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보린릴렉스 치사량 먹은 국내 반려견, 혈액관류로 살렸다
시그니처동물의료센터·건국대 수의대 교수팀, 이부프로펜 중독 초소형견 치료 증례 보고
보호자의 약을 먹어 심각한 이부프로펜 중독에 걸린 2.15kg 반려견을 국내 의료진이 혈액관류를 통해 살려냈다.
일반적인 혈액투석 방식으로 살리기 어려웠던 초소형견을 ‘소형견·고양이용 혈액관류 장치’로 치료해 관심을 받고 있다. 해당 케이스는 최근 국제학술지에 게재됐다.
6개월령 소형 토이푸들, 보호자용 게보린릴렉스 섭취
추정 이부프로펜 섭취량 558mg/kg…독성 역치 초과
체외순환 회로 용적 작은 초소형견, 혈역학적 불안정으로 치료 어렵지만 전용 장비로 치료 성공
이번 케이스는 시그니처동물의료센터(구 스마트동물병원 신사본원) 안운찬 원장(혈액투석 신장비뇨기센터) 연구팀과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남아령 교수팀이 함께 보고했다. 논문은 일본수의학회(JSVS, Japanese Society of Veterinary Science)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VMS(The Journal of Veterinary Medical Science)에 올해 초 게재됐다(Successful treatment of ibuprofen intoxication using hemoperfusion with porous polymeric adsorbents in a toy poodle).
생후 6개월 된 암컷 토이 푸들(체중 2.15kg)이 게보린릴렉스 연질캡슐을 섭취한 뒤 급성 구토와 무기력증으로 시그니처동물의료센터에 내원했다. 해당 반려견은 보호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게보린릴렉스를 먹었다. 보호자에 따르면, 캡슐 3개가 사라졌고, 개의 입술 주변에서 빈 캡슐 하나가 발견됐다고 한다.
게보린릴렉스연질캡슐 한 알에는 이부프로펜 400mg과 산화마그네슘 80mg이 들어있다. 따라서, 반려견이 섭취했을 이부프로펜은 최대 1,200mg에 달했다. 내원 2~8시간 전에 섭취했을 것으로 보였으며, 소량의 구토가 있었지만, 온전한 캡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흡수된 이부프로펜 양을 약 558mg/kg으로 추정됐다.
사람의 대표적인 진통소염제(NSAIDs)인 이부프로펜(Ibuprofen)은 반려동물에게 좁은 안전마진을 가지고 있어서 과다 섭취 시 중독증상을 일으킨다. 25mg/kg 이상 섭취 시 구토, 복통, 토혈, 설사 등 위장관장애를 유발하고, 175mg/kg 이상 섭취 시 급성신장질환, 다음다뇨, 핍뇨 등이 발생한다. 400mg/kg 이상 섭취하면 경련, 혼수 등 신경증상까지 유발할 수 있다.
연구진은 “체중 2.15kg의 6개월령 토이푸들이 무려 558mg/kg에 달하는 치사량 수준의 이부프로펜을 섭취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소형동물 전용으로 고안된 Priming volume 17ml의 소형 다공성 고분자 흡착 카트리지(VetResQ®)를 통해 환자를 치료했다.
이 장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부프로펜은 약동학적으로 지용성을 띠고, 혈장 단백질 결합률(Plasma protein binding)이 99%에 달하며, 분포 용적이 비교적 작다는 특성이 있다”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반투과성 막을 이용해 수용성 소분자를 걸러내는 일반적인 혈액투석(Hemodialysis) 방식으로는 약물 제거 효율이 극히 낮다”고 전했다. 이부프로펜 중독 환자는 단백질 결합 여부와 무관하게 혈액 내 독소를 직접 흡착해 제거하는 ‘혈액관류 요법’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2kg대 초소형견 및 고양이의 경우, 투석 장비의 체외 순환 회로 용적이 환자의 총혈액량을 크게 초과하게 되어 치료 중 심각한 혈역학적 불안정(저혈압, 쇼크 등)에 빠질 위험이 매우 커서 과거에는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치료법”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초기 저혈량증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와 혈액형이 일치하는 89mL의 전혈로 체외 순환 회로를 미리 채우는(Blood priming)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단 2시간 만에 환자의 혈중 이부프로펜 농도가 66.8% 급감했다(61.9mg/L→20.5mg/L).
환자는 단 1회의 혈액관류로 회복했다. 입원 2일 차에 구토와 무기력증이 사라졌고, 다른 합병증 없이 완전히 개선되어 3일 만에 퇴원했다. 1주일 뒤 재검사에서도 신장 수치를 포함한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다.

최근 IRIS가 혈액관류(Hemoperfusion) 컨센서스 가이드라인(Hemoperfusion for veterinary toxicities: International renal interest society best practices consensus guidelines)을 발표하면서, 수의계에서도 혈액관류에 대한 표준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만큼 혈액관류는 이제 실제 동물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체외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논문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국내 초소형견도 최신 혈액관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논문의 제1저자인 안운찬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2~3kg대의 초소형견, 고양이 환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체외 순환 치료 적용에 따른 혈역학적 부담감으로 인해 선뜻 치료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철저한 회로 구성과 정밀한 혈액 프라이밍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초소형 환자에게도 혈액관류가 매우 훌륭한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음을 이번 논문을 통해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혈액관류 기법은 약물 중독뿐만 아니라, 향후 패혈증이나 전신성염증반응증후군(SIRS) 환자에서 치명적인 ‘사이토카인’을 제거하는 데에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어 중증환자 치료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