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기반의학]1편: 반려동물 양육이 치매 위험을 40% 낮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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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발표된 한 역학 연구가 역학자들 사이에 관심을 끌었다 [1]. 해당 연구에 따르면 개를 기르는 고령자는 개를 기르지 않는 고령자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즈비, Odds ratio: 0.60).

언론 기사에는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40% 위험 감소’ 같은 숫자가 자주 등장하지만, 이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보호자도, 임상수의사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여기서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증거기반의학에 관한 기고문인데 왜 갑자기 역학 연구 이야기가 나오지?”

역학은 전염병의 확산 경로나 감염병 통제를 연구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증거기반의학과 역학은 깊게 연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역학이라고 하면 감염병이 전파되고 그걸 통제하는 감염병 연구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것은 역학의 한 분야일 뿐이다. 증거기반의학과 역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반려동물 양육과 치매 위험 연구를 통해 알아보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함께 정리해볼 예정이니, 끝까지 함께 읽어주면 좋겠다.

다시 연구로 돌아가보자. 우리조차 스스로 질문할 수 있다 “강아지 키우면 치매 예방이 될까?”. 증거기반의학적 사고를 한다면 이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된다/안 된다”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이 연구 결과가 믿을 만한가?” 까지 고민해야 한다. 증거기반의학은 특정 진료 기술이 아니라, 임상적 결정에 도움이 되기 위한 접근법이다. 증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은 “현재 이용 가능한 최선의 근거(best available evidence)를 임상 경험과 환자(보호자)의 가치관과 함께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고법“으로 정의된다. 이는 단순히 논문 결과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설계와 한계를 평가하고, 효과 크기를 해석하며, 그 근거가 나의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지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이다 [2]. 이번 시리즈에서는 일본 연구를 예로 들어, 논문 속 숫자들이 진짜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논문 결과를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즉, 효과의 크기와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이해하는 증거기반의학적 사고의 기초를 다룬다.

이 시리즈는 논문을 읽으며 최신 치료법을 고민하는 임상 수의사와 연구자라면,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연구 설계와 결과 해석을 통해 치료 효과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분들에게 이 시리즈가 증거기반의학 사고의 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미리 말씀드린다! 이번 시리즈에는 수식과 함께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서 다소 학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처음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차근차근 이끌어 보겠다. 수식은 어려울 경우 숫자의 의미만 확인하고 넘어가도 좋지만, 가능하면 이해해보시길 권한다.

    

이번 연구는 일본 도쿄 오타시에 거주하는 65세에서 84세 사이의 노인 11,194명을 대상으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약 4년간 추적한 전향적 코호트 연구였다. 코호트 연구란 특정 시점에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예: 치매 발생)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즉, “노출(여기서는 개를 기르는 것)”과 “결과(치매 발생)” 사이의 관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는 연구였다.

연구 시작 시점에 참가자들은 현재 개를 기르는 사람, 과거에 기른 적이 있지만 지금은 기르지 않는 사람, 그리고 한 번도 기른 적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현재 개를 기르는 사람과 과거에 기르거나 지금은 기르지 않는 사람을 비교하여, 4년간 치매가 발생했는지를 추적하였다.

이 연구는 코호트 연구로서 단면연구, 사례-대조군 연구, 사례보고 등보다 시간 정보가 포함되며, 참여자에 대한 반복 측정을 수행하기 때문에 관찰 연구 설계 중 인과성에 대한 증거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설계에 해당한다(Figure 1의 B 참조).

Figure 1. 새로운 증거기반의학 피라미드. (A) 전통적 피라미드. (B) 개선된 피라미드: 연구 설계를 구분하는 선이 물결 모양으로 변경됨. (C) 개선된 피라미드: 체계적 문헌고찰이 증거를 비추는 렌즈 역할을 함(M Hassan Murad et al., 2016)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이 두 그룹을 단순히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험 연구를 떠올려 보자. 실험에서는 실험군과 대조군의 조건을 모두 같게 맞추고, 하나의 변수(노출)만 다르게 설정한다. 예를 들어 백신 효과를 비교하는 경우, 백신 접종 여부만 다르고 나머지 조건은 동일해야 한다. 그래야 두 그룹 사이의 차이가 “백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실험연구처럼 참여자에게 반려동물을 임의로 키우게 할 수 없고 또한 참여자들 사이의 특성의 차이를 동일하게 할 수 없는 관찰 연구였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개를 기를지 여부를 선택했다. 문제는, 이 선택이 단순히 반려동물 여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거나 건강 상태가 더 좋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차이들은 치매 발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비교하려는 두 그룹 사이에 존재하여 연구 결과 (즉, 이 연구에서는 반려동물 양육이 치매에 미치는 효과에 해당)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교란 변수(confounding variable)’ 라고 부른다.

