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 받는 수의사, 개인의 인내 넘어 제도적 지원 절실

한국실험동물수의사회, 수의사의 번아웃·직무스트레스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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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험동물수의사회(KCLAM/KSLAV, 회장 강병철)가 14일(목)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실험동물수의사 직무교육(LOOK)을 개최했다. 이번 실험동물수의사회 LOOK 2026-1은 ‘슬기로운 실험동물수의사 생활: 현장에서 바로 쓰는 안전, 관리, 의사결정 전략’을 주제로 열렸는데 그중 두 번째 세션이 수의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두 번째 세션은 ‘동물을 돌보는 나를 돌보는 시간 : 지속 가능한 연구를 위한 멘탈 케어’를 주제로 2개의 발표와 패널토의가 이어졌다. 패널 토의 주제는 ‘연구자도 수의사도 행복한 시설은 가능한가? 우리 시설만의 ‘심리 방역’ 모델 만들기’였다.

실험동물수의사는 물론, 모든 수의사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다뤄졌다.

첫 번째 강의를 맡은 뉴베이스 모효정 이사는 ‘실험동물 종사자의 번아웃과 도덕적 스트레스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돌보는가?’를 주제로 수의사가 왜 도덕적 스트레스를 받고 번아웃에 빠지게 되는지 설명했다. 모 이사는 ‘동물실험 연구자의 스트레스 및 동물실험 윤리 교육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모효정 이사에 따르면, 수의사는 <돌봄과 죽임의 역설(Caring-Killing Paradox)>이라는 모순된 역할을 맡는다. 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의사가 됐지만 동물은 자기 손으로 직접 안락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이때 인지적 부조화가 발생하고, 동시에 “내가 해를 가했다”는 인식이 생기며 ‘가해 기반 외상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돌봄과 죽임의 역설’로 인해 안락사할 때 직무스트레스와 직무만족 저하가 발생하고, 공감피로, 도덕적 스트레스, 외상 반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돌봄과 죽임이 모두 있을 때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과 번아웃, 이차적 외상 스트레스(STS)가 증가한다.

2015년 연구(Scotney et al.)에서는 “안락사를 수행하는 인력은 직무 스트레스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안락사는 그 자체로 번아웃을 유발하는 가장 강력하고 독자적인 원인”이라고 밝혔다.

2023년 연구(Kogan et al.)에서도 “수의사의 도덕적 고통 증가는 번아웃을 높이고 전문가로서의 성취감을 현저히 저하시킨다”고 설명했다.

안락사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단일 외상보다 반복 노출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데, 수의사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동물의 고통·질병·안락사를 경험하면서 감정억제, 둔감화, 감정소진을 겪게 되고 이는 공감 피로로 이어진다. 동물의 고통·스트레스, 인지 수준이 높을수록 수의사의 공감피로(Compassion Fatigue)도 증가한다. 공감피로는 타인의 고통, 반복되는 돌봄, 죽음과 상실에 노출되며 생기는 정서적 고갈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실험동물수의사는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인간의 스트레스 반응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자기 통제감’인데, 동물실험 환경에서는 개인의 윤리적 판단과 상관없이 실험동물을 안락사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적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반복 시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으로 진행된다.

사회적 낙인과 침묵의 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나의 고통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도 수의사의 업무인데 뭘 그래?”, “그런 고통을 표현하면 안 돼. 그건 전문직답지 않은 거야”, “프로답게 행동해” 등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문화가 수의사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실험동물수의사의 경우, ‘동물실험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 인식’으로 더욱 고통의 표출이 어렵다.

이처럼 감정 표현이 억제되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되고, 보호요인(사회적지지)이 사라지면서 공감 피로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는 감정노동과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경인여대 안나 교수

국내 연구에서도 안락사가 미치는 영향이 확인됐다.

경인여자대학교 안나 교수(수의학박사)가 ‘실험동물 관련 종사자의 스트레스, 윤리적 갈등 및 직업 만족도 현황 분석’ 발표에서 직접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유했는데, GLP 기관 종사자 대상 설문에서 ‘동물실험 직무관련 스트레스’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일로 ‘안락사(31.8%)’가 꼽힌 것이다.

165명의 종사자와 4명(연구책임자, 연구실무자, 실험동물전임수의사(AV), 동물실 관리자)을 대상으로 심화 인터뷰를 진행한 안나 교수는 “동물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오히려 (수의사들이)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 그런데 국내에는 이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며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할 프로그램이 부족해서 PTSD가 계속 증가 중”이라고 지적했다.

실험동물 수의사의 경우, 수의사의 직무스트레스가 연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자의 심리적 고통으로 동물복지가 저하되고 동물실험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동물 안락사를 한 수의사에 대해 심리 지원을 할 수 있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실험동물수의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두 강사는 모두 수의사들의 직무스트레스 문제를 “수의사 개인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관의 노력과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나 교수의 설문에 따르면, 동물실험 과정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40.6%에 달했는데, 이들 중 34.4%는 상황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상황을 무시했다’고 답했다. 25.0%는 ‘관련 문헌이나 인터넷 검색을 했다’고 응답해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자들은 ▲사전 교육 ▲적절한 휴식기 제공 ▲조직 내 위험 신호 사전 파악 노력 ▲심리상담 비용 제공 ▲안락사 등 고통스러운 업무에 대한 강제 순환 배치 ▲명확한 권한 설정 ▲정기적으로 동료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 마련 등 기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예방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스트레스를 전문가적 자질 부족으로 치부하지 않고, 당연한 반응으로 인정하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을 강화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패널 토론을 진행한 김승연 수의사(국제백신연구소) 역시 “종사자의 스트레스 관리는 개인 역량이 아닌 조직적 지원 시스템에 달려 있다”며 “개인의 정신력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실제 워싱턴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UC데이비스, NIH, 에든버러대학교 등에는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차원의 지원과 예산 투입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안나 교수는 “현장에서 수의사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가가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며 “최근 개정된 수의사법을 시작 단계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수의사 지원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지원에는 반드시 예산도 함께 투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2일(화) 동물을 안락사한 수의사에게 심리지원을 할 수 있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동물을 안락사한 수의사의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을 위해 중앙정부 및 지자체가 노력하고, 관련 경비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동물보호법 제46조에 따라 동물의 인도적인 처리를 하는 수의사만 지원할 수 있게 규정되어 있어서 실험동물 수의사는 법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안나 교수는 “동물을 돌보는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면, 동물의 복지도, 연구 데이터의 신뢰성도 함께 무너진다”며 “우리의 궁극적인 돌봄의 대상에는 ‘현장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는 동료와 나 자신’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의사가 동물의 돌봄에만 집중하여 자신이 무너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동물을 돌보는 나 자신도 돌보아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안락사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 받는 수의사, 개인의 인내 넘어 제도적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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