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58] 대한수의사회장 4번 역임한 `이남신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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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58. 이남신(李南信, 1914~2001). 가축위생연구소 기수, 수원농림전문학교 교수, 가축위생연구소 소장, 축산국장, 대한수의사회 제3~5대 및 14대 회장, 영동축산개발㈜ 부사장, 한국축산진흥회 대표이사, 우신흥업개발㈜ 대표이사.

1914년 8월 25일 전라북도 김제군 성덕면 대목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제소학교를 졸업(1931. 3. 20.)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료요[兩洋]중학교(1936. 3. 6.)와 아자부[麻布]수의전문학교(1939. 3. 20.)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부산 가축위생연구소 기수(1939. 3. 31.)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만주국 수역 연구소(봉천 소재) 부연구관으로 근무(1941. 6. 3.)하였고 해방 직전인 1945년 3월 31일에 고향으로 돌아와 순창농림학교를 거쳐 해방 후 이리공립농림학교 교유(敎諭, 현재의 정교사)로 활동하였다.

해방이 된 후 수원농림전문학교 교수로 임명(1945. 12. 30.)되었으나 미 군정청 보건후생부(미 군정 때는 연구소가 농림부 소속이 아니었음) 연구국장이던 미군 중령이 어느 날(1946. 3. 15.) 지프차를 타고 대학의 연구실로 찾아와 자신을 차에 태워 안양 가축위생연구소로 데려갔다. 그곳에 도착한 후 모든 직원을 모아놓고 ‘오늘부터 이분이 이 연구소의 소장’이라고 소개하였다는데, 아무튼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은 황당한(?) 인사로 보인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부산 가축위생연구소(본소) 김종희 소장의 양해 아래 봉천수역연구소에서 같이 근무하여 친분이 두터운 문재봉을 안양 가축위생연구소(지소) 돈역과장으로 발령한 것이다.

한편, 이 무렵(1946. 3. 6.) 우리 측의 요청으로 해방 후에도 기술고문으로 부산 연구소에 남아 있던 오치 유이치[越智勇一], 나카무라 준지[中村稕治] 등이 일본으로 돌아가자 김종희 소장 자신을 제외한 직원 대부분의 나이가 스물대여섯부터 서른 미만이었다. 그들의 출신 학교는 농업학교 또는 전문학교여서 김종희 소장 자신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에, 직원(연구원)들과 좀처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하였으며, 세균과, 병독과, 화학과, 서무과의 직제가 있었지만 간부(부소장, 서무과장)는 외부로부터 초빙하여 연구원들의 불만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종희 소장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이남신은 부산 가축위생연구소(본소) 소장을 겸(1947. 2. 28.)하게 되었다.

*김종희 소장 사건 : 김종희 소장이 1946년 말 월북한 사건. 이후 김종희 소장은 북한에서 김일성대학 수의학연구소장을 역임하고, 김일성상을 수상하는 등 북한의 수의축산방역을 위해 노력했다(편집자 주).

한국수의인물사전 23. 북한의 방역을 위해 힘쓴 ‘김종희 수의사'(클릭)

약 10년(1946. 10.~1956. 4.) 동안 본소 소장을 맡으면서 “김종희 소장 사건” 뒷수습을 했고 한국전쟁 전란기에는 행정력을 발휘하고 인력을 보강해 난관을 수습하였다.

해방 후의 이념적 혼란, 체계화되지 못한 인사,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소행으로 보이는 수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연구소 시설은 물론이고 소장 숙소까지)로 혼란한 와중에 한국전쟁이 발생했지만, 특히 직원 전체 회의를 거쳐 관사는 한 가족당 방 하나를 사용하는 등 연구소 시설을 최대한 할애하여 피란 가족들을 돕게 하였다.

이러한 시책의 일환으로 김성수 부통령 가족, 국회의원(송방용, 윤택술, 김택술 등) 가족들도 같은 경내 생활을 하였다.

전시 연합 대학인 서울대학교 수의학부도 이런 계획의 일환이었다. 한편 1953년 6월에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강사로 강의를 맡기도 하였고 1960년 3월에는 도쿄대학에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 가축위생연구소 소장에서 제4대 축산국장(1955. 12. 8.~1961. 3. 16.)으로 임명돼 축산 행정 책임자로 일했다.

1961년 공직을 퇴임한 후에는 대한수의사회 제3, 4, 5대 회장(1961~1966)과 제14대 회장(1985~1986)을 역임하고 아울러 수의축산 관련 공공기관에서 중역으로 활동하였는데, 화신산업㈜ 고문, 영동축산개발㈜ 부사장, 한국축산진흥회 대표이사, 우신흥업개발㈜ 대표이사, 한국마사회 상임감사, 한국축산연합회 감사 등으로 활동하여 우리나라 축산 발전은 물론이고 수의사의 지위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88년 9월 부득이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자녀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노인 아파트에 입주하여 노후 생활을 했는데, 로스앤젤레스 샌피드로 해양박물관(수족관)에서 수질 검사원(자원봉사)으로 일하는 등 뜻있는 삶을 살다가 2001년 8월 향년 87세에 타계하였다. 글쓴이_김용희, 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 한국수의인물사전 인물 보기(클릭)

[한국수의인물사전 58] 대한수의사회장 4번 역임한 `이남신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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