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꿀벌도 수의사가 치료합니다` 정년기·허주행 수의사

등록 : 2020.08.28 15:13:48   수정 : 2020.08.28 15:17:49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8월 28일부터 시행됩니다. 양봉산업법 제정 전부터도 꿀벌은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 소, 돼지처럼 수의사가 질병을 치료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꿀벌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수의사는 단 2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꿀벌동물병원 정년기 원장과 한국양봉농협 소속 허주행 수의사가 그 주인공인데요, 길었던 장마가 끝난 8월 데일리벳이 두 분을 만났습니다.

합동 인터뷰는 대전의 꿀벌동물병원과 계룡시 소재 양봉농가에서 이어졌습니다.

(왼쪽부터) 계룡 소재 양봉농가를 방문한 허주행, 정년기 수의사

Q. 데일리벳은 수의사·수의대생을 위한 전문 언론이지만, 독자 대부분이 양봉에 익숙치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꿀벌수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양봉업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가 필요하다

정년기(이하 정) : 양봉은 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울을 난 후 봄에 수확하는 방식이다. 벌통 하나에 보통 벌집 10개 정도가 들어간다. 꿀벌들이 많아지면 2층, 3층짜리 덧통(계상)으로 확장하기도 하지만, 홑통(단상), 덧통(계상)에 상관없이 봉군(벌무리)도 하나, 여왕벌도 한 마리다.

꿀벌은 반경 2km의 활동반경을 가진다. 주변에 핀 꽃을 찾아 돌아다니며 꿀을 모은다. 이때 꿀을 공급해주는 꽃을 밀원(꿀밭)이라고 부른다.

양봉은 밀원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카시아 벌꿀을 많이 만들고 싶다면, 아까시나무가 많은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허주행(이하 허) : 우리나라의 양봉산업은 전국 2만8천여 농가에서 280~290만군의 봉군을 기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100군 이상, 즉 벌통을 100개 이상 보유한 농가를 전업농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양봉농협은 전업농가 조합원 3,20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들이 보유한 봉군만 90만여개다.

최근에는 양봉농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소나 돼지 등 다른 가축은 사육이 가능한 땅을 찾기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반면 양봉은 비교적 소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하다.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보니 정부도 귀농·귀촌한 분들께 양봉을 권장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나올 수 있는 벌꿀의 양은 정해져 있다. 꽃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농가가 많아질수록 한 농가가 생산하는 벌꿀의 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른 농가들이 모르는 밀원 지역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만큼 농가가 많아졌다.

: 벌꿀 생산은 5~6월에 집중되는 한철 농사다. 국내에서 아까시꽃이 만개하는 시기다. 이때 벌꿀을 최대한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개화시기에 날씨가 안 좋고 기온이 낮으면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문제다. 나머지 10달 동안 꿀벌들을 아무리 잘 키웠어도 이때 하늘이 돕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셈이다. 이상기후 등으로 벌꿀 생산이 힘들어지면 농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 2018년에는 아까시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큰 피해를 입었다. 작년에는 그나마 나았는데, 올해는 2018년 보다 벌꿀 생산이 저조하여 역대 최악이었다.

한국양봉농협은 평균 수준으로 벌꿀을 생산하는 농가가 100군당 연간 2700만원에서 3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봄철 생산량이 떨어지면 수익이 급감한다. (2019년 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흉작시 양봉농가의 100군당 연간수익은 208만원으로 전년대비 92.3%나 감소했다-편집자주)

 

Q. 자연 수분을 매개하는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들었다. 양봉업의 역할이 벌꿀 생산에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 과수농가에 꽃이 잘 필 수 있도록 하우스 수정용 벌통을 공급하기도 한다. 이것만 전문으로 하는 농가도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약 71%가 꿀벌을 매개체로 수분을 하는 작물이다.

꿀벌이 사라질 경우 수분을 통해 열리는 열매가 줄어들고 연쇄적인 생태계 교란과 심각한 식량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양봉은 그 공익적 가치가 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에 비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

Q.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꿀벌 진료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하다

: 대전보건환경연구원에서 꿀벌 질병 관련 업무를 맡은 1992년부터 인연이 닿았다. 당시 양봉농가에 방문했을 때는 꿀벌에 쏘일 까봐 어느새 도망 나오게 됐다. 꿀벌 질병이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자존심이 상했다.

농가들을 다니면서 어떤 질병이 있는지, 어떤 약을 쓰는지 물었다. 농가마다 다 다르더라. 그만큼 주먹구구식이라는 방증이었다.

