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게 효용성과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밀지 말기를

[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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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생명에게 효용성과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밀지 말기를 바란다 : 현소진 변호사(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SNS를 보다 보면 ‘안락사 확정’이라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말과 함께 안락사를 막기 위한 임보와 입양을 부탁하는 간절한 내용의 글이 보인다. 가끔이 아니라 그것도 아주 자주. 안락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짙은 그늘에 더욱 대비되어 작은 철장에서 여전히 안아달라고 해맑게 손을 내미는 유기견들을 보고 있으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반려견과 반려묘를 들인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움직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있지만, 유기하는 비율도 늘어났다(2019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 보도자료,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 참조).

시골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계속되는 번식에 비하여 등록이 되지 않아 개체 수 확인도 힘들 뿐만 아니라 무방비로 유기되고 학대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람들은 24시간 중 잠시의 외로움을 채우고 잠깐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너무나도 쉽게 반려동물을 들인다. 반려동물을 입양했다고 하여 끝이 아니다. 반려동물을 대할 때 책임감보다는 본인의 삶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 되어 버리면 그 순간부터 반려동물은 생명이 아닌 한 사람의 효용을 위한 부품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점점 늘어나는 반려동물의 유기와 비교할 때 유기동물을 관리하는 보호센터는 전국에 280개로 현저히 적은 수이며, 시설 자체도 너무 열악하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유기동물을 발견하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동물보호센터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고(법 제16조 제1항 제2호), 시ㆍ도지사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유기동물을 치료 및 보호하며(법 제14조), 주인이 보호 조치 사실을 알 수 있도록 7일 이상을 공고(법 제17조)한다. 만약 공고일로부터 10일 이상 소유자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동물의 소유권은 공고를 한 해당 지자체로 이전이 되는데(법 제20조 제1호), 이마저도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판단되거나 자체적으로 마련한 ‘보호소 운영 원칙’에 따라 대부분 30일 입소를 넘기지 못하고 안락사되는 경우가 많다. 사설 동물보호시설은 통계상 집계가 더욱 되지 않고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훨씬 더 많은 수의 유기동물이 30일이라는 최소한의 기간도 없이 안락사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보호소가 지자체 운영인지 사설 운영인지를 막론하고 유기동물에 대한 보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9년 동물보호단체 ‘케어’에서 비밀리에 보호소 동물 상당수를 안락사하여 논란이 있었고, 고성군 보호소는 관리하는 동물의 약 80%를 안락사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법상 최소한의 보호 조치로써 필수로 보호시설 내에 격리실, 진료실 등을 두도록 하였지만 이러한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는 곳이 대다수다. 심지어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농림축산식품부고시 제2016-18호)에 따라 동물의 안락사는 반드시 마취를 한 뒤 심장정지·호흡 마비를 유발하는 약제를 사용해야 하며, 다른 동물이 볼 수 없는 별도의 장소에서 신속하게 수의사가 시행하여야 하는데(고시 제21조 제1항, 제22조 제3항), 고성군 보호소는 다른 유기견들이 보는 앞에서 안락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늘어나는 유기동물 개체 수에 비하여 관리 인력과 비용이 부족한 열악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관리하는지 여부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센터에서는 평당 더 많은 유기견을 욱여넣고, 빠르게 안락사를 결정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한정하여 인도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 안락사임에도 물건을 쉽고 빠르게 처리해버리는 것과 같이 무자비하게 생명을 흘려보낸다. 앞선 고성군 보호소는 80%의 높은 안락사 비율에 비하여 입양률은 전국 최하위 수준인 6.6%에 불과하다.

본인의 잠깐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쉽게 반려동물을 들이는 사람들, 나에게 주는 효용보다 귀찮음이 더 커지거나 소모되는 비용이 많으면 쉽게 유기하는 사람들, 동물 보호 조치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현재의 관련 규정들, 이 최소한도 지키고 있지 않고 효율적으로 생명을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배치하고 쳐내는 시설들.. 이 모든 것이 단단하게 결속되어 반려동물에 대한 이 사회의 답답한 현주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2월 12일 자로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된다. 기존 동물보호법의 처벌 기준을 강화한 게 주요 골자이나 이 역시 학대받고 고통받는 반려동물의 환경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 이상 반려동물에게 효용과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지 말기를 바란다. 생명은 그렇게 환산되어 비교될 수도 없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야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응시하여 법 개정도 현재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보호시설의 환경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케어 단체의 안락사 사태로 후원금이 끊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기동물과 양심적인 타 보호소가 입었듯, 생명을 쉽게 생각하는 모든 이들의 폐해가 누적되어 힘들게 운영을 이어나가는 보호소와 주인을 기다리다가 고통 속에서 사라지는 반려동물에게 가지 않도록 반려동물은 생명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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