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 뭘 알겠나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충분한 농장 동물 진료 경험이 그러한 염려를 일시에 불식시켰다. 임상가로는 드물게 《VM/SAC》(1972년 4월 호)에 “뱀에 물린 개에 투여한 DMSO의 치료 효과”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때때로 수렵(주로 오리)과 낚시로 여가생활을 즐겼다. 1972년 7월 발족한 재미한인수의회 공동부회장(회장 조병률) 및 2대 회장단(회장 김상남)의 공동부회장을 역임하였다.

노년에는 동물병원 일을 조금씩 줄여가다가 2013년 12월 13일 79세를 일기로 맬번 자택에서 영면하였다. 49년 동안 맬번에서 농장 동물의 건강을 위해 생을 바쳤다. 글쓴이_양일석, 백영기, 문재룡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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