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을 꼭 넘어뜨려야만 했을까

이상민 변호사·수의사 /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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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드라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KBS1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대한 논란이다.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극 중 이성계가 낙마하는 장면을 실제로 말의 다리에 밧줄(와이어)을 묶어 일부러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촬영하였다.

촬영 당시 말을 넘어뜨리는 장면이 녹화된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해당 영상에서 말은 얼핏 보기에도 심하게 넘어져 목이 거의 접힐 정도의 부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말은 일주일 뒤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고, 제작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일부 단체에서는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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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작진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을까. 동물보호법 제46조 제1항 제1호는 “제8조 제1항을 위반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행위를 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은 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1호),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2호),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3호), 그 밖에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4호)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중 제1호와 제2호는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발에 밧줄을 묶어 넘어뜨린 행위를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노상 등 공개된 장소”이긴 하였으나 여기서 곧바로 말을 죽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기계톱으로 개의 등부터 배까지 절단하여 내장이 밖으로 다 튀어나올 정도로 죽인 행위가 ‘잔인한 방법’으로 인정된 바 있다.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4도2477 판결)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제4호다.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4조 제1항은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제1호), 동물의 습성 및 생태환경 등 부득이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동물을 다른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는 경우(제2호)를 말한다고 정하고 있다.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더미(dummy)라 불리는 말의 모형을 사용하거나 CG로 대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즉 대체 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행위의 법정형은 본래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었으나, 2020년 2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되었다.

법정된 징역형의 장기(長期)가 2년에서 3년이 되었다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형사소송법 상 긴급체포가 가능한 것은 “사형ㆍ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로 한정된다.

따라서 피의자에 대해 영장 없이 긴급체포가 가능해지는 ‘장기 3년’의 법정형은 중범죄의 지표로 언급되고는 한다.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학대행위’의 법정형이 ‘2년 이하’에서 ‘3년 이하’로 상향되면서 해당 행위를 한 자에 대해 수사기관은 비로소 영장 없이도 긴급체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4조 제1항 제1호는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급박한 위험이 생긴 상황을 전제로 한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촬영 당시가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험이 생긴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KBS 제작진이 해당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제4호마저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면 제작진이 말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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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말에 ‘상해를 입힌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다.

동물보호법 제46조 제2항 제1호는 “제8조 제2항을 위반하여 동물을 학대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이하 각 호의 규정 중에 적용 가능성이 높은 것은 ‘도구·약물 등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질병예방·치료, 동물실험, 동물보호 목적 제외. 제1호)’ 또는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민속 소싸움 경기 제외. 제3호)’다.

말의 다리에 밧줄을 묶어놓은 것은 말의 기본적인 습성에 배치되는 행위다. 당시 상황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거나 동물실험을 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고 긴급사태에서 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밧줄을 묶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위 제1호의 ‘도구 등 물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 사안에 위 제3호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방송촬영이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에 포함되어야 한다.

법령에서 “~~ 등”이란 용어가 사용된 경우 여기에는 앞서 열거된 예시사항과 규범적 가치가 동일하거나 그에 준하는 성질을 가지는 사항만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록 방송촬영이 도박·광고·오락·유흥과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TV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유희(遊戲)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광고’나 ‘오락’과 규범적 가치가 동등하거나 그에 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 제3호의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도 해당된다고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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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법 위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그간 우리나라 방송업계에서 이번과 같은 촬영방식이 아무런 반성 없이 반복되어 오지는 않았는가’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낙마장면을 촬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태종 이방원」 제작진만이 이렇게 낙마장면을 촬영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이번 사안이 동물보호법 위반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KBS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정부는 ‘출연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일은 비단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관행이라거나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 문제없다’는 안일한 판단으로 이러한 촬영방식에 대해 그동안 의문을 제기할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그로 인해 수많은 동물 촬영장면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부지불식간에 불필요하게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영상·미디어 산업 현장에서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다.

이상민 변호사·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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