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려동물 임상은 수의학의 꽃 ―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등록 : 2015.01.03 12:09:08   수정 : 2015.02.23 16:01:33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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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과 수의학교육 인증제도가 자리를 잡고 한국수의과대학협회가 출범하면서 기존 강의중심 수의학교육을 역량중심교육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수의학계 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수의학교육에서 “핵심역량”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임상능력을 핵심역량에 포함시켜야 할 것인지는 이러한 논의에서 중점적 주제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 점에 대한 학계의 공감대 형성에 있어 장애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문제점은,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한국 수의학계에 있어 왔던 하나의 경향, 즉 소동물임상 분야를 조금은 가볍게 보려는 경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소동물임상수의사 역할의 중요성을 산업동물이나 공중보건, 의생명과학, 정부기관, 기업체 등에서 일하는 수의사에 비해 조금 낮추어 보려는 시각은 수의학계 내부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널리 퍼져 있던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관행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드러내 놓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지는 않지만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상당히 이야기되고 있던 시각이다. 그 논리의 근거를 대체로 요약하면 이와 같을 것이다:

“반려동물 또는 애완동물을 돌보는 소동물임상은 개인의 취미생활과 소비생활을 돕는 일이고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일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수의학 분야는 사회와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산업동물 임상이나 공중보건, 의생명과학 연구, 제약산업과 같은 기초 또는 예방 수의학 분야이므로 가능한 한 수의학과 학생들을 이런 분야로 진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수의과대학 교육과정이 소동물임상교육에 치중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소동물임상 분야로 나갈 학생들은 주로 돈 버는데 관심 있는 학생들이므로 졸업 후 자기들이 알아서 임상기술을 배우게 된다.”

     

결국 수의학계에서 반려동물 임상을 경시하는 풍조는 수의과대학에서 임상교육을 경시하는 암묵적 태도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가 지난 10년간 우리가 6년제 수의학 교육을 시행했으면서도 4년제 졸업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수의대 졸업생을 양산하고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역량중심 수의학교육”으로의 이행을 위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때, 수의학에서 소동물(또는 반려동물) 임상수의학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앞으로 이룩해야 할 수의학교육 개혁과 개선작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다.

과연 소동물 임상수의사는 반려동물(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직업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만일 우리나라에 소동물병원 수의사들이 광견병 예방 접종의 중요성을 견주들에게 교육시키고 시행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수도권 지역 사람들은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기, 강원지역에는 아직도 야생동물에 광견병이 상재해 있으며 가끔 가축이나 사람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즉, 우리나라 일부지역은 광견병 상재지역이고 많은 길고양이와 떠돌이 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광견병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전역에 소동물병원이 많이 퍼져있는 덕분에 대부분의 반려견들이 수의사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포함한 건강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소동물 수의사들이 우리 주변 반려동물의 건강을 철저히 돌보아 주고 이들이 전파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거리를 다닐 수 있고, 동물을 키우는 이웃집을 방문하고, 내 아이들이 동물을 키우는 친구 집에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소동물 수의사들은 비단 동물을 키우는 사람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필수적인 공중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며, 이들의 기여도가 공적인 공중보건 분야 수의사보다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반려동물은 그 주인들에게 가족과 같이 소중한 존재이다. 이러한 반려동물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사람의 건강에도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지난 십여 년에 걸친 과학적 연구로 인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체활동이 더 많으며, 흡연율이 감소하고, 고혈압의 위험도가 낮으며, 생활에서 스트레스가 감소된다. 반려동물은 그 주인의 사회활동과 인간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주며, 심리적·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독거노인들에게 반려동물은 사회로부터의 고립감을 줄여준다. 많은 반려동물들이 여러 질병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심지어 인터넷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의 치료에도 사용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는 이렇게 반려동물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주목하고 있으며, 인간동물 관계에 의해 얻는 건강상 이득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연구에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인간동물 관계에 의해 사람이 얻는 긍정적 영향을 토론토대 Kate Hodgson 교수는 Zooeyia라 명명하고 Zoonosis(인수공통질병)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제안하였다. 더 나아가 Hodgson 교수는 반려동물 수의사는 동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4년 1월 5일, Hodgson 교수가 서울대에서 워크숍을 연다 : 관련 기사 보러 가기)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동물을 위한 의료와 보건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문명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람 의료보건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의료보건 시스템은 소동물병원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인간과 반려동물의 상호관계는 소동물병원 의료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동물병원의 수의사들은 동물 진료를 통해, 동물뿐 아니라 그 주인, 가족, 친구, 지역사회의 건강에도 기여하고 있다. 소동물 임상가는 인수공통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Zooeyia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동물 상호작용에 의해 반려동물 보호자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이득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그 이득을 확장시킬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진료와 병행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흡연에 의해 반려동물이 받을 수 있는 2차피해에 대해 흡연을 하는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 있고, 이것은 금연을 위한 동기를 흡연자에게 부여함으로써 보호자의 건강 뿐 아니라 반려동물의 건강에도 이득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의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책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반려동물과 보호자 모두의 야외활동과 운동량 증가를 유도할 수도 있다. 자녀의 비만과 운동 부족을 염려하는 보호자에게는 자녀에게 반려견의 산책을 맡기도록 권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려동물 수의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동물, 인간, 사회의 건강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고 그 역할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 기여도가 공중보건, 방역, 의생명과학 분야의 수의사에 비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소동물임상을 개인의 이득만을 위한 직업으로 낮추어 보는 시각은 근거가 없으며 수의학자로서 온당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소동물임상은 수의학의 꽃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동물, 야생동물, 동물원동물, 실험동물 등 모든 임상분야는 소동물임상이 그 기초가 된다. 학생들이 훈련받을 수 있는 가장 많은 케이스들이 소동물임상 분야에 있기 때문이다.