꿀벌을 오래 키우신 분께 가르쳐 달라고도 하고, 외국서적도 찾아보면서 배우면서 관심을 이어갔다. 꿀벌질병의 병성감정업무도 꾸준히 했다. 농가 사이에서 입소문도 났다. 은퇴 후 2013년 꿀벌동물병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지금도 농가가 뭘 물어보거나 왕진을 요청하면 긴장된다. 그만큼 꿀벌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

: 2017년 수의과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한국양봉농협에 입사했다. 당시 한국양봉농협에서 꿀벌 진료에 관심 있는 수의사를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막연히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부저병이라는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고, 집에서 양봉을 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꿀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힘들었다.

그래도 정년기 원장님이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강연을 따라가서 듣고, 농가 왕진도 따라다니면서 배웠다.

서울 신당동의 한국양봉농협 사무실 옥상에도 벌통이 있다. 거기서 채취한 벌꿀을 직원들과 나누어 먹기도 하고, 여러 실험도 해보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

 

Q. 양봉업에서 수의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

: 가령 날씨도 좋고 꽃도 잘 피었는데, 하필 벌꿀을 생산하는 시기 직전에 질병이 발생하여 꿀벌들이 죽었다면 농가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꽃이 피는 시기를 미룰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벌통을 가져다 놔도 어느 봉군은 왕성하게 벌꿀을 만들고, 그렇지 못한 봉군도 있다.

때문에 개화시기에 벌꿀을 최대한 생산할 수 있도록 질병과 봉군관리를 종합적으로 컨설팅해야 한다.

: 집단사육에는 질병문제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수의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 전세계적으로 보고된 꿀벌의 감염성 질환은 36여개다. 이중 14종이 국내에서 다발한다. 바이러스는 물론 세균, 진균, 원충 등 병원체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바이러스 질병과 진드기가 농가들을 괴롭히는 주범이다.

특히 꿀벌은 전염병의 차단방역이 타 축종에 비해 훨씬 어렵다. 날아다니는 꿀벌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꿀벌끼리 접촉하거나 같은 꽃에 번갈아 앉으면서 오염원이 전파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질병이 혼재된다.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가검물을 채취하여 RT-PCR 검사를 실시하기도 하는데, 실험실 검사결과만으로는 농가가 호소하는 증상의 주 원인을 가려내기가 쉽지는 않다.

꿀벌들의 상태를 살피는 정년기 원장

Q. 반려동물이나 대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와 달리 양봉수의사가 활동하는 모습은 떠올리기 쉽지 않다. 어떻게 일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 강의요청이 많다. 요즘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강의일정에 왕진도 맞춘다. 가령 강원도 횡성에 가면 간 김에 주변 농가를 방문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국에서 밀려드는 왕진요청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해도 강원도 갔다가 전라남도 갔다가, 이동에 드는 시간이 많다. 월요일에 동물병원을 나서면 금요일에 돌아온다.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다음 지역으로 바로 이동하는 식이다.

: 주5일 근무를 기본으로 사무실 출근과 농가 출장이 반반이다. 서울의 농협 사무실에 출근할 때는 회사원과 다름없다. 진료기록도 정리하고 외부기관의 질의에도 응답한다.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의 진료수의사로서 농가의 왕진요청이 들어오면 출장을 나간다. 장거리 운전이 많고 한 번 길을 나서면 며칠간 연이어 전국을 다니기도 한다. 제주도도 간다.

정년기 원장님과도 일정을 조율한다. 가까운 사람이 가줘야 전국 농가의 요청을 소화할 수 있는 실정이다. 정밀검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동물병원과 서울 사무실 모두에 설비를 세팅한 것도 도움이 된다.

: 농가에 가면 벌통 주변부터 살핀다. 벌통 밖에 꿀벌이 어떻게 죽어 있는지를 본다. 냄새도 맡는다. 그 후 벌통의 전체적인 상태와 여왕벌의 상황도 관찰한다.

가검물을 채취해 정밀검사도 진행한다. 하지만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농장주가 전화로 얘기해주는 증상도 참고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밀검사결과와 현장 관찰을 토대로 진단을 내리고 필요하면 약물을 처방한다.

: 5~6월 벌꿀 생산기에는 오히려 수의사를 덜 찾는다. 하지만 생산기가 끝나면 월동준비가 마무리되는 11월까지는 질병과의 싸움이다. 봉군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수의사도 질병뿐만 아니라 꿀벌의 생리나 사육방식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11월 이후에 꿀벌은 외부활동을 멈추고 저장된 식량만 조금씩 먹으며 겨울을 난다. 이듬해 입춘 즈음까지는 농가도 벌통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저도 사무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다.

