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버랜드 오석헌 수의사 `동물원 동물병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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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반인들은 ‘동물’하면 ‘동물원’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 중에 동물원 내 야생동물을 돌보는 수의사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같은 수의사라도 만나기조차 쉽지 않죠.

동물병원 하나 없었던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더 다양한 동물들을 치료하고 있는, 에버랜드 동물병원의 오석헌 수의사님을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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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 중 에버랜드가 최근 개장한 초식동물 사파리 ‘로스트밸리’에 들른 오석헌 수의사

Q. 어떤 계기로 수의사가 됐나. 수의사가 되기로 처음 결심했던 당시부터 야생동물을 다루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

아주 어렸을 때는 동물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내가 살던 곳에는 동물병원이 하나도 없었고,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아프다고 병원에 간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개들이 쥐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어렸을 때 이를 목격한 뒤로는 ‘동물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되지?’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주변 동물들에 대한 여러가지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생겼지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코카스패니얼을 한 마리 기르면서 동물과 좀 더 교감하게 됐다. 그 때만 해도 기르던 코카스패니얼을 한 번도 동물병원에 데려가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당연해진 백신접종도 그 때는 필요성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동물병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서 ‘동물에게도 의료적인 처치를 하는구나’를 깨닫고 수의과대학으로의 진학을 결심했다.

특별히 동물원 수의사가 되기 위해 수의대에 오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Q. 수의대생 시절부터 야생동물에 관심이 많았나

반려동물보다는 야생동물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수의대생이 야생동물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뭔가 접해볼 수 있는 창구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나온 강원대 수의대에는 부속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있었고, 동물병원 봉사장학생 활동을 하면서 야생동물구조센터 일에도 많이 참여할 수 있었다. 구조센터가 동물병원 건물 1층에 있었기 때문에 구조를 나가거나 치료에 일손이 필요하면 교수님께서 나를 부르시곤 했다.

학교 밖으로도 ‘야생동물소모임’에 참가해서 활동했다. 매달 1번씩 주말에 1박2일 동안 진행되는 야생동물 탐사를 통해 설악산, 지리산, 포천 등 전국 방방곡곡을 쫒아다녔다. 거기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김영준 수의사님이나 종복원센터의 정동혁 책임수의사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곳에서 여러 생태학자와 현재 야생동물 수의사로 활동중이신 많은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참가비용을 마련하고, 탐사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동굴 탐사와 차를 타고 나이트서치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처럼 수의대 생활을 하면서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루트를 발견하면서 야생동물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지만, 동물원 수의사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물원 수의사 TO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동물원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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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TO가 거의 없는 동물원 수의사가 어떻게 될 수 있었나

2006년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대 동물병원의 조교로 일을 시작해서 에버랜드에 입사하기 전까지 9개월 동안 일했다.

사실 그때는 야생동물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는데는 어려운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일단 미국 수의사 면허부터 취득하고 방향을 잡아볼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8월, 에버랜드에서 수의사 채용 공지가 났다.

공지를 보고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 수의사를 당장 포기하기도 그렇고, 지원한다고 해도 경력이 짧아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일단 하고 싶은 일이니 시도해보고 안되면 미련없이 미국으로 가자는 생각에 지원했다.

그렇게 1,2,3차 시험을 통과한 후 9월에 발령받았다. 그때도 1명을 뽑는 채용시험이었다. 경쟁률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1차 통과자가 8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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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동물병원 내 수술실

Q. 에버랜드 동물병원을 소개해달라

에버랜드 동물병원에 진료수의사는 4명이 근무하고 있다.

동물병원도 최근 시설을 확충해서 진료환경에는 특별히 부족한 점은 없다. 기본적인 처치실과 수술실은 물론 부검실, 지정검역실, 입원실도 갖춰져 있다. 기본적인 검사장비, 영상장비도 있다. 동물병원 내원 시 대부분 마취유지가 필수적이고 야생동물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에 맞도록 동물병원내 모든 공간에 산소공급시설도 마련돼 있다.

진료는 회진을 돌면서 간단한 것은 현장에서 처리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동물병원으로 내원시키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판단해서 진행한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나를 포함해 수의사는 두 명이었지만 점차 충원되서 2011년에 마지막으로 채용됐다. TO는 4명이기 때문에 결원이 생기지 않는한 추가로 채용하지는 않는다. 동물원이 크게 확장되지 않는 이상 TO가 추가될 가능성은 적다.