소동물 임상교육과정에서 수의대 학생들은 기초와 준임상 과목에서 배운 모든 정보들을 어떻게 취합하여 진단하고, 약을 투여하며 수술할 것인지 치료계획을 세우게 되고, 치료 후 결과를 평가하며 다시 치료에 반영하는 훈련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 때로 환자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임상 경험은, 생명의 신비와 존귀함에 대한 더 높은 차원의 시각을 갖게 한다.

      

이러한 훈련은 임상 분야로 진출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나 동물을 다루고 치료해 본 경험은 다른 어떤 생명과학 분야 전공자도 가질 수 없는, 의사와 수의사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이렇게 훈련받은 수의사는 일반 생명과학 전공자가 가질 수 없는 통합적인 경험과 시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국 NIH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의사와 수의사 출신 기초생명과학자를 양성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MD-Ph.D. 또는 VMD-Ph.D. 프로그램에 의해 양성된 많은 학자들이 미국의 의생명과학, 특히 중개의학(Translational Medicine) 분야를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수의대에서 소동물 임상교육과정은 비단 미래의 임상가뿐만 아니라, 미래의 기초분야 연구자에게도 필수적인 훈련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기초생명과학 분야 과학자를 꿈꾸는 수의학도에게 임상훈련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임상훈련을 받은 수의사 출신 의생명과학자는 어떤 다른 생명과학 전공자도 가질 수 없는 중개의학 생명과학자로서의 자산을 갖게 될 것이다.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면허시험에 합격하면 누구든지 수의사 면허를 받게 되고 모두가 동물병원을 개업할 자격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수의대 학생들은 졸업 전에 가장 기본적인 동물 질병 진단과 진료에 대한 임상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수의과대학은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

졸업생 중 어느 누가 실제로 동물병원을 개업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은 절대 임상수의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수의대 졸업생 중 일부가 나중에 임상으로 돌아선 예가 상당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졸업생은 모두가 나중에 동물병원을 개업할 것으로 간주하고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수의과대학의 의무이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수의대 교육과정에 기본적인 소동물 임상교육과 실습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소동물임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배경이 있다. 대부분의 우리 세대 수의사들이 수의학 교육을 받았던 때는 산업동물 임상이 주류였던 시절이었고, 우리 사회에서 반려동물이란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 이전에 동물이란 주로 인간을 위한 먹거리로서, 의학실험의 대상으로서, 또는 하나의 장난감(애완동물)으로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문화에서 교육받은 우리 세대 수의사의 일부는 아직도 반려동물, 즉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간다는 개념이나,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소중히 대우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고 우리의 생각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수의학 내에는 매우 다양한 분야와 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소동물임상 분야에 집중하는 현상도 개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의학 교육자들이 학생들에게 임상뿐 아니라 기초와 준임상 분야를 포함해서 수의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소개하고 새로운 분야의 개척과 진출을 권고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관련된 분야가 소동물임상교육의 단단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에 대한 수의학계 내의 치열한 고민과 논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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