   

관찰 자료에서 인과관계를 제대로 추정하려면, 실험처럼 노출군과 비노출군이 ‘다 똑같은 상태’에서 오직 노출만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찰되는 차이가 진짜 노출 효과인지, 아니면 두 집단이 가진 교란변수의 차이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다. 하지만 관찰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조건을 같게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관찰 연구에서는 이 교란 변수를 반드시 통제(보정) 해야 한다.

이 쯤에서 역학의 정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역학은 건강 관련 사건이나 상태의 발생과 분포, 그리고 그 결정요인을 연구하고, 이 지식을 건강 문제 해결에 응용하는 학문이다. 결국, 건강이라는 결과를 바꾸려면 무엇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 즉 인과성을 이해하는 게 핵심이다. 역학은 이러한 이유로 관찰 연구에서도 인과성을 추정하기 위해 관찰자료를 바탕으로 실험연구의 조건을 만드는 방법들을 개발해 왔다. 대표적 방법으로서 치료를 받은 관찰된 대상과 이와 동일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은 가상의 대상을 수리통계적으로 만들어 비교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이 연구의 코호트에 포함되어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으로 관찰됐다면, 나와 모든 특성이 동일하지만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가상의 인물을 통계적으로 생성하여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다. (모든 특성이 동일할 필요는 없고, 교란 변수들만 동일하면 충분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접근 방법 중 하나로 성향 점수를 활용한 가중치 방법(Inverse Probability Treatment Weighting)을 사용했다. 연구자들은 나이, 성별, 운동 습관, 건강 상태, 사회적 고립 정도 등 다양한 특성을 바탕으로 교란 변수의 유사 정도를 나타내는 성향 점수를 계산하고, 이를 통해 참가자마다 가중치를 부여했다. 쉽게 말해, 원래 서로 다른 교란변수 특성을 가진 참가자들을 통계적으로 ‘실험연구에서처럼 교란변수가 동일한 두 집단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이 비유도 엄밀히 따지면 조금 부정확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설명드린다.) 이 방식으로, 실험 연구처럼 노출군과 비노출군을 비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방법을 통해 연구진은 오즈비(Odds Ratio)를 계산했다. OR은 역학에서 노출과 건강의 관련성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1을 기준으로 1보다 낮으면 보호효과, 1보다 높다면 위험을 높이는 효과로 해석한다. 보고된 오즈비는 0.60으로, 개를 기르는 사람의 치매 발생 odds(발생할 확률 대 발생하지 않을 확률 비율)가 개를 기르지 않는 사람의 60% 수준이라는 뜻이다.

   

한편,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의 경우 오즈비가 0.98로 나타나 치매 발생 위험이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사람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즉,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서 치매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개를 기르는 사람에서 유의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 개를 기르는 사람은 정기적인 산책 등으로 신체 활동이 증가한다. 신체 활동은 인지 기능 유지와 치매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개와의 산책은 이웃이나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촉진해 사회적 고립을 줄인다. 사회적 고립의 감소는 인지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고양이는 산책이나 외부 활동이 필요하지 않아, 신체 활동 증가나 사회적 상호작용 증대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개를 기르는 사람과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간의 결과 차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오즈비 = 0.60을 “치매 위험이 40% 감소했다” 고 표현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오즈비는 그러한 뜻이 아니다. 오즈비는 위험(risk)의 비율이 아니라 odds, 즉 발생 확률을 발생하지 않을 확률로 나눈 값을 비교하는 지표이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따라서 오즈비 = 0.60은 “치매 위험이 40% 감소했다” 가 아니라 개를 기르는 그룹의 치매 발생odds가 개를 기르지 않는 그룹의 치매 발생 odds의 60% 수준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얼마나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 걸까?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생각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략 60% 위험이 줄었다는 건 알겠어. 이게 왜 증거기반의학 이야기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1. Yu Taniguchi, Satoshi Seino, Tomoko Ikeuchi, Toshiki Hata, Shoji Shinkai, Akihiko Kitamura, Yoshinori Fujiwara, Protective effects of dog ownership against the onset of disabling dementia in older community-dwelling Japanese: A longitudinal study, Preventive Medicine Reports, Volume 36, 2023, 102465, ISSN 2211-3355,

2. Sackett DL, Rosenberg WM, Gray JA, Haynes RB, Richardson WS. Evidence based medicine: what it is and what it isn’t. BMJ. 1996 Jan 13;312(7023):71-2.

[증거기반의학]2편으로 이어집니다.

[증거기반의학]1편: 반려동물 양육이 치매 위험을 40% 낮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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