처음 두 명이서 일할 때는 지금보다 많이 힘들긴 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수의사와 정말 친하고 죽이 잘 맞았다. 치료하는 스타일도 비슷했고, 일은 아주 많았지만 밤늦게까지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수의사도 4명이고 시스템도 그 때 보다 개선되어 수의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병원에 상주하는 테크니션이 없다는 점 정도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사육사가 보정 등 테크니션 역할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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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 준비를 하고 있는 오석헌 수의사. 여러 회진가방을 써봤지만, 메이크업 박스가 최고라고 했다. 무거운 것만 빼면, 정리하기도 쉽고 튼튼하다고.

Q. 에버랜드 동물병원에서의 수의사 진료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오전∙오후 회진이 기본이다. 4명의 수의사가 구역을 나눠서 회진을 돈다. 그냥 에버랜드 동물원 관람공간을 따라 걸어다니지만 진료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사육공간에서 진행한다.

치료를 진행 중인 환축들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사육사가 이것 저것 봐달라고 요청을 하는 식이다. 한 번에 치료를 진행하는 환축의 수는 때마다 다양하지만,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과 달리 아픈 동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현재 내가 치료를 진행 중인 동물도 5케이스 정도다.

회진은 보통 1~2시간 정도 걸린다. 남는 시간에는 검사나 서류작업들을 처리하고, 회진에서 발견한 문제점에 대해 공부한다. 워낙 종이 다양하고 발생하는 문제도 여러가지라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진료방향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술을 한다거나 위중한 동물이 있으면 다른 임상수의사와 마찬가지로 시간 구애 없이 진료업무를 본다.

수의사 당직은 따로 없다. 근무시간 외 응급콜은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수의사가 받는 식으로 커버하고 있다.

다만 늦은 시간까지 근무해야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동물원 운영이 끝나고 사육사들이 동물을 먹이고 입사시키는 과정이 한두시간 더 걸리는데,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적어도 1명의 수의사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처럼 동물원 운영시간이 길어지면 밤11시까지 병원에 남아있기도 한다.

주말에 자주 쉴 수는 없다. 주말에 동물원이 열기 때문에 수의사들도 나와야 한다. 한달에 2~3일 정도 돌아가면서 쉬는 것 같다. 물론 평일에 대체휴무를 한다.

Q. 진료 외에 다른 업무도 있나

때때로 연구나 교육업무에 종사한다.

연구는 가끔 프로젝트가 생기면 하는데, 대부분의 연구가 산학협동 연구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사육사 교육업무를 같이 담당하고 있다. 사육사 교육 프로그램은 에버랜드가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4개월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비수기에(11,12,1,2월) 사육사들의 수강신청을 받아 강의를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동물행동학, 동물영양학, 사양관리 등 12개 과목으로 구성되있다. 나는 동물생리학, 동물번식학을 강의하고 있다. 다른 수의사들이나 20년 이상 경력의 고참 사육사들이 강사를 맡고 있다.

Q. 동물원 야생동물을 진료하며 인상깊었던 일을 소개한다면

물개(캘리포니아 씨라이온)를 살려냈을 때가 기억난다.

퇴근 하는 길에 물개 한 마리가 쓰러져있으니 빨리 좀 와달라고 전화가 왔다.

당시 에버랜드 동물병원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라 군기도 바짝 들어있었다. 헐레벌떡 돌아와 동물병원에서 수액, 응급약품만 급히 챙겨서 물개 사육사로 뛰어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물개에게 저나트륨혈증이 가끔씩 나타났기 때문에 수액으로 나트륨을 공급해주고 응급약물 투여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사육사랑 번갈아가면서 심폐소생술을 두 시간 가까이 했다. 결국 살려냈고 수액 주면서 사육사와 둘이서 밤새 지켜봤다.

퇴근길에 정신없이 뛰어가느라 사복차림이었는데, 몇 시간을 물개와 뒹굴면서 밝은 색의 사복이 완전 까매졌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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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물개를 살려낸 것처럼 보람된 순간과는 달리 치료가 어려웠던 경우도 있었을 것 같다.

굳이 소개하고 싶진 않지만 슬픈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수의사로서도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황들을 만나면 참 속상하다.

예를 들어 대형동물이나 힘이 센 동물들은 골절이 생기면 치료가 불가능하다. 체중 부하를 막을 수도 없고, 골절 수술이나 캐스트를 해줘봤자 바로 부서뜨리기 때문이다. 기린이나 코뿔소 다리에 골절이 생기면 고정해줘도 일어나서 체중을 싣는 순간 소용이 없어져 버린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 앞발에 캐스트를 해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박살낸다.

