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⑫] 양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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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열두 번째 주인공은 양효진 수의사입니다.

당시 유일하게 수의사가 아닌 수의과대학 학생 신분으로 집필에 참여했던 양효진 씨는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다’던 바람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서울동물원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던 양효진 수의사는 지난 5월 각국의 동물원과 관련 기관을 방문하는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인터뷰는 9월 15일경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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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데일리벳과는 벌써 두 번째 인터뷰다. 근황이 어떠한가

지난해 데일리벳과 인터뷰 했을 때는 아직 서울동물원에서 동물큐레이터로 일하던 중이었다. 올해 5월 큐레이터 일을 그만두고 ‘동물’을 주제로 한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최근 호주에 있는 동물원들을 돌아보고 캥거루보호센터(Brindle Creek Sanctuary), 농장동물구조센터(Farm Animal Rescue)에서 자원봉사를 마친 후 잠시 쉬는 중이다. 곧 RSPCA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다.

1년 만에 호주에서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충실히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Q. 수말수 책에서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후 정말로 서울동물원(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일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생긴다.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알 때까지 시행착오와 경험을 축척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수의과대학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을 다루는 시간이 적은 것도 아쉬웠다. 야생동물의학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학문임에도 타 수의학 분야에 비해 비중이 낮다는 점은 안타깝다.

그래서 야생동물 수의사를 꿈꾸는 학생들도 우리나라 야생동물에 대해 알기 어렵다. 막연히 아프리카를 꿈꾼다. 그래도 과거보다 지금이 야생동물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 같다.

본인은 서울동물원에서 임상수의사가 아닌 동물큐레이터로 근무했다. 5년 임기제로 동물복지, 동물전시, 리모델링 기획, 직원 교육 및 사육 메뉴얼 제작에 관한 업무를 맡았다.

참고로 서울대공원 동물병원의 임상수의사가 되려면 서울특별시청 소속 수의직 공무원이 된 후 배치를 받아야 한다. 공무원 외에도 5년마다 선발하는 임기제 임상수의사도 있다.

 

Q. 야생동물 분야에 관심 있는 수의과대학 학부생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멋지고 소중한 야생동물들이 많다. 관련 책도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야생동물소모임(야소모) 같은 전국적인 소모임 활동에 참가하여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주변에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일을 도우며 배우거나 환경운동연합, 대한수의사회 등에서 주최하는 야생동물 관련 교육이 있으면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영어 공부도 틈틈이 하길 바란다. 영어가 되면 전세계에 있는 야생동물 관련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도 있다. 사실 영어를 못해도 가서 부딪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항상 야생동물에 관심을 가지는 자세다.

 

Q. 수의사님께도 조언을 건네거나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님,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지회 김수호 사무국장님, 국립생물자원관 안정화 박사님 등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김영준 수의사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앞이 안 보이는 야생동물 수의사의 길을 앞장서서 헤쳐 나가주신 분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국립생태원으로 자리를 옮기셨지만 예전에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에 계실 때 질병이 발생한 곳이나 구조, 수술현장을 따라다니며 많이 배웠다.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다.

물론 언제나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시는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다. 반대하셨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 마음대로 했겠지만…….

 

Q. 야생동물 수의사의 향후 전망이나 비전은 어떠한 지 궁금하다.

예전보다는 인수공통전염병과 야생동물로 인해 전파되는 질병들이 주목받고 있다. 본인이 재학 중일 때보다는 야생동물구조센터도 많이 늘었고, 환경부가 국립야생동물보건원 건립을 추진할 정도다.

하지만 야생동물 수의사의 비전을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요즘 모든 직업들이 다 그런 것 같다.

다만 비전이 밝다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어둡다고 포기하는 것은 짧은 인생을 사는 스스로에게 할 짓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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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물원을 보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세계여행을 꿈꿔왔다. 그렇다고 준비를 철저히 한 건 아니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중간 중간 사람들이 ‘언제 가냐’고 물어볼 때마다 뜨끔하며 꿈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동물원에 일하면서 해외출장이나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점점 목마름이 생겼다. 서울대공원 근무 당시 여름휴가로 일본을 갔다가 빡빡한 일정으로 동물원만 돌아다니다 온 적도 있다. 더 긴 시간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지?’ ‘그걸 지금 당장 해야 하나?’, ‘지금 하는 일을 더 하고 싶나?’ 자문하는 과정을 몇 년간 거쳤다. 그렇게 나온 답이 지금의 나다.

