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진료 유혹에 더 가까운 특수동물‥법으로만 막을 순 없다

햄스터 자가수술 수기 인터넷서 화제..수의사 관리 저변 넓혀야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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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햄스터를 자가수술한 일반인의 사연이 올라와 화제다. 불법적인 야매수술이 위험하다는 점도 문제지만, 수의계도 특수동물 의료관리 저변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게시글에 올라온 햄스터의 외상 상태 사진
해당 게시글에 올라온 햄스터의 외상 상태 사진

지난 13일 해당 글을 게시한 햄스터 보호자는 “싸구려 쳇바퀴틈에 낑겨 등가죽이 찢어졌지만, 동물병원 수의사가 ‘작은 동물은 치료할 수 없다, 안락사 시키는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며 “결국 집에서 과산화수소수, 면도기, 나일론끈, 바늘 등으로 야매 수술했다”고 밝혔다.

성인용품의 국소마취제 성분을 바르고, 과산화수소수와 끓인 물로 세척한 나일론 실로 꿰맸다는 것. 게시글이 화제가 되자 건강을 회복한 햄스터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7월 1일부터 발효된 개정 수의사법 시행령에 따라, 축산업 관련 종과 수생동물 등을 제외하면 모든 동물의 자가진료는 불법이다. 개, 고양이뿐만 아니라 햄스터 등 특수동물도 자가진료 금지대상에 포함된다.

보호자 주장에 따르면 3개월여 전에 있었던 일로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위험한 자가수술 사례가 버젓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는 것은 비정상적임에 틀림없다.

국내에서 특수동물 진료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한성동물병원 권태억 원장과 아크리스동물의료센터 박천식 원장을 만나 문제점을 짚어 봤다.


야매수술로 부작용 피한 건 요행 `생명경시` 지적..특수동물 진료병원 찾았어야

두 원장 모두 수술까지 자행된 자가진료에 혀를 내두르며 “자가진료 과정에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권태억 원장은 “처치과정에 손상이 일어나거나 술부의 감염 위험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며 “특히 햄스터는 감염이 생기면 수분이 빠져나가는 치즈양 염증이 되어 완치가 어려워지는 사례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매수술 후 항생제를 먹였다는 게시글 내용에도 우려를 제기했다. 햄스터가 체중이 아주 작다 보니 과용량 문제가 발생하기 쉽고, 성분에 따라 장내 미생물에 문제가 생겨 설사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천식 원장은 “살았으니 다행이지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은 충분했다”며 “동물을 주인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야매수술 사례가 인터넷으로 공공연히 유포될 정도로 ‘일반인이 야매로 수술해도 문제 없다’는 식의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박천식 원장은 “해당 병원과 보호자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야매수술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특수동물 진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특수동물 진료 꺼리는 병원 적지 않다

해당 게시글의 댓글에는 진료를 거부한 수의사에 대한 비난이 지배적이었다. ‘안락사를 권유했다’는 자극적인 내용도 요인이지만, 특수동물 진료를 받기가 어렵다는 현실도 반증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의 반려동물병원은 개, 고양이를 주 진료대상으로 삼고 있다. 토끼, 고슴도치, 햄스터, 기니피그 등 특수동물의 진료 여부는 수의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지만,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

권태억 원장은 “수의사라고 모든 동물종에 전문성을 가지기는 어렵고, 일선 병원에서는 케이스도 적다 보니 그에 맞춘 의료장비나 진료여건을 마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했다.

특수동물 진료 자체가 까다롭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체구가 너무 작아 혈액검사나 영상진단검사도 제한적인데다가, 야생성이 강해 위독할 때까지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시기를 놓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호자 입장에서도 특수동물 진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박천식 원장은 “보호자는 어떤 동물이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내원하지만, 실제로는 특수동물 진료를 다루지 않는 병원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특수동물 진료를 받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동물종별 커뮤니티 등을 통해 권역별로 진료가 가능한 동물병원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권태억 원장은 “90년대 이후로 특수동물 관련 임상교육이 꾸준히 이어지고 관련 시장도 확대되면서 진료 저변도 예전보다 많이 확대됐다”며 “연수교육에 특수동물 관련 세션이 빠지지 않을만큼 수의사들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특수동물 보호자의 역할 중 하나로 ‘진료받을 수 있는 동물병원을 파악하는 일’을 권고하고 있다”며 보호자들의 준비도 당부했다.


일선 동물병원도 특수동물 외면 말아야..핸들링
·응급처치 및 전원 안내 준비

특수동물의 자가진료도 불법적이며 위험한 동물학대다. 하지만 개, 고양이에 비해 특수동물 보호자들이 자가진료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데는 수의사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수동물을 포함한 반려동물의 자가진료가 법적으로 금지된만큼, 진료 저변 확대는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박천식 원장은 “보호자에게는 특수동물도 반려동물이자 가족”이라며 “이러한 보호자들의 기대에 최소한이라도 부응하고, 특수동물이 수의사 관리 범위 내에 머물게 하려면 기본적인 처치와 전원 안내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동물병원의 사정상 특수동물 진료를 다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핸들링 역량을 갖추고 외상에 대한 응급처치는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우리 병원은 특수동물 진료를 보지 않으니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보호자를 내치기 보다는, 특수동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두었다가 전원 조치까지 안내하는 것이 수의사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권태억 원장은 “반려동물의 건강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수의사 윤리강령은 개, 고양이에만 국한되는 명제가 아니”라면서 “다빈도 특수동물의 경우는 간단한 처치가 가능할 정도의 역량은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수동물 진료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박천식 원장은 “단발성 임상세미나를 너머 특수동물 진료에 나선 수의사 간의 지속적인 교류 플랫폼이 만들어진다면, 임상역량도 높이고 보호자의 진료접근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자가진료 유혹에 더 가까운 특수동물‥법으로만 막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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