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의심 환자 본 수의사 중 6.3%만 신고…대응 가이드 필요

수의사 대상 동물학대 진료 경험 및 동물학대 대응체계 조사 보고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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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수의사 대상 동물학대 진료 경험 및 동물학대 대응체계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임상수의사는 최근 2년간 평균 1.7회 동물학대(의심) 진료를 했지만, 실제 신고한 수의사는 6.3%에 그쳤다.

동물학대 문제를 최전선에서 목격하는 임상수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제보를 하는 수의사의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소는 대한수의사회의 협조를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전국 임상수의사 185명을 대상으로 ‘동물학대 진료 경험 조사’를 시행했다.

30~50대 수의사가 94.1%로 대부분 청장년층이었으며, 20대는 5명(2.7%), 60대는 6명(3.2%)이었다.

임상 경력은 ‘1년 미만’부터 ’20년 이상’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중 ‘5~10년’이 52명(28.1%)으로 가장 많았고, ’10~15년’이 45명(24.3%)으로 그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 응답자 185명 중 대부분인 175명(94.6%)의 수의사가 동물학대(의심) 진료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평균 5.3회 동물학대(의심) 진료를 경험했는데, 횟수는 임상 경력이 길어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2년 동안은 평균 1.7회(표준편차 1.3) 동물학대(의심) 진료 경험이 있었다.

이번 조사로 다시 한번 ‘국내 임상수의사 상당수가 진료 현장에서 동물학대 의심사례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 2020년 서울대 수의대 천명선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animals에 발표한 ‘한국 임상수의사들의 동물학대 케이스 개입 의사 분석’에서도 국내 반려동물·농장동물 임상수의사 593명 중 86.5%가 동물학대 의심 사례를 목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학대(의심) 동물 진료 경험이 있었던 175명 중 전치 3주 이하의 경상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가 110명(62.9%), 전치 4주 이상의 중상을 입은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가 107명(61.1%)이었다(복수 응답 허용).

특히, 학대(의심)로 인해 내원 당시 이미 환자가 사망한 상태였다고 응답한 수의사도 35명(20.0%)에 달했다.

상해의 종류는 골절, 뇌진탕, 안구돌출, 폐출혈 등 물리적 손상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방치로 의심되는 영양실조 사례도 있었다. 골절 등 근골격계 손상이 67.5%로 가장 많았고, 각막 손상, 안구돌출 등 안과 병변이 47.3%, 뇌진탕이 41.4%, 피부 손상이 38.5%, 영양실조가 34.3%, 폐출혈이 33.7%였다(복수 응답 허용).

반면, 동물학대(의심) 진료 경험이 있는 수의사 175명 중 실제 신고를 한 경우는 11명(6.3%)에 불과했다. 연구소는 “동물병원을 통한 학대 사례 발견이 실제 대응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신고한 11명 중 7명의 사례가 ‘불송치’ 또는 ‘불기소 의견’으로 처리됐고, 실제 기소된 경우는 3명에 불과했다. 동물학대(의심) 진료 경험이 있는 수의사 175명 중 단 1.7%밖에 안 되는 수치다.

동물학대(의심) 사건을 신고하지 않은 이유 1위는 ‘보호자와의 갈등을 원하지 않아서(93명, 57.4%)’였다.

실제 가해자로 의심되는 사람 1위는 보호자/반려인(66.9%)이었고, 가족이나 동거인, 지인 등 보호자 주변인이 2위(60.0%)였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 2위는 ‘신고해도 사건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73명, 45.1%)’, 3위는 ‘법적으로 곤란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아서(53명, 32.7%)’, 4위는 ‘신고가 가능한지 몰라서(40명, 24.7%)’, 5위는 ‘어디로 신고해야 할지 몰라서(36명, 22.2%)’였다(중복 응답 허용).

동물학대(의심) 사건을 경험한 수의사 상당수가 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수의사 대부분은 동물학대 대응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동물학대 대응 관련 기관(정부, 지자체, 경찰)이 협조 요청 시 응하겠다고 응답한 수의사가 178명(96.2%)으로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결국, 수의사가 동물학대(의심) 환자를 봤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신고·협조를 해도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동물병원을 통한 동물학대 정황의 조기 발견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영국 링크 그룹의 ‘동물과 인간학대 의심: 동물병원 종사자를 위한 가이드북’과 미국수의사회(AVMA)의 ‘학대 및 방치가 의심되는 동물 발견 시 수의사의 효과적
인 대응을 위한 지침’

현행 동물보호법 제39조(신고 등)에 따라, 수의사는 동물학대 신고 의무대상자다.

피학대동물이나 유실·유기동물을 발견했을 때 지체 없이 관할 지방자치단체 또는 동물보호센터에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피학대동물을 어떻게 구분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고, 위반 시 처벌 조항도 없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미국 등에는 동물학대(의심) 환자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다.

영국 링크 그룹은 ‘동물과 인간학대 의심: 동물병원 종사자를 위한 가이드북(suspect abuse of animals and people: Guidance for the veterinary team)’을 통해 동물학대가 의심될 경우 수의사가 밟아야 할 절차를 소개하고 있다. 절차는 질문(Ask, A), 공감(Reassure, R), 문서화(Document, D), 보고/신고(Report, R)의 ‘ARDR 절차’로 구성되어 수의사의 이해를 돕는다.

미국수의사회(AVMA)도 2011년 ‘학대 및 방치가 의심되는 동물 발견 시 수의사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지침(Practical Guidance for the Effective Response by Veterinarians to Suspected Animal Cruelty, Abuse and Neglect)’을 발간하고, 동물학대의 정의와 학대(의심) 동물을 발견 시 수의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동물학대 사건은 아동학대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

아동학대 사건은 대부분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져 학대 징후를 포착하기 어렵고, 제3자가 이를 알고있어도 ‘가정사’라는 이유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물학대 사건도 크게 이슈화되었던 사건은 대부분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가정 내 동물학대 사건은 확인이 쉽지 않다.

아동학대 사건은 영유아 검진 및 병원 진료 과정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을 위한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 지침서’를 발간하고, ‘의료인 신고의무자용 아동학대 선별도구(FIND)’ 체크리스트를 제공해 의사들의 아동학대 판단과 신고를 지원하고 있다.

반면, 수의사의 경우 학대 의심사례를 가려낼 수 있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나 교육·제도적 지원이 미비해 수의사 개개인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고인 신분 보장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동물학대 범죄의 경우 ‘특정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신고자가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서 규정된 보호조치를 받기 어렵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이혜원 소장은 “아동학대 사건이 주로 의료기관과 같은 제3자에 의해 발견되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학대 감시에서도 수의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동물학대 대응 및 예방을 위한 세부적인 법적 장치와 수의사 제보자 보호 방안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조사를 통해 대부분의 수의사가 동물학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어 매우 고무적”이라며 “수의사들을 위한 동물학대 대응과 예방 및 치료 지침서를 마련하고, 수의사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한다면 향후 동물복지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물학대 의심 환자 본 수의사 중 6.3%만 신고…대응 가이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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