이렇게 단순 골절인데도 절단수술을 하거나 안락사로 이어져야 하는 경우에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작은 상처라 간단히 치료될 수 있는 것도 야생동물이 자가손상을 반복해 치유가 힘든 경우도 종종 있다.

Q. 야생동물을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애로사항이 많지 않나

벌써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을 돌본지 8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두려운 것도 많고, 힘든 점도 많다.

사실 ‘뭐가 없어서 할 수 있는 치료를 못해’라기 보다는 ‘야생동물’이라서 어려운 것 같다.

야생동물이라고 해서 모든 치료를 마취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맹수가 아니라면, 드레싱이나 아주 간단한 봉합, 채혈 등 5분 안에 끝나는 단순 치료작업이고 사육사 두 명 정도가 보정이 가능하다 싶으면 보정해서 한다. 굳이 현장에서 모니터링 없는 위험한 주사마취를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나. 짧은 처치라면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그냥 보정해서 빨리 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언제나 고민이다. 병원에 데려와서 마취하고 치료할 지, 현장에서 보정해서 치료할 지, 둘 사이의 판단을 수의사가 내려야 하는데 그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막상 병원에 동물을 데리고 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동 수단이나 병원의 시설적인 면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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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방향을 잡는 것도 늘 어렵다. 에버랜드에는 200종 정도의 동물이 있는데 각각의 종들마다 접근 방법이라든지 진료 방향을 설정하는 방법 등에 대한 노하우가 아직 많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다.

반려동물 같은 경우는 주증상에 대한 진단법이나 감별진단목록, 치료과정 등이 어느 정도 체계화되어 있지 않나. 야생동물에서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

환경에 의한 질병이 나타날 때도 힘들다. 더운 곳에서 온 동물을 위해 우리나라 기후를 바꿀 수도 없고. 야생동물의 생태에 부합하는 사육환경을 제공하기도 쉽지 않다.

정말 야생동물은 예방이 중요한 것 같다. 일단 다치거나 병이 생겨서 치료에 돌입하면 단순한 것 아니고서는 아주 어렵다. 관리해주기도 어렵고 관리를 하면 할수록 동물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Q. 국내에 동물원 수의사는 극소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수의사회에 신고된 바에 의하면 30여명 정도라고 하는데 몇 명 인가? 에버랜드 동물병원은 상대적으로 훌륭하다고 들었지만, 일반적인 동물원 수의진료환경은 어떤 상황인가?

동물원에 근무하는 진료 수의사들은 스무명 내외다.

수의사가 있는 동물원은 국공립이 12~13개이고 사립은 에버랜드와 한화아쿠아리움 정도다.

서울동물원, 에버랜드 동물원 등이 동물병원은 그나마 제일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동물병원이 따로 없이 진료실 명목의 한 공간에서 충분치 못한 설비를 가지고 일하는 곳도 있다.

설비나 재원부족도 문제지만 국공립 동물원의 진료인력 유지도 큰 문제다. 수의직 공무원이 진료업무를 맡고 있지만 공무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리를 옮기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지자체 동물원 수의사 분들은 동물원에 애정이 있고 다른 자리로 가기 싫어하시기 때문에 많이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서울동물원을 제외하면 국공립 동물원 대부분이 공무원 조직이 소규모이기 때문에 동물원에만 있어서는 진급 등에서 상대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그렇다면 동물원 야생동물 임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동물원 수의진료 환경은 아직 많은 발전이 필요한 단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공립 동물원에서는 동물원 수의사를 전문영역으로 확립시켜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일반직으로 동물원 수의사를 뽑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다. 일반 수의직 공무원이 로테이션해서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특수직화해서 전문 진료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 것은 동물원 의학에 애정을 갖고 계신 타 동물원 수의사분들에게 많이 들은 이야기다. ‘내가 언제 동물원을 떠나야할지 모르는’ 현재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안된다.

동물원 임상 전문가들도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아직 국내 동물원 수의사 중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 자문을 받을 만한 수의사도 거의 없다.