동물원과 야생동물 서식지를 가능한 많이 깊게 보고 싶었고 동물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눈앞에서 보고 싶었다. 현장에서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내 방식이다.

 

Q. 여행에서 만난 해외의 동물원과 우리나라의 동물원은 어떻게 다른가?

모두는 아니지만 해외에는 국립동물원이 있고 동물원을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기부를 받아 동물보전을 위해 사용하고 동물원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동물원도 없이 지자체가 운영하는 형태가 많다. 그러면서도 동물원이 지자체 내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낮기 때문에 예산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기부를 받기는 또 쉽지 않다.

게다가 동물원에 근무하고 싶지 않은 공무원이 동물원에 발령을 받으면, 그 분이 동물원이나 동물에 애정이 없는 경우 서로가 힘들어진다.

결국 이런 점들이 우리나라 동물원의 발전을 늦춘다. 동물원이 관람객들이 생각하는 동물복지에 대한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동물원법이 제정됐지만 아직 시작단계다. 동물원을 만들기는 너무나 쉽고 많은 동물들이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사자 사건처럼 관람객이 동물을 괴롭혀도 강력히 제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원 안팎에서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계시니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다.

 

Q. 특별히 인상 깊었던 해외동물원을 소개해주신다면?

보다 훌륭한 동물원도 많지만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하겐베크 동물원(Hagenbeck Zoo)이 인상적이었다. 동물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겐베크는 창살이 아닌 해자(moat) 방식으로 동물을 전시해, 사람들이 동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동물들이 갇혀 있다’는 인식을 없애고 사람들은 죄책감을 덜었다.

하겐베크는 19세기경 사람을 전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창경원에 야생 코끼리를 판 역사도 있다. 놀라운 점은 아직도 하겐베크 일가가 동물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함께 운영했던 서커스는 이미 접은 지 오래다.

동물원의 몇 군데는 많은 돈을 들여 리모델링 했고 대표적인 파노라마식 동물전시기법도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뭔가 과거에 화려했던 역사의 흔적 같아 보였다. 역사에 따라 어떻게 동물전시기법이 변해왔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네덜란드 아른헴의 뷔르거 동물원(Burgers’ Zoo)은 듣던 대로 생태적 전시를 훌륭하게 구현한 곳이었다. 하겐베크처럼 뷔르거 일가가 소유한 사립동물원으로서 마치 같은 뿌리에서 시작해 전혀 다르게 자란 나무의 결실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일부 좁고 열악한 동물사들을 보면서는 ‘뿌리는 역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에서 본 오비요코하마(Orbit Yokohama)도 기억에 남는다. 일본 게임업체 SEGA와 영국 BBC EARTH가 만나 동물 없는 동물전시를 했다고 해서 가본 곳이다. 기술력에 감탄했고 충분히 교육적이었으며 사람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미래 동물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비요코하마 한 가운데에서 자기 몸 크기만한 작은 수조 안에 있는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살아있는 동물을 가까이 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잊을 수가 없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내가 보고 즐기는 동물들의 삶 뒤편을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동물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여행가서 동물의 몸으로 만들어진 기념품을 사거나, 동물을 타고 만지거나, 야생동물에게 음식물을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얼마전 태국의 유명한 호랑이 사원이 호랑이 학대와 밀매 혐의로 폐쇄됐다. 그럼에도 실질적인 단속이 이어지지 않아 호랑이 관광 산업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동물을 학대하며 이용하는 곳들이 있지만 법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 많다. 인간에 의해 위기에 처한 그 동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원의 손길을 건네주시길 바란다.

이가흔 기자 gahen96@dailyvet.co.kr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⑫] 양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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