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모인 동물원·수족관 수의사들..전시동물 건강 위한 네트워크 강화

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 2025 하반기 학술세미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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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KAZAV, 회장 김규태)가 11월 24일(월) 오송 청주오스코에서 ‘Bridging Zoo & Aquarium for Health’를 주제로 2025년 하반기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는 동물원·수족관 동물의 진료 발전과 회원 교류를 도모하고, 건강한 생태계 및 공중보건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해 창립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동물원의 병리검사·기생충 관리에 대한 특강과 함께 일선 회원 수의사들의 증례 발표가 진행됐다. 초식동물에 대한 발굽관리부터 트리포큐파인, 펭귄, 뱀, 킹카쥬 등 다양한 동물의 증례가 눈길을 끌었다.

전국 각지의 동물원과 국립생태원·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등 관련 기관, 동물원 촉탁수의사로 활동하는 일선 동물병원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이승근 충북수의사회장도 자리해 축하를 전했다.

김규태 회장은 “동물원·수족관 수의사들은 시설 내 동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을 넘어 사회에도 기여하고 있다”면서 “야생동물이 매개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협 속에서 동물원과 수족관은 이들 질병 연구의 최전선이자 거점”이라고 말했다.

세미나를 후원한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의 이창규 원장은 “전시동물의 건강 관리는 물론 국민에게 야생동물 보호와 생명존중의 가치를 교육하는 것도 동물원·수족관의 역할”이라며 “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전시동물 질병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도선희, 최성준 교수

세미나의 문을 연 도선희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전시동물의 병리 검사 시 조직 채취 및 보관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요 장기별로 정밀검사를 진행하기 위한 검체 채취·보관 요령을 상세히 소개해 일선 수의사들의 이해를 도왔다. 아울러 인수공통감염에 유의해야 하는 결핵, 마이코박테리움 마리눔(Mycobacterium marinum) 등 주요 감염병을 중심으로 증례를 소개했다.

도 교수는 “동물원·수족관에서 정상 및 병리 조직의 적극적인 아카이브 구축을 지향하며, 쌓인 데이터가 향후 치료와 보전에 도움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성준 충북대 의대 교수는 동물원이라는 특수한 사육 환경이 기생충의 위험과 관리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했다.

야생과 달리 사육 상태에서는 동물이 이동이나 모래목욕을 통해 기생충을 피하는 ‘물리적 회피 기전’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제한된 공간에 동종 개체가 밀집되면서 숙주 종이 일원화되고, 이로 인해 감염원이 분산되지 않는 ‘희석 효과(Dilution Effect)의 소실’이 발생해 질병 감수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그는 ‘도입 단계의 철저한 방어’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일단 기생충이 사육 환경 내로 유입되면 완전한 방제가 어렵고 재감염이 빈번하기 때문에, 도입 시 초기 모집단 선별과 엄격한 검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사육 중인 개체에 대해서는 기생충의 생활사를 고려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종숙주 자손이 다시 종숙주를 감염시키는 직접생활사의 고리를 끊기 위해 바닥재를 포함한 방역 및 매개체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구충제 사용 시에는 성충에게만 효과가 있고 환경 내 유충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분류군에 따른 적절한 약제 선택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현행 법령상 기생충성 질병 관리 항목의 불분명한 부분을 지적하며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도 함께 덧붙였다.

이후 세션은 현장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임상 증례들로 채워졌다. 발표자들은 각 기관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감 없이 공유했다.

초식동물 발굽 관리

에버랜드 주랜드메디컬센터 윤승희 원장은 초식동물의 일관성 있는 트리밍(Trimming)을 위한 매뉴얼 제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동물원 내 노령 개체가 늘고 활동성이 저하되면서 발굽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발굽 건강을 위한 해부학적 지표와 핵심 관리대상들을 소개했다. 약물과 레이저 물리치료 등을 활용한 통증관리, 발굽 둔감화 메디컬 트레이닝과 저전분·저당·고섬유질 식이 급여를 추천하기도 했다.

트리포큐파인 위석 및 치료

어린이대공원 박한얼 수의사는 트리포큐파인의 거대 위석(Bezoar) 원인을 규명한 증례를 소개했다. 해당 위석의 성분은 분광검사 결과 일반적인 털이나 식물 섬유가 아닌 ‘글리신 포합 담즙산(Glycine-conjugated bile acid)’으로 밝혀졌다. 십이지장 내용물이 역류하면서 담즙이 침전되어 형성된 것으로 진단됐다.

박 수의사는 치료 및 예방을 위해 기존 사료를 ‘Leaf-eater 펠렛’으로 전면 교체하고, 담즙산의 길항작용을 돕는 타우린(Taurine)과 소화 효소가 풍부한 파파야를 급여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뱀 정관 수술

광주우치공원 강주원 수의사는 국내 동물원 최초 공식적으로 성공한 뱀 수컷 정관 수술(Vasectomy) 증례를 발표했다. 일반적인 중성화와 달리 호르몬과 행동학적 변화가 없는 가역적 수술로, 사육 밀도 조절과 동물 복지 차원에서 필요성이 제기된다.

뱀의 수술에서는 마취 관리가 관건이다. 뱀은 우측 폐가 발달해 있고 심실 중격이 불완전해, 호흡 저하 시 저산소증(Hypoxemia)이 폐동맥 수축과 R/L 단락(Shunt)을 유발할 수 있어 양압 환기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강 수의사는 “가을과 초겨울에는 고환이 커지고 혈관이 발달해 출혈 위험이 높으므로 주의해야 하며, 복측 2~3번째 비늘 사이로 접근해 정관을 확실히 분리하는 방식을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킹카쥬 장중첩과 lymphoma & 오랑우탄 microbiome

서울대공원 이하늬 수의사는 어린 킹카쥬의 장중첩 증례를 공유했다. 부검에서 장 내강을 침범한 매스(Mass)가 확인됐고, 조직검사상 악성 B세포 림프종으로 진단됐다. 이 수의사는 “응급 수술 시에도 위장관과 타 장기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며, 어린 야생동물이라도 종양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시사했다.

또한 만성 소화기 장애를 앓던 오랑우탄에게 반려동물용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적용한 시도도 눈길을 끌었다. 분석 결과 유익균 부족과 다양성 결핍이 확인됐고, 맞춤형 유산균을 처방하자 증상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현재 분변 이식술(FMT) 적용도 고려하고 있다.

펭귄 환모부전

강원대학교 박지형 수의사는 국내에서 종종 발생하는 남반구 종 펭귄(훔볼트·아프리카 펭귄)의 환모(털갈이) 부전 해결을 위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갑상선 호르몬 제제인 레보티록신(Levothyroxine)을 투여해 인위적으로 호르몬 피크를 유도하자, 실험 개체 모두 2~12주 이내에 환모에 성공했다.

박 수의사는 약물의 효과를 확인하면서도 “약물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광주기, 온습도 등 원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적 개선이 선행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 김규태 회장

이날 발표된 임상 증례들은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동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수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시사했다.

김규태 회장은 “동물원·수족관 수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치열한 고민과 결과를 공유할 수 있어 뜻깊다”며 “앞으로도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 학술적 깊이를 더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벳과 버박코리아도 이날 행사를 후원했다.

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는 상·하반기 학술행사와 함께 봉사, 협진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년에도 회원 간 학술 교류와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

전국에서 모인 동물원·수족관 수의사들..전시동물 건강 위한 네트워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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