현재 동물원 임상에 종사하는 수의사들도 여러 가지 노력 중이다. 4년여 전에 생긴 야생동물 의학회에서 동물원 수의사들도 하나의 분과로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내 질병연구분과에서도 교류하면서 1년에 한 두 차례 케이스스터디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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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동물병원 입구에 걸려 있는 문구

Q. 최근 제돌이 방류, 동물원법 발의, 서울동물원 동물쇼 전면 폐지 등 동물원 내 야생동물의 복지∙동물권과 관련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동물원 내 야생동물의 복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위치에 계신 수의사로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러한 이슈 속에서 수의사가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동물복지와 관련된 수의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국내 동물원의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어찌 보면 제도적인 개선에 참여하는 것이 지금 현재 동물원 관련해서 수의사들이 가장 초점을 맞춰야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그래야 동물이 덜 아프게 되지 않겠나.

꼭 동물원 수의사가 아니더라도, 동물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복지수준이 향상되는 것에 수의사가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수의사 자체의 직업윤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도적인 개선은 현실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본다. 동물원법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도록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지킬 수 없는 법은 그 자체로 묵인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처음이니만큼 방향성을 잡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서서히 노후된 시설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동물원을 조성할 때에 한해 좀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동물원 이슈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제돌이 방사’ 때도 일부 관련 기관이나 NGO들이 동물 자체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얻는데 치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제돌이가 불쌍한 것도 맞고, 방사된 것도 기쁘지만 방사 행사에 사용된 예산을 제돌이와 같이 살던 서울동물원 내 돌고래나 다른 해양동물이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유기동물 문제도, 동물원법도 정말 동물 자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어 갔으면 좋겠다.

또 이런 문제에 수의사들도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영향력 있는 수의사나 수의사단체가 없다는 한계점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Q. 동물원 수의사가 되고 싶은 예비수의사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을 먼저 해보는 것이다. 동물원 뿐 아니라 구조센터도 방학을 이용해서 실습을 4주, 안되면 2주라도 꼭 나가봤으면 한다. 실제로 경험하는 것 외에도 그 곳의 수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간접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쪽도 꼭 알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능력이 있더라도 국내 동물원에자리가 없어 취업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에는 동물원 수의학, 야생동물 수의학과 관련된 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 전문가 과정을 밟게 되면 오히려 더 좋은 위치로 돌아올 수도 있다.

Q. 에버랜드 동물병원도 국내 수의대생들에게 실습기회도 제공하나

방학마다 실습생을 받지만, 아주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진 않다. 다른 동물원도 마찬가지일 거다.

실습생들은 진료에 따라다니면서 지켜보고, 야생동물을 다룰 때 사용하는 여러가지 물품을 만들거나 다뤄볼 수 있다. 진료가 없는 쉬는 시간에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경험담도 전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진료에서 수의대생이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나조차도 매법 진료할 때마다 조심하는 상황에서 경험 없는 학생이 하기에는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한 번에 받는 실습생은 3명 정도다. 많이 받으면 실습생에게 더 집중할 수가 없더라. 서울동물원의 경우에는 좀더 많은 실습생을 받고 있다.

서울동물원, 에버랜드 외에 다른 동물원에서도 개인적으로 알아보면 실습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건대 수의대는 어린이대공원 동물병원에서 본과생 로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수의대에서는 올해부터 학기중 로테이션 프로그램으로서 학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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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 중에 유인원 전시관에 들러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오석헌 수의사

Q. 앞으로 수의사님이 이루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꿈은 무엇인가

동물원에 들어온 지도 8년째다. 그동안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야생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기회가 되서 동물원에 들어왔지만, 처음만 하더라도 뱀 같은 파충류나특이하게 생긴 동물들은 약간 무섭기도 하고 만지기도 껄끄러운, 일반인 같은 마음이 내게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동물들과 일하다보니 모든 동물들이 각각의 생명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좀처럼 교감하기 어려워하는 야생동물들도 보고만 있어도 정이 간다. 최근에는 버려지는 반려동물에게도 훨씬 많은 정감을 느낀다. 고통받는 동물, 학대받는 동물을 보면 예전보다 더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앞으로도 동물원 동물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특히 유기동물이나 야생동물처럼 우리들이 잘 돌아보지 못하는 소외된 동물을 위해서 말이다.

외부로 강의를 나가면 “여러분들은 어제 하루 몇 종의 동물과 만났나?”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안 만났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만 봤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새도 있고, 쥐, 길고양이도 있다. 또한 작은 곤충까지 생각한다면 최소 5~10종을 매일 만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것을 못 느끼고 사람끼리만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서, 사람들이 동물들과 함께 균형있게 어울려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싶다.

 

[인터뷰] 에버랜드 오석헌 수의사 `동물원 동물병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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