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SG는 사육곰에 닿을 수 있을까? : 박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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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는 사육곰에 닿을 수 있을까?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환경관리 석사과정 박현지

바야흐로 ESG가 대세다. 2003년 유엔환경계획 금융부문(UNEP FI)에 처음 등장했던 ESG는 선진국 대형 연기금 운용사의 자금운용 전략으로, 세계적 자산운용사로, 그리고 전 세계 기업들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2030년까지 모든 코스피 상장사의 ESG 보고서 공시가 의무화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기업들의 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 경영 기사를 연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29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생산성본부가 공동으로 국내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ESG 확산·정착을 위한 기업 설문조사」 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0%가 ESG에 대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기업들의 60%는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 중 가장 중요한 분야로 E(환경)를 꼽았다. 이처럼 E(환경) 경영이 중요해 짐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사내 ESG 위원회를 설치하고,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에너지 부문의 배출 감소를 통한 환경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환경부문의 주요 의제인 기후변화는 해수면 상승, 극한기상현상 등을 일으키며 자연계와 인간계에 영향을 미치며 리스크를 증폭시키는데, 특히 생물다양성(Biodiversity) 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기후변화 경제학에 관한 스턴 연구보고서(2006)」는 지구 기온 2℃ 상승 시 14~40%의 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2019년 5월, UN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기구(IPBES)는 파리에서 열린 제7차 총회에서 「전 지구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 평가에 대한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를 통해 현재 1백만 종 이상의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해 6월,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기구(IPBES)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공동으로 발표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강력한 적응 및 혁신·보존의 노력과 이전에 시도된 적 없는 강력한 적응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다양성 감소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생물다양성 보전 즉, 멸종위기생물에 대한 보호와 보전이 강조되고 있다.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국제사회 ESG에서 대두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 「글로벌 위험 보고서」를 통해 향후 10년간 인류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로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를 꼽았다.

유엔환경계획 금융부문의 주도로 2020년 출범한 자연자본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NFD)는 2023년까지 생물다양성 리스크 극복을 위한 보고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대한상의와 주한유럽상의가 공동주최한 「ESG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는 자본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공시가 G7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며, 따라서 기업들은 생물다양성(Biodiversity) 공시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ESG 분야에서 소홀히 여겨져 왔던 생물다양성 보전이 기후변화 이후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내에는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한 생물다양성 이슈들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제적멸종위기 반달가슴곰에 대한 웅담채취용 사육 및 도살」 문제이다. 국내에는 369마리(2021.9. 기준)의 반달가슴곰(이하 사육곰)이 낡고 비좁은 개인 사육장에서 사육되고 있는데, 이 곰들은 1981~1985년 사이 국내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재수출 목적으로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수입되었던 반달가슴곰의 후손들이다. 사육곰은 대부분 반달가슴곰으로 CITES 협약(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의해 최고 수준의 보호를 받는 멸종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년이 되면 웅담채취를 위해 합법적으로 도살당한다. 정부는 1980년대 초,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곰사육을 장려했으나 1993년, CITES협약에 가입하면서 이 곰들의 상업목적의 재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곰의 상업적 개인사육과 웅담채취용 도살은 현재까지도 이뤄지고 있다. CITES협약에 따른 보호종은 국내법상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경부 장관의 고시로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사육곰에 대해서만은 예외적 지침을 두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나라의 사육곰 제도에 대한 국내·외 비난은 거세게 이어져 왔다. 녹색연합을 비롯해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육곰 폐지 주장, 일부 곰의 구출과 보호를 통해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정부는 2014년 사육곰에 대한 중성화수술을 실시하고 웅담채취용 곰에 대한 증식을 금지했다. 최근에는 생추어리(sanctuary) 조성계획을 마련하며 사육곰 제도의 종식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육곰에 대한 보호 대책은 소수의 개체에 한정되어 있고, 아직 모든 개체에 대한 보호와 사육곰 제도의 완전한 종식을 위한 정책은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사이 농가에서는 곰의 불법증식과 곰 고기, 기름 등 부산물의 불법적 이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생물다양성 부문이 정부 환경정책에서 조차 후순위에 머물러 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이 문제의 해결이 힘겨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기업들의 ESG가 사육곰과 같이 오랜 시간 소외된 생물다양성 문제에 닿을 수 있다면 어떨까? 정부는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해결에 조금 더 빨리 다가갈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웅담소비국이라는 오명을 벗음과 동시에 CITES 협약국으로서 협약의 기본취지를 준수함으로써 국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은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이후 대두되는 중요한 의제인 생물다양성 보전을 통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고, 글로벌 E(환경) 경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육곰으로 하여금 반복되는 끔찍한 고통을 중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소중한 생명들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지켜내며, 나아가 지구 생물다양성 증진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내에는 사육곰 문제 외에도 야생조류충돌, 로드킬, 생태계교란, 멸종위기종 증가 등 다양한 생물다양성 문제가 존재한다. ESG가 뜬장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평생을 보내다 웅담채취를 위해 도살당하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사육곰에게, 그리고 인간으로 인해 그 생명과 존재가 소멸되어가는 멸종위기에 처한 소중한 생명들에 닿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기고] ESG는 사육곰에 닿을 수 있을까? : 박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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