 

Q. 꿀벌 진료만으로 충분한 수입을 거둘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 한국양봉농협과 꿀벌동물병원이 업무협약(MOU)을 맺고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왕진을 가면 농가는 진료비를 내지 않지만, 한국양봉농협이 약정된 진료상담비를 대신 지급해주는 형태다.

구체적인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 저는 한국양봉농협 정직원으로서 정해진 급여에 출장비 등 수당을 받고 있다.

허주행 수의사는 양봉농협 사무업무와 함께 회원농가 왕진에 나서고 있다

Q. 애초에 수의사가 거의 없는 업계다 보니 농가로서도 ‘돈을 내고 진료받는다’는 인식이 자리잡지 못했을 것 같은데, 자가진료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나

: 예전에 소를 자가진료하던 것과 비슷하다. 농가가 해볼 때까지 해보다가 안되면 다 망가진 후에 수의사를 찾는 경우가 있다.

2011년 대전·전남지역의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수의사와 상담해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수의사도 꿀벌 다룬다고 생각 못했고, 농가도 수의사가 치료해준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인식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농가도 수의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수의사가 실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농가를 지식과 진료 양면에서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 꿀벌에게 사용하는 항생제는 현재까지 한 종류인데, 세균성 질병이 아닌 경우에도 일단 써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감기 걸렸는데 설사약 먹는 격이다. 게다가 허가도 제대로 받지 않은 불법적인 유사약품마저 횡행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이것 저것 써보다가 꿀벌이 망가진 후에야 저희들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Q. 그런 상황에서 제3, 제4의 꿀벌 수의사가 나올 수 있는 진료기반을 만들 수 있을까. 지난 대한수의사회 꿀벌질병대책특위에서 말씀하신 관납 예산 활용 문제에 그래서 관심이 간다

: 한국양봉농협 회원농가와 달리 개별농가는 수의사를 불러 진료서비스를 받기에 영세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연간 7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관납약품을 농가에게 공급하고 있는데, 수의사의 처방에 따라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농가에게 공짜 약을 뿌리다 보니 오남용이 많다. 여기에 낭비되는 예산을 공수의나 전업 수의사의 진료비용으로 돌린다면 효과적인 처방을 유도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꿀벌 진료로만 충분한 수입을 거둘 수 있다면 수의사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 꿀벌의 세균성 질병 치료에 필요한 항생제가 수의사처방대상으로 지정됐지만, 정작 처방해줄 수의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농촌지역에서 대동물 진료를 하는 수의사 분들이 꿀벌도 좀 배우셔서, 이러한 처방 수요를 담당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시도별로 단 1명이라도 필요하다. 공수의를 활용하자는 특위 내부의 아이디어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전국을 관할 지역으로 삼고 있는 한국양봉농협 차원에서도 수의사가 추가로 필요하지만 채용계획을 세워도 수의사를 뽑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저도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양봉산업에 대한 이해를 갖추면 시작하는데 특별히 진입장벽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양봉농협에 수의사 분이 오시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본 준비는 되어 있다.

소를 주로 보시는 원장님들도 조금만 배우면 꿀벌에 항생제 처방은 가능하다. 더 심화된 진료는 저나 정년기 원장님께서 도울 수 있으니, 수의사처방제 대응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허주행, 정년기 수의사는 대수 꿀벌질병대책특위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Q. 대한수의사회도 꿀벌 관련 특위를 마련하는 등 예전과 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허주행 수의사가 한국양봉농협에 합류해 동물병원도 만들어 함께 활동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 꿀벌동물병원 개업 7년만에 대한수의사회에서도 특위를 만들었다.

이처럼 지속적인 참여와 대응이 중요하다. 수의사도 고집스럽게 역량을 쌓아 농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제2의 수산질병관리사 사태가 재현될 수밖에 없다

: 한국양봉학회만 해도 수의사의 참여는 드물고 곤충생태나 영양학 분야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수의사처방제를 계기로 수산질병관리사처럼 수의사의 영역을 가져가버릴 수도 있다.

지금은 정 원장님과 함께 단 둘이서 힘겹게 막고 있는 실정이다. 저도 2017년에서야 한국양봉농협에 합류했지만, 일하다 보니 ‘수의사는 못한다는 얘기는 듣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수의계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