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아프면 알아요

[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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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말하지 않아도 아프면 알아요 : 최용범(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3년 전. 전기 쇠꼬챙이를 입에 물려 개를 도살하는 행위가 동물보호법에 위반치 않는다고 판단한 하급심 법원의 판결로 꽤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동물보호법은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8조 제1항 제1호)를 금지하고 동물에게 ‘도살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제10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이 규정들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판결 소식을 전해 듣고 큰 감흥이 없었다. 동물 관련 판례가 워낙 희귀했는데, 읽어 볼 하급심 판례가 하나 늘었네 정도랄까. 이후 판결문을 접하게 되어 전문을 읽게 되었는데, 다음 문구가 특히 흥미로웠다.

‘그 동물이 관련 법령에서 정한 방법과 절차에 의한 도살에 비하여 훨씬 더 큰 고통 등을 느낄 것이 명백하여 그것이 목을 매달아 죽이는 경우에 겪는 고통 등의 정도에 이른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잔인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동물이 죽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전기 쇠꼬챙이를 입에 물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이런 내가 열심히 노력한들, 개가 전기쇠꼬챙이를 입으로 물었을 때의 고통과, 관련 법령에 따른 도살에 따른 고통을 알 자신은 없다. 하물며 이 둘을 비교해서 뒤엣것이 훨씬 더 크고 명백함을 법정에서 입증할 능력은 언감생심이다. 판결문을 책상에 내려놓고, ‘판사님이 많이 냉정하시네’라고 생각했다. 피해 개가 측은했지만, 그 마음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쭉 흘러갔다.

그사이 나는 아빠가 됐고, 돌이 채 안 된 아들이 유독 잠을 안 자는 어느 밤이었다. 아들과 재우기, 깨기를 핑퐁핑퐁 하다가 결국 인내의 끈을 놓아버린 난 “이럴 거면 그냥 자지 마!”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코트 뒤로 날아간 탁구공처럼 더욱 가열차게 울었다. 그날 아침 아들은 A형 독감 확진 ‘판결’을 받았고, 냉정한 아빠에서 대역죄인이 돼버린 나는 “아프면 말을 할 것이지…” 변명만 웅얼거렸다.

자신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또 사람은 나와 무관한 고통에는 쉽게 무감해진다. 조금만 아파도 바로 상기되는 이 사실을, 평소엔 손쉽게 잊고 산다. 아들이 문자 그대로 코 아래에서 아파해도 아빠는 아둔하게 화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이름 모를 개의 고통을 헤아리는 일은 어지간한 감수성을 갖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법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해석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에겐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종류의 인간은 아닌데, 그나마 있는 감수성도 자야 할 시간에는 고산지대의 산소처럼 희박해진다. 그래서 나는 차선책으로 ‘우는 아이는 다 이유가 있다’고 이성적으로 가정하고, 성급한 일반화(“그냥 자지 마!”)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월령이 늘며 잔뜩 꾀가 생긴 아들에게 속아 분통이 터질 때도 있지만, 정말로 많은 경우 울음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대역죄를 두 번 저지르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가 있다.

동물의 고통도 비슷하게 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헤아림과는 별개로, 동물의 고통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이때에도 “너의 고통을 명백하고 소상히 알리렸다”며 추국청을 여는 것이 동물보호법의 취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아프니? 어디 한번 볼까”하며 수의사 선생님처럼 다정하게 진찰을 해주는 것은 아니어도, 동물이 신음을 내고 몸부림을 치면 “많이 아팠구나” 깨끗하게 인정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인간에게, 자신이 가한 고통이 ‘불필요하지 않았음’을 해명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생각은 너무 평범해서 여기에 입증책임의 올바른 분배라는 거창한 전문용어를 붙이는 것도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아프면 아픈 거지, 말을 못 하는 동물한테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판결문 속에서 법이 느껴지는 온도는 냉정과 열정 두 가지만 있지 않다. 두 극단 사이에, 합리적이면서 감수성도 있는 다정한 선택지들이 분명 있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지 판단하는 일은 물론 어렵고 고통스럽겠지만, 이 정도는 사람이 짊어지자. 법은 지금보다 동물에게 더 다정할 수 있다. 지금 말한 동물에는 인간도 물론 포함된다.

참고 : 2018년 대법원은 칼럼에 언급된 하급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죄 판결을 파기(취소)했다. 이후 다시 열린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었고, 2020년 확정되었다. 피해 개들이 도살당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유죄까지 약 9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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