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안 해도 되는 연구? No! 동물 연구 지원하는 동물과미래포럼 출범

동물 운동 새 지향 찾을 과학적 근거 연구 지원..공동대표에 조희경·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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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안 해도 되는 연구 아닙니까?”

10일(수) 서울스퀘어 상연재에서 열린 동물과 미래 포럼 창립식에서 기조발표에 나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퇴임 전 번번이 연구비 수주에 실패했던 경험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연구를 지원할 지 결정하는 심사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뒤늦게 전해 들었던 사연을 소개하면서다.

세계적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조차 피해가지 못한 이 경험은 동물 그 자체를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변방에 머무르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냈다.

동물자유연대 주도로 이날 출범한 동물과미래포럼(공동대표 조희경·최재천)은 그에 대한 시민단체의 자구책이다. 직접 연구비를 들여 필요한 연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첫 연구지원사업은 총 연구비 1억 8천만원 규모로 5개 연구과제를 선정했다.

미국의 대표 동물보호단체인 ASPCA가 2024년 40만달러(5억8천만원), 2025년 46만달러(6억7천만원)의 동물 관련 연구보조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는데, 한국도 그에 못지 않은 첫 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이날 창립식에는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을 비롯해 동물 관련 시민단체, 학계,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운집했다.

(왼쪽부터) 동물과 미래 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교수는 동물을 포함한 환경문제가 이제는 전지구적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미나마타병이나 대형 산불, 큰 태풍도 결국은 일부 지역의 문제였던 반면 기후변화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최 교수는 “지난 100년간 우한을 포함한 중국 남부지역으로 열대박쥐를 매개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100종 이상 진입했다. 그 중 하나가 사람과 맞아 들어가 팬데믹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기후변화가 멈추지 않는 한 이 같은 위험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동물복지는 이제 부상당한 동물을 도와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복지가 사람의 복지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와 함께 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동물 운동이 새로운 지향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조희경 대표는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정부에 동물 전담 부서가 생기고, (동물자유연대의) 재정자립도 해냈다. 개식용 종식까지 이뤘다”면서 “이제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다시금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동물과미래포럼을 중심으로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정부와 국회, 사회적 인식을 설득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조희경 대표는 동물과미래포럼이 모색할 새로운 지향이 반려동물 위주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란 점도 시사했다.

2007년 동물자유연대가 벌인 돼지농장 실태조사가 한겨례 보도, KBS 환경스페셜 ‘동물공장’ 시리즈로 이어졌던 경험을 전하며 “관련 연구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포럼 로고에 돼지의 그림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박홍근 의원은 “국정기획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동물복지 문제를 국정과제에 처음으로 반영시켰다”면서 “그만큼 정부 정책도 보다 본격적인 연구기반을 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현장 동물운동과 수의사, 학자의 생생한 문제의식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연구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양포유류 관련 연구 계획을 발표하는 플랜오션 이영란 대표

수의·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측면의 동물 연구를 모두 지원하면서 동물 연구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동물에 관한 지식과 사회적 담론 형성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올해 모집한 1차 연구지원사업에는 26개 과제가 접수됐다. 이중 수의·자연과학 분야 2개, 인문·사회과학 분야 3개의 연구사업이 지원대상으로 선정됐다.

수의·자연과학 분야에서는 해양포유류와 농장동물 대상 연구용역이 선정됐다.

플랜오션 이영란 대표팀은 ‘한국 해역 해양포유류 좌초실태 파악 및 질병 연구’를 진행한다. 한국 바다에 서식하는 고래류·기각류의 권역별 좌초실태를 파악하고, 인수공통감염병을 포함한 병원체 분포를 조사한다.

이영란 대표는 “고래를 포함한 해양포유류는 바다 건강의 지표”라며 연구결과가 향후 해양동물 질병감시체계 및 복지 정책 수립을 위한 근거로 활용되길 기대했다.

충북대 민경덕 교수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 건강 피해 현황 및 향후 예측’ 연구에 나선다. 수의역학자인 민경덕 교수는 폭염으로 인한 돼지 폐사 등 기후변화로 인한 농장동물의 피해를 통계적 모델링으로 구체화한다.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현장 설문연구도 병행한다.

앞서 기후변화와 사람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온 민 교수는 “이미 연구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해 기후변화 양상에 따른 동물 피해를 지역적, 시계열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며 “명확한 수치가 나와야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기후재난 시대 동물원 전시동물 복지 강화: 국제 동향과 국내 제도 개선 방향(서울대 박현지) ▲경계적 존재에 대한 도시 민족지: 제주도의 제비, 들개, 가로수를 중심으로(서울대 박소영) ▲기후위기 시대, 동물권 담론의 독립적 가치 확립과 환경운동과의 관계 설정: 네덜란드 동물당 사례를 중심으로(부경대 오창룡) 연구과제가 지원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연구 주체도 시민단체와 대학, 연구책임자도 박사급 교수부터 대학원생까지 다양했다. 남종영 위원은 “석·박사과정생, 전임 교원, 독립연구자 모두 환영한다”며 “동물 연구자가 발전하는 장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조희경 포럼 공동대표는 “구호가 아닌, 받아들일 수 있는 연구 결과물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동물 운동을 확장해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동물은 안 해도 되는 연구? No! 동물 연구 지원하는 동물과미래포럼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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