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종의 야생동물이야기③] 고라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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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칼럼] 김희종의 야생동물이야기③ – 고라니

6년 전,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 신고를 받는 센터 휴대폰을 넘겨받은 날이었다. 첫 구조 요청 전화벨 소리는 새벽 4시에 울렸고 한시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출동을 나갔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피를 흘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고라니가 도로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센터로 데리고 와서 5시간 동안 혼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용 써봤지만 결국 고통스러운 치료만 받다가 심장이 멈춰버린 그날의 고라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치료하기 힘든 야생동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고라니’라고 답할 것이다. 다루는 사람이나 다뤄지는 고라니나 둘 모두에게 위험천만한 사고가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라니를 구조하거나 치료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라니의 뒷발에 차여 봤을 것이다. 심지어는 잘 발달된 수컷 고라니 엄니(송곳니)에 다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라니를 힘으로 제압해서 포획하면 고체온증, 포획근병증 등으로 이어져 폐사하기도 하며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주사마취제를 사용할 경우 고창증이나 호흡곤란이 발생해서 죽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작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충남 예산군 공주대 산업과학대학 내) 바로 앞 교내 도로에서도 고라니가 차에 치인 적이 있다. 신고를 받자마자 바로 현장에 나갔지만 이미 고라니의 숨은 멈춰있었다. 학내 도로이며 과속 방지턱이 있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와 충돌 후 몇 분 만에 폐사해버린 것이다.

차에 치어 다행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열에 아홉은 두개골, 척추, 골반, 다리의 골절과 같은 외상이나 횡격막 또는 장기 파열, 뇌출혈 등의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 상태여서 이송 직후 또는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죽게 되는 경우(DOA; dead on arrival)가 적지 않다.

국내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시설과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고라니가 구조되고 있다. 매우 예민한 고라니의 성격 때문에 치료나 입원 관리의 어려움이 따라 노력만큼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회복이 가능할지 판단 후 선별적으로 수술이나 치료를 실시하기 때문에 고라니 구조 결과에서 차지하는 안락사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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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내에서 지난 3년간 구조된 고라니는 총 513마리. 이중 자연으로 돌아간 개체는 16%인 85마리에 불과하다. 구조센터에 접수된 고라니만 대상으로한 통계이므로, 실제 고라니 폐사 수는 이보다 수십 배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고라니 개체수나 밀도를 파악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호랑이나 늑대 같은 고라니를 포식할 수 있는 천적들(최근 담비가 고라니를 사냥하는 모습이 확인되긴 했으나)이 대부분 사라져 개체수가 풍부하게 유지되고 있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사실 고라니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동물에 속한다.

원산지는 중국과 한국이고 두 나라뿐이고 영국, 프랑스에서는 1800년대 후반에 도입된 고라니들이 현재 야생에서 일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UCN Red list(국제자연보전연맹 멸종위기생물 목록)에는 고라니를 ‘Vulnerable(취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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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의 분포지도(노란색). IUCN이 만든 자료에서 고라니가 한반도 서쪽에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됐지만, 실제로 고라니는 국내 전역에서 관찰되는 종이다 (출처: http://maps.iucnredlist.org/map.html?id=10329)

영어 이름인 ‘Chinese water deer’에서 알 수 있듯이 고라니는 과거 중국 대륙의 넓은 지역에 풍부하게 서식했다. 하지만 밀렵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이들의 서식 지역과 개체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뚜렷한 개체수의 감소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역시 끊이지 않는 밀렵, 서식지 감소와 단절로 인한 로드킬 등으로 해마다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마리의 고라니들이 덧없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5~6월이면 암컷 고라니들은 임신 상태로 차에 치어 뱃속의 새끼들과 함께 생을 마감한다.

그나마 세상에 나온 새끼들은 제초작업이나 산행 중에 사람에게 발견되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이끌려가 야생동물구조센터로 보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해는 제발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길 바랐지만 공주대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이미 새끼 고라니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유괴와 같은 인위적 미아도 있지만 죽어 있는 어미 옆에서 발견된 고아들도 구조된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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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라니들. 6월이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구조하고 돌보는 동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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