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로’ 안상진 박사의 산양 아틀라스 제작기

[인터뷰] 강원대학교 야생동물구조센터 안상진 책임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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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데일리벳이 창간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학생기자단 역시 올해 10기의 활동이 마무리되고, 11기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10주년을 맞이하여 ‘인터뷰어’였던 학생기자단 1기 출신 안상진 박사(사진)를 ‘인터뷰이’로 만났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강원대 수의대 야생동물질병학 실험실(지도교수 김종택)에서 석·박사와 전문연구요원을 마친 뒤, 강원대학교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책임수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안상진입니다.

현재 강원대 수의대에서 동물학 강의를, 건국대 수의대에서 야생동물의학 강의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Q. 야생동물의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멸종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이 마음 아팠습니다.

이들이 겪는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간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성하며 야생동물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서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인 ‘상진(相珍)’은 ‘서로 보배가 되어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처럼, 저는 제가 가진 능력과 열정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게 보배 같은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제 꿈에 부합하지만, 본과 3학년 ‘야생동물질병학’ 수업에서 센터 실습을 하면서 ‘보호자가 없는 야생동물’을 꿈의 대상으로 정하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Q. 박사 학위의 주제가 산양인데, 수많은 야생동물 중에서도 왜 산양이었나요?

벌써 9년차 야생동물수의사가 되었는데요. 매년 120종 이상의 야생동물들을 만나게 됩니다(포유류 20여종, 조류 100여종).

이렇게 많은 야생동물들 중에서 어떤 연구를 할까 고민하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동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Ⅰ급인 ‘산양’을 연구 테마로 잡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산양은 과거 백두대간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서식지 파편화와 고립 등으로 개체수가 감소했죠. 현재는 강원도와 경북·충북 북부지역에 산재해 있습니다. 아마 산양을 직접 볼 수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는 강원이 유일할 것 같아요.

이처럼 특별한 산양이지만 이전에는 생태학적, 유전학적 연구에만 국한되고 있어 아쉬웠습니다.

사실 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꽤 많은 분들이 가축 염소를 산양이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어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사육 염소를 ‘재래 산양’이라 부르기도 하고, 염소의 젖으로 만든 분유를 ‘산양유’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하다 보니 두 종을 혼동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산양 연구를 지속해 산양을 더 잘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긴 세월 동안 우리나라 땅을 지켜온 ‘살아있는 화석’인 산양의 보존을 위한 길이겠죠.

Q. 최근 대한수의학회지 JVS에 실린 산양의 단면 해부 아틀라스 논문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군요

야생동물 수의사로 일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야생동물의 정상 레퍼런스가 많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각 대학과 센터들이 레퍼런스를 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저도 혈액학적 레퍼런스 정립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강원대 동물병원에 CT와 MRI 진료 시스템이 구축됐고, 감사하게도 영상의학과 최수영 교수님과 수의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야생동물에서도 CT, MRI 진료가 가능해졌습니다.

상위 검사를 통해 야생동물에서도 기생충성 뇌질환인 공미충증(coenurosis), 장딴지근 파열, 1위 내 이물, 골수염(osteomyelitis) 등 다양한 케이스의 진단이 가능해졌어요.

사실 임상적인 진단과 치료는 정상적인 개체의 해부학과 수의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내 야생동물에서는 정상적인 해부 아틀라스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직접 부검을 하면서 확인하긴 하지만, 이것도 정상적인 개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연구자로서 동료인 수생동물의학 전공 김상화 연구원과 단면 해부학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에서도 단면 해부학 연구를 진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취총을 쏘는 안상진 박사

Q. 산양 해부 아틀라스 제작 과정을 소개해주신다면

CT, MRI를 활용해 산양의 단면 해부학을 연구하기 위해선 건강한 개체가 필요했어요. 때문에 구조된 개체 대신 양구의 산양사향노루센터에서 계류 중인 건강한 산양 성체들을 활용했습니다.

이들을 마취총으로 포획해서 CT, MRI를 촬영했습니다. 두부에서 7개의 라인, 몸통은 30개 라인으로 총 37개의 라인을 그려 각 척추뼈의 정점에서의 단면을 확인했어요.

사실 과거 개나 고양이에서 진행됐던 단면 해부학 연구들에서는 실험동물을 사용하여 마지막에 안락사 후 냉동절편을 만들어 CT, MRI scan과 직접 비교를 하며 아틀라스를 정립했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은 실험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CT, MRI 촬영으로만 진행해야 했죠. 산양은 따로 레퍼런스가 존재하지 않아 양이나 염소, 소 등 비슷한 여러 동물의 단면 해부학 참고문헌을 모두 확인했어요.

그리고 어두운 컴퓨터 화면을 계속 바라봐야 했기 때문에 눈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모두 끝내고 나니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더라고요.

이 아틀라스로 산양의 정상적인 골격 및 흉·복부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산양의 정상 및 병리 상태를 평가하며 질병으로 인한 폐사를 줄일 수 있는 유용한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논문 보러가기)

산양 CT 촬영

Q. (사)한국사향노루보호협회의 이사직도 맡으셨더라고요

사향노루는 전설 속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향노루 수컷이 암컷을 유혹할 때 내뿜는 사향은 ‘머스크 향’의 원료로, 공진단을 비롯한 고급 한약재로 쓰여 왔습니다.

백두대간부터 시베리아까지 넓게 분포했던 사향노루는 지난 100년간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해 거의 멸종된 동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TV프로그램 ‘환경스페셜’에서 사향노루를 다뤘는데, 양구 산양사향노루센터의 선생님들께서 다년 간의 추적 조사 끝에 우리나라 사향노루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체계적인 사향노루의 보전과 보호를 위해 구조 개체를 활용한 사향노루의 원종을 확보하고 서식지 복원 및 보존 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한국사향노루보호협회가 만들어졌어요.

저는 산양에 대한 수의학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산양사향노루센터의 추천을 받아 이사직을 맡게 되었는데요. 앞으로 구조되는 사향노루 개체에 대한 치료와 개체군 차원에서 사향노루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수의학적 연구를 진행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야생동물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나은 야생동물 질병 진단·치료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야생동물에서의 정상 레퍼런스를 확립하고 싶습니다.

특히 박사 학위 테마였던 산양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CT, MRI를 활용한 정상 단면해부학 연구로 비교해부·영상진단을 정립함으로써 더 많은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야생동물의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또한 야생동물 매개 질병의 발생, 감염 현황 및 치료법 개발을 위한 연구도 지속할 계획입니다.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가성우역 등 신종 해외전염병도 유입될 가능성이 있어요. 야생동물에서의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물론 저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많은 분들과 함께 연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하든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복이 좋은 편이라 학교 교수님들의 조언, 센터 선생님들, 선·후배, 동기, 친구들의 도움과 응원을 아낌없이 받으며 하고 싶은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정말 행복하게 야생동물 수의사로서의 일과 연구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 1기로 활동을 하던 2013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0주년이 됐네요. 졸업해서 수의사도 되고, 박사 학위도 따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됐네요.

데일리벳 학생기자들 중에서는 첫 수의사, 첫 박사일텐데 스스로도 대견하기도 하고, 늘 응원해주신 데일리벳과 학생기자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데일리벳을 만나고 나서 공동대표님들과 10개 수의과대학 학생기자 친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야도 넓어지고, 더 긍정적인 마인드를 장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相珍’ 보배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올바르게,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정 기자 tnwjdpark@naver.com

‘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로’ 안상진 박사의 산양 아틀라스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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