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48] 단신으로 월남해 수의사회장까지 `원봉래 수의사`

등록 : 2020.03.06 10:31:09   수정 : 2020.03.16 12:12:57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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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48. 원봉래(元鳳來, 1924~2001). 이북학생장학양돈장 운영, 진주농과대학 수의학과장·초대 부속가축병원장, 수의사 국가시험 출제위원, 경상남도수의사회장.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호는 운곡(芸谷)이며, 1924년 11월 28일(음력 9월 11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함흥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함흥농업학교(5년제)를 거쳐 1946년 9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문부 수의축산학과에 입학했다. 이 무렵은 해방 직후여서 다들 어려운 처지였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가늠하기 위하여 46학번 윤익석의 회고록 일부를 옮겨본다.

“단신으로 월남한 필자는 재학 중 고학으로 학비 조달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동시에 해야 하는 고달픈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대학 목장 양돈 시설의 일부 사용 승낙과 김학배 사장의 운영비 부담으로 황칠성, 모기철, 원봉래, 필자 등 7명이 모여 ‘38이북학생장학양돈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학비 조달과 학업에 전력을 다했다. 그 양돈장은 대동제지공장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원봉래, 모기철, 필자 등 3명만 남아 자취 생활을 하며 운영하다 각자의 길을 찾아감으로써 장학양돈장을 그만두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1949년 7월 15일 우리나라 수의축산 분야의 최고 교육 과정을 졸업하였다.

국립중앙가축위생연구소 기사로 농림부 계역과에서 근무하였으며(1949. 7. 20.~1951. 12. 23.), 진주남중학교와 진주농림고등학교 교사(1951. 12. 31.~1952. 3. 30.), 진주농과대학 강사(1951. 12. 31.~1954. 5. 31.), 진주농림고등학교 교사(1953. 3. 31.~1954. 5. 30.)로 재직하였다.

1954년 5월 31일 진주농과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승진하면서 수의해부학 강의와 연구를 하였다. 재직 중 진주농과대학 부설중등교원양성소 강사, 진주농과대학 수의학과장, 진주농과대학 초대 부속가축병원장, 진주농과대학 학생과장, 진주농과대학 축산진흥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본 나고야[名古屋] 대학에서 수의해부학을 연수하였다(1966. 2. 1.~1967. 8. 30.).

1969년 9월 15일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동물 자궁 점막 상피의 탈락 및 재생에 관한 전자현미경적 연구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7회(1963. 3. 5.), 제8회(1964. 2. 11.) 수의사 국가시험 출제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69년 12월 23일 경상남도 문화상 자연과학 본상을 수상하였다.

1975~1976년에 경상남도수의사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7년 4월 6일 경상대학에서 경북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전보되어 1982년 2월 28일 임용 기간 만기로 퇴임하였으며, 2001년 1월 20일 대구에서 영면하였다. 글쓴이_김